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하나의 엄마, 마흔넷의 딸

[애도] 엄마를 앞질러 살아버린 시간에 대하여

by 카인드마마

주민등록 등본, 초본, 가족관계증명서.


어떤 자료를 들춰봐도 엄마는 이름만 남아 있었다.

서류 속에 엄마는 주소도, 생년월일도, 생을 마감한 그날의 기록도 없었다.

이 세상에 남아 있는 엄마의 흔적은 이름 세 글자뿐인 것 같았다.

그 서류들은 엄마의 이야기를 일부러 말하지 않는 아빠를 닮아 있었다.

존재는 부정하지 않지만,

어느 것 하나 자세히 알려주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한 장의 종이 앞에 무너졌다.

아빠의 혼인관계증명서였다.

그 안에는 엄마의 출생과 혼인, 그리고 사망한 날짜까지 정확히 적혀 있었다.

세상에 남아 있는 엄마의 기록을 이렇게 자세히 본 것은 처음이었다.

주민센터에서 걸어오는 내내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근처 카페에 들어가 달력 어플을 켰다.

이유는 없었다.

음력 날짜로 되돌려보겠다는 생각을 왜 하게 되었는지 지금도 알 수 없다.

그냥, 그렇게 해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날짜를 하나씩 거슬러 올라가다,

나는 멈추고 말았다.

엄마의 기일은 내가 알고 있던 날보다 이틀 이후였다.

숫자 하나가 어긋났다는 사실보다,

엄마를 잃고도 엄마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살아온 나의 시간이 화가 났다.

따져 물을 사람은, 친정오빠밖에 없었다.

엄마의 기일을 먼저 챙긴 적이 한 번도 없는 아빠에게는 묻고 싶지 않았다.

오빠에게 당장 전화를 걸었다.

오빠는 당황하다가 설명했다. 제사는 보통 자정에 지내는데, 시간이 늦으니 이래저래 당겨지다 보니 그렇게 된 거 같다고 했다.

통화를 끊고 나서도 손이 떨렸다.

폭풍처럼 밀려오는 감정은 분노만이 아니었다.

미안함이었다.


그날,

나는 하루 종일 울었다.


그리고 서류 한 귀퉁이에 적힌 엄마의 생일을 오래 바라보았다.


1952년 12월 29일.


엄마는 마흔한 번의 새해를 맞고 세상을 떠났다.

나보다 더 어렸다.

내가 엄마보다 더 나이 들 거라는 생각을 못하고 살았다.


몇 해 지나지 않은,

나의 마흔한 살이던 해를 떠올려본다.

나는 그 해 7월에 셋째를 출산했다.

엄마가 세상을 떠난 그 나이에 나는 아이를 출산했다니.

같은 나이, 전혀 다른 자리였다.

엄마를 생각하니 계획 없이 찾아온 셋째는 나에게 기적이었다.

그 아이로 인해 마흔하나의 나이는 더 특별해졌다.


마흔하나.

엄마에게는 너무 어린 나이였고,

나에게는 노산이라는 타이틀을 준 늦은 나이였다.

엄마의 둘째인 나는 여덟 살이었고,

나의 첫째는 일곱 살이었다.

마흔하나는 엄마와 나 사이에 미묘한 숫자가 되었다.


엄마의 시간을 지나 그 후의 삶을 살고 있는 나를 바라본다.

마흔넷.

엄마도 마흔넷의 일상을 당연하듯 생각했을 텐데.

엄마에게 오지 못한 시간을 살며 나는 얼마나 의미 있게 살고 있는가 반문해 본다.

늘 잘 살고 싶다고, 좋은 사람으로 살고 싶다고 말하면서 도대체 어떤 노력을 하며 살고 있느냐고.

나는 그 질문을 붙든 채 한참을 서 있었다.


그때는 몰랐다.

내가 쉰이 넘고, 예순이 넘어도 나는 엄마보다 어른이 될 수 없는 것을.

내가 결국에는 엄마를 앞지를 수 없는 삶의 끝이

그 사실을 명확하게 해 주었다.

생각이 거기까지 닿고서야 알았다.

내가 내 아이를 살피는 것과 같이, 내가 걸어가는 걸음마다 엄마가 함께하고 있었음을.

그래서 나는 더 이상 8살에 엄마를 잃은 불쌍한 아이가 되거나, 마흔하나에 세상을 떠나버린 엄마를 안타까워하는 자라지 못한 8살이 되지 않기로 했다.


이제는 담담히 걸어가기로 다짐해 본다.

마흔다섯, 마흔여섯.

숫자가 바뀌는 그 해마다 나와 엄마를 함께 축복하며 나이 듦을 감사하기로 했다.

나이를 벼슬 삼지 말고, 신이 주신 선물같이.

가끔은 삶이 고되어도, 그마저도 살아있음으로 겪어낼 수 있는 훈장처럼.

그 모든 것이 삶을 더 아름답게 하는 선물이라는 것을, 잊지 않기로 했다.


이제야 비로소

그날의 서류를 접을 수 있게 되었다.

.

.

.

엄마,

나는 마흔넷이 되어서야 조금 알 것 같아.

삶은 생각보다 훨씬 많은 색을 품고 있었고,

엄마는 내 삶의 그 모든 색을 응원하고 있었네.

나는 이제야 8살이던 그때에서 비로소 자라기 시작한 것 같아.

엄마,

지금부터 더 자라날 나를

지켜봐 줘요.



이전 16화세 번의 엄마, 결국의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