[이어지는 삶] 사랑이 머문 자리마다 다른 얼굴로 존재하던 당신들
전 국민이 눈물바람으로 보았던 드라마 <폭삭 속았수다>에는 애순이를 순애보처럼 사랑하는 관식이가 있었다.
내게도 관식이가 있다.
물론 애순이의 관식이처럼 십 년 넘게 조기를 훔쳐다 주진 않았겠지만, 위기의 상황에 내 남편은 분명 나의 관식이었다.
친정집 일로 힘들어할 때마다 그는 나를 잡아주었다.
나는 태풍에 속절없이 일렁이는 파도 같은 사람이었지만, 그는 잔잔한 호수의 물결 같은 사람이었다.
그와 살면서 나의 태풍은 점점 작아지고 소멸하기를 반복하다 비로소 지나는 소나기가 되었다.
대신 그의 호수에는 자주 파문이 일었다.
그럼에도 그는 내 곁에서 결코 흔들리지 않았다.
”애순이가 다 잘해. “라고 말하던 관식이처럼
“내 와이프가 최고!”라고 늘 말해주었다.
자존감이 바닥을 치던 나를 일으켜 세웠고, 뭐든 도전해 볼 수 있는 용기 있는 사람이 되게 해 주었다.
나의 재능을 누구보다 빨리 알아보았고,
내가 그것을 이루어가는데 가장 큰 지지를 해주었다.
나의 말이라면 작은 것 하나 허투루 듣지 않았다. 무언가 가지고 싶어 하면 뭐든 해주려고 했다. 그래서 남편 앞에선 물건에 대해 빈말을 하지 않게 되었다. 어느 날 갑자기 그 물건이 내 눈앞에 와있을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스물네 살의 풋내기였던 나를 알아봐 준 그와 칠 년의 연애 끝에 결혼을 하고, 단 한 번도 이 사람과의 결혼을 후회한 적이 없다.
나를 ‘인생의 귀인’이라고 말해주는 이 남자가 나의 진짜 귀인이었다.
다음 생에도 나를 만날 거냐는 질문에 애순이는 그 꽃밭에 어떻게 나만 사느냐고 했지만, 내 대답은 달랐다.
“잘 피해 다녀. 걸리면 또 나랑 살아야 하니까. 대신 다음엔 내가 남자 할게!”
그러면 남편은 여자로는 못 산다며, 잘 피해 다니겠다고 농담을 주고받는다.
그와 함께한 시간이 이제 곧 스무 해.
몇 해만 지나면 내 인생의 반 이상을 그와 함께 지나게 된다. 내 부모가 나를 키워낸 시간보다 더 긴 시간이다.
칠 년의 연애 기간에도, 그 후의 결혼생활에도 이 남자는 변하지 않았다. 용광로처럼 뜨겁다가 차갑게 식어버리는 그런 남자가 아니었다.
결혼식에서 동시입장을 할 때 잡았던 그 손의 온기 그대로, 사는 내내 그의 온도는 한결같았다.
돌아보면,
그 사람을 만나기 전의 나는 사랑이 늘 조건과 인내 위에 놓여 있다고 믿었다.
참아내는 쪽이 사랑이라고, 버티는 사람이 더 많이 사랑하는 거라고.
하지만 이 집에 들어와서 나는 전혀 다른 방식의 사랑을 배웠다.
그가 내게 준 것은 그의 사랑뿐만이 아니었다.
어린 시절을 보상받기라도 하듯 따뜻한 시부모님을 만났다.
“무엇이든 네 말이 다 맞다.” 해 주시는 아버님은 내게 또 다른 관식이었다.
아버님이 보내주신 문자나 편지를 볼 때면 울컥 눈물이 났다.
‘굴곡 많은 내 인생에 너를 자식으로 만나 행복하다.’
‘내게 남은 것이나 여분이 있거든 사랑하는 내 딸에게 다 주고 싶다.’
라며 나에게 마음을 다 주셨다.
육아로 힘들어할 때면 너무 애쓰지 말라고 하셨다.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고, 나 자신을 가장 소중히 해야 한다고 따뜻한 조언을 해 주셨다.
어머님은 철마다 때마다, 객지에 나와 사는 우리에게 무엇이든 넘치게 보내주셨다.
며느리들이 으레 참석하는 김장도 나에게는 말씀도 하지 않으신 채 혼자 다 하셨다.
세 아이 키우느라 힘든데 먼 길 와 고생시키고 싶지 않다며.
어머님은 언제나 내게 좋은 말동무가 되어주셨다. 친정엄마에게 조잘대듯 나는 어머님과의 대화가 항상 감사하다.
금명이에게 "수틀리면 빠꾸! 아빠 여기 있어." 라고 말하던 관식이처럼,
나의 시부모님들은 내가 무엇을 하던 지지해 주셨고, 끝내 내가 돌아갈 둥지가 되어주셨다.
시간이 지나며 알게 되었다.
관식이는 특별한 사람의 이름이 아니라 누군가의 인생 앞에서 끝까지 도망치지 않는 태도라는 것을.
내 남편이 내 곁에 서 있었던 방식,
아버님이 “네 말이 다 맞다”라고 말해주던 방식,
어머님이 아무 말 없이 김장을 대신해 주던 방식은
모두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관식이는 그렇게
한 사람에게서만 나타나는 게 아니라,
사랑이 머무는 자리마다 다른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결혼을 하면서 나는 두 분은 '엄마, 아부지'라고 불렀다.
두 분은 나의 심성과 마음 씀씀이를 보면 돌아가신 엄마가 어떤 분이었는지 짐작이 간다고 하셨다.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하면 엄마는 눈물을 흘리며 더 잘해 주겠노라고 등을 토닥여주셨다.
두 분의 인생이야기를 들어보면 나는 상상할 수도, 감당할 수도 없을 세월을 넘어오셨다. 그런 두 분이 나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으시며 안타까워하고 속상해하셨다.
그렇게 우리는 만날 때마다 서로가 함께 하지 못했던 시간들을 조심스럽게 공유했다.
이모가 엄마가 남기고 간 선물이라면, 내 남편과 시부모님은 하나님이 내게 보내신 선물이 분명했다.
엄마는 알고 있을까?
넘치는 사랑을 받는 딸의 모습을.
엄마에게 말하고 싶다.
엄마,
우리는 많은 시간을 함께하지 못했지만, 시간과 공간이 초월되는 것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았어.
엄마가 받았던 사랑이 내가 되었고, 내가 받은 사랑이 엄마에게 다시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느껴.
이제 어린 날의 아픔에만 매여 살지 않을게.
엄마가 남겨준 사랑 덕분에, 나는 관식이를 알아볼 수 있었어.
내 삶에서 만난 관식이들처럼,
이제는 내가 누군가의 관식이가 되어 살아갈 차례야.
엄마! 부족한 나를 지켜봐 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