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지는 삶] 아이들을 통해 나로 돌아오는 길
나는 세 아이를 낳았다.
한 배에서 나왔지만 셋은 너무 다르다.
첫째 아이는 기질이 순하고 감정이 풍부한 아이였다.
나와 비슷한 구석이 많아 키우는 일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내가 육아에 소질이 있나 보다 은근 자신감을 가지게 하는 아이였다.
둘째 아이도 당연히 그럴 줄 알았다.
신은 나의 착각과 오만을 오래 지켜볼 생각이 없으셨나 보다.
나의 둘째는 까칠했고, 예민했고, 짜증이 많았다.
밖에서는 명랑하고 쾌활했지만, 집에만 돌아오면 전혀 다른 아이가 되었다.
첫째를 키우며 익힌 방식은, 둘째에게 거의 통하지 않았다.
나는 다시 초보엄마가 된 것처럼 매일 아이와 실랑이를 벌였다.
잘해보려 할수록 더 멀어지는 느낌이었다.
둘째보다 더 센 아이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을 때 즈음,
셋째가 태어났다.
셋째는 체력왕이다. 첫째와 둘째를 키우며 한 번도 써보지 않았던 속도를 나는 매일 꺼내 써야 했다.
전력질주를 해야 겨우 따라잡을 수 있는 세 살 아이.
경주마가 따로 없다.
셋째가 냅다 달리면, 잡고 있던 둘째 아이의 손을 놓고 뛰어야 한다.
그러면 둘째는 서러워 울고, 셋째는 잡혀서 울고, 나는 너무 힘들어서 운다.
그렇게 세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되었고, 아이들을 통해 전혀 다른 내가 되어가고 있었다.
첫째 아이가 태어나던 날.
그 작고 뜨거운 존재는 내가 경험해 본 적이 없는 무게로,
나의 또 다른 우주가 되었다.
순하고 다정한 아이는 엄마로서의 자신감과 자존감을 높여주었다.
세 번의 유산 후에야 만난 소중한 아이.
무엇이든 다 해주고 싶었고, 아이에게 내 모든 시간을 썼다.
육아로 몸은 힘들었지만 다 감당할 수 있었다.
첫째 아이를 통해 나는 원 없이 내가 꿈꾸던 엄마의 모습으로 살았다.
하지만 엄마가 되고 나니 엄마가 너무 그리웠다. 남들에게 다 있는 ‘친정’이 너무나 간절했다.
엄마에 대한 마음의 허기가 간절했던 그즈음 둘째가 갖고 싶어졌다.
임신과정에서 또 아이를 잃고 말았지만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결국 기적처럼 둘째가 나에게 왔다.
둘째는 울음이 많았다. 등을 대고 누워있는 날이 별로 없었다. 낯가림이 전혀 없었던 첫째와 달리 최고 레벨의 낯가림과 장소를 가렸다.
엄마 말고는 대체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자라면서도 예민하고 까다로웠다.
첫째와 달라도 너무 다른 둘째를 키우면서 나는 깨어지고 또 깨어졌다.
처음엔 아이가 별나다고 생각했다. 아니, 확신했다.
그런데 돌이켜 생각하니 첫째 아이에 맞춰있는 나의 기준이 문제였다.
나는 아이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둘째 아이는 특별했다.
아이에게 맞춰가며, 딸을 품에 안는 그 모든 순간마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엄마의 품으로 돌아가는 기분이 들었다.
그때는 몰랐다.
몸과 마음은 힘들었지만, 딸아이를 키우며 엄마에 대한 갈망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다는 것을.
가족계획에 셋째는 없었다.
다시 일을 시작하려던 때에 셋째가 와버렸다. 아이를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축복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 시간이 무색하게 셋째는 심장이 아플 만큼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아기는 35주에 세상에 나와 폐동맥고혈압으로 사경을 헤맸다. 중환자실에서의 한 달은 매일이 기도의 시간이었다.
아이는 기적처럼 회복되었고, 믿을 수 없을 만큼 큰 에너지를 가진 아이로 자랐다.
아이의 에너지는 엄마로서 가졌던 모든 공식을 내려놓게 했다.
통제되지 않는 아이가 너무 힘겨웠지만,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그 아이들이 나에게 무엇을 보여 주고 있었는지를.
첫아이에게서는 엄마가 되는 법을,
둘째에게서는 나를 내려놓는 법을,
셋째에게서는 한계를 인정하는 법을 배웠다.
세 아이를 키우며 그렇게 갈망했던 엄마의 품을 느꼈다.
내가 세 아이의 엄마가 되어야 했던 이유는 결국 나 자신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나는 아이들을 통해 내가 원하던 엄마의 모습에서 깨어짐과 내려놓음을 배우며 진짜 ‘나’로 거듭나고 있었다.
좋은 엄마에서 노력하는 엄마로,
노력하는 엄마에서 내려놓는 엄마로,
내려놓는 엄마에서 ‘나’로 돌아오고 있었다.
아이를 하나만 키웠다면 그 경험만이 기준이 되었을 텐데, 각기 다른 기질을 가진 세 아이는 세상의 온갖 경우의 수를 내게 가져다주었다.
커리어를 내려놓고 엄마로 살아야 하는 시간들이 가끔은 속상할 때도 있었지만 그 육아의 시간을 통해 내가 얼마나 많은 훈련을 하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셋째 임신 소식에 “너는 이제 대체불가의 존재가 되었다. “ 는 지인의 잊을 수 없는 말이 이제 진가를 발휘했다.
나는 여전히 실수하고 후회하는 평범한 보통의 엄마다.
하지만 세 아이의 엄마가 되고 나서의 ‘나’는 달라졌다.
세상의 것들을 조금 더 이해해 볼 수 있게 되었고, 그 모든 경우의 수들에 예전보다 유연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깨어지는 것이 덜 두려워졌고, 아이 셋을 자연분만으로 낳았더니 무서울 것도 없어졌다.
엄마에게 나는 어땠을까.
세상에 태어나 칠 년의 시간 동안 나도 엄마에게 연단 같은 존재였을까.
아이들을 키워 보니, 엄마 역시 힘들었던 시간 속에서도 분명 행복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제 ‘나’를 마주하기 시작했는데, 야속하게도 엄마의 시간은 너무나 짧았다.
엄마에게 시간이 조금 더 있어서, 엄마로서의 삶 보다 ‘자신’으로서의 삶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래서 나는 ‘나’로서 잘 살고 싶다.
먼 훗날 엄마에게 진짜 ‘나’를 보여주고 싶다.
당신이 낳아 준 내가 ‘나’를 완성해서 왔노라고.
나를 낳아주어 고맙고, 사랑한다고.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
내 육아의 시간은 아직 한참 남아있다. 어쩌면 아이가 다 성장하여도 그 육아의 시간은 평생을 가며 우리를 성장시킬지도 모르겠다.
인간은 언제나 부족하기에 완벽하다고 한 것처럼,
나도 ‘나’ 다운 불완전한 완벽을 가지길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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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제야 나의 오만을 스스로 눈치채게 되다니..
어쩌면 엄마도 짧은 생이었지만 엄마의 삶 그 자체로 완벽이었을 수 있겠다.
내가 감히 엄마의 삶을 미완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을,
엄마가 되어서야 깨닫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