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 드디어, 봄
나는 오랫동안, 다시 태어난다면 엄마의 남편이 되어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아빠의 침묵과 배신이 엄마의 병보다 더 아플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빠보다 훨씬 좋은 남편이 되어 엄마 곁에 있어 주고 싶었다.
내 기억 속에 엄마는 한없이 나약한 존재 같았다.
삶에서도, 죽음 앞에서도 엄마는 늘 선택지가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
엄마의 목소리와 몸짓.
그 어느 것 하나 선명하게 기억하지 못하는 나에게 엄마는 생동감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 엄마를 지켜주고 싶었다.
나는 그동안 아빠에게 가면을 씌웠다.
힘든 시간을 이겨낸 영웅처럼, 내 마음속에서 아빠를 미화했다.
내가 그것을 눈치챈 것은 불과 몇 년 전이었다.
아빠는 가족을 위해 희생했고, 힘든 시간을 지나 결국에는 가족을 지켜낸 슈퍼맨이었다.
엄마가 자신의 병을 모르게 한 아빠가 잘한 것이라 생각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내 의식이 그 믿음과 반대로 흐르기 시작했을 때, 아빠의 가면이 조금씩 벗겨지기 시작했다.
가면 속 아빠는 이기적이었고, 비겁했다.
가족을 위해 살았다고 말했지만, 아빠는 가족의 그림 속에서 자주 사라졌다.
어린 시절, 아빠에게서 위로나 보호를 받은 기억은 거의 없다.
영웅이었던 아빠는 내게서 엄마의 사진을 빼앗아 찢고, 재떨이에 버린 무정한 사람이었다.
속절없는 나의 감정앓이 속에서 엄마는 내가 만든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어야 했다.
내게서 엄마는 더 가엽고 나약한 존재가 되었다.
글쓰기를 통해 그 시간들을 객관화해 보며 나는 한 가지를 다시 깨달았다.
나는 아빠의 가면을 벗긴 것이 아니라, 또 다른 가면으로 바꿔 씌운 것이었다는 것을.
엄마와 아빠에게는 함께 웃던 두 사람의 시간이 있었다.
아빠는 농담하기를 좋아하고 유머가 있는 사람이었다.
아빠의 그런 면은 엄마에게 최고의 선물이었다.
내가 알지 못하는 그 많은 시간들을 접어둔 채,
나의 시선에서만 아빠와 엄마를 정의해 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순간.
내 마음속에 있던 울분과 서러움들이 질서를 잊은 채 한꺼번에 나에게서 빠져나가려 발버둥 쳤다.
좁은 입구에 꽉 끼어 아무도 나갈 수 없는 곳.
속은 텅 비어 공허한데,
알 수 없는 답답함이 나를 힘들게 하던 그 공간이 적나라하게 모습을 내비쳤다.
그랬다.
아빠는 영웅도 아니었고, 이기적이거나 비겁하지도 않았다.
엄마는 결코 가여운 존재가 아니었다.
그들이 켜켜이 쌓아온 그 시간들이 부딪치고 부서지며 만들어낸 완전한 삶의 모습일 뿐이었다.
내가 그것을 동정하거나 비난하는 것은 맞지 않았다.
그 속에서 나는 그들의 또 하나의 결실이었고, 그로 인해 나는 또 다른 나의 시간들을 쌓아 삶을 만들어가고 있을 뿐이다.
이해도, 용서도 필요하지 않은 일이었다.
만약 우리가 다시 만난다면, 나는 이제 엄마의 남편을 자처하지 않을 것이다.
다시 내 엄마가 되어주길 바라거나, 내가 엄마의 엄마가 되어주고 싶다는 생각도 하지 않는다.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어떤 관계로 다시 만나든 그저 못다 한 시간들을 함께 하길 소망한다.
같은 시간 위에 서서, 같은 방향으로 걸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좁은 문을 통과하지 못해 아우성치던 그 모든 것들이 드디어 차례를 지켜 하나씩 하나씩 내게서 떠나기 시작했다.
엄마가 내게서 날아간다.
그런 엄마를 기꺼이 웃으며 보내줄 수 있을 것 같다.
그것은 이별이 아닌 해방이었다.
이제 내 마음은 텅 비었고,
비워진 공간에 엄마는 언제든 놀러 올 수 있게 되었으니.
믿을 수 없을 만큼 마음이 가벼워졌다.
나를 누르고 있던 거대한 바위가 먼지가 되어 흩날린다.
드디어,
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