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 어리석고, 어렸던 나에게
이제 와서 후회가 된다.
조금 더 이기적이었으면 어땠을까?
어린 시절의 나는 나를 자꾸만 숨겼다.
엄마를 그리워하지 않는 척, 엄마가 궁금하지 않은 척, 다 괜찮은 척.
어른들의 심기를 건드리고 싶지 않았던 나는 존재감 없이 사는 선택을 함으로써 나를 보호했다.
착해지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버려지지 않으려고 착한 척을 했다.
커서도 크게 달라지는 건 없었다.
남들이 편하다면 내가 좀 손해 보더라도 그쪽을 선택했다.
내 선택에서 나는 늘 후순위였다.
그 선택이 나를 행복하게 할 리 없었다. 후회하면서도 늘 같은 선택을 했다.
배려를 선택한 것인 줄 알았는데, 나는 도망을 선택해서 배려 뒤에 숨어 있었다.
어른들은 나를 만나면 물었다.
"잘 지내니? 괜찮니?"
그 질문은 정말 괜찮은지 물어보는 것 같지 않았다. 괜찮아야만 한다는 강요 같았다.
그때 누구 하나라도 "너 괜찮지 않지?"라고 해주었다면 나는 처음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었을까.
괜찮지 않아도 된다고, 괜찮지 않은 것이 당연하다고 누군가 확인해 주었다면 나는 진짜 울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울음이 많은 아이였다.
돌이켜보면 내 눈물은 슬픔보다 방어에 가까웠다.
새엄마에게 혼날 때마다 눈물바람을 하면 새엄마는 뭘 잘했다고 우느냐, 뭐가 서러워서 우느냐고 나를 더 때렸다.
뭘 잘해서도 아니고, 서러워서도 아니었지만 나는 아무 말 없이 울며 새엄마의 속을 긁었다.
결국 방어로 선택한 눈물은 나를 하나도 지켜주지 못했다.
자라면서 내가 나를 위해 선택한 것들은 어느 것 하나 나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착한 아이가 되어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애쓰며 산 것은 가족이라는 그림 안에 살고 싶어서였다.
불편한 존재가 되고 싶지 않았다.
나보다 자기표현이 강하고, 할 말은 하는 오빠를 보며 나는 더 착한 아이가 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내게도 그것이 필요한 줄 그때는 몰랐다.
속으로 나를 그렇게 다그치면서도 나는 결국 공부 잘해서 성공한 흔히 말하는 '엄친아'같은 딸은 되지 못했다.
부모님의 자랑이 되지 못한 나 자신이 패배자인 것처럼, 더 주눅 들고 나를 더 드러내지 못했다.
그렇게 살지 않으면 내가 설 자리가 없다고 믿었다.
그림자처럼, 감정의 쓰레기통을 자처하며 이곳저곳에서 나를 함부로 하도록 스스로를 내버려 두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번의 울부짖음이 전혀 다른 나를 만나게 했다.
서울로 뚝 떨어져 나와 직장생활을 했지만 여전히 가족의 일에 감정 소모가 컸다.
그날도 그런 날이었다.
참을 수 없는 서러움과 분노가 폭발했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처음으로 하나님을 원망하며 서러움을 쏟아냈다.
나를 사랑한다는 신께서 내게만 왜 이리 가혹하신지 이해할 수 없었다.
감당할 수 있는 고통만을 주신다는 것도 싫었다. 반복되는 그 상황을 내가 감당할 수 있다는 메시지가 참을 수 없었다.
짐승처럼 소리 내어 울었던 그날.
내 눈물은 처음으로 슬픔을 표현했다.
그날의 장면은 내 인생에 몇 안 되는 순간이었다.
나는 무릎 꿇고 절규하고 있지만, 햇살이 창을 통해 나에게 쏟아졌다.
그때는 몰랐다.
그날 이후, 내가 나를 대하는 태도가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는 것을.
여전히 착함과 배려로 나를 후순위로 두었지만, 조금씩 인식해 가고 있었다.
'이 선택은 나를 힘들게 해. 다음번에는 다른 선택을 해보자.'
뒤에 있던 내가 조금씩 나를 드러내며 앞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내가 그런 선택을 하기 시작하면서 가족들은 나를 비난했다.
불편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던 나는 그때마다 고통스러웠지만, 실수와 바로잡음을 되풀이하며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
남편과 세 아이들이 나의 대지가 되고, 고유한 나의 뿌리가 드디어 단단해지기 시작했다.
그날,
절규하는 내게 쏟아졌던 햇살이 메시지같이 느껴진다.
"울어. 마음껏 울어라. 너는 그래도 돼. 그런데 걱정하지 마. 너는 강한 사람이 될 테고, 너를 지켜주는 사람들이 있어."
이제야 화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린 시절 미숙한 선택을 하며 스스로를 방치했던 어린 나.
불편한 존재가 되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불편함에 가둬버린 나.
자신을 불쌍하다 여기며 스스로 자존감을 짓밟아버린 나.
이제 그 모든 나를 안아줄 수 있을 것 같다.
너 괜찮지 않았어.
당연히 힘들 수밖에 없었어.
이제 진짜 눈물을 흘려.
그 눈물을 방패 삼지 말고, 눈물을 통해 너를 가로막은 벽을 허물어.
어리석고 무기력했던 어린 나에게,
이제 손을 잡아줄 때야.
이제 괜찮아.
너의 세상은 이제 안전해.
너는 더 이상 어린 네가 아니니까.
이제야 기억 속 흑백의 엄마가,
색깔 옷을 입고 환하게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