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부르는 달큼함, 봄동된장찌개
입춘.
전 날까지만 해도 꽁꽁 언 땅에서 냉기가 올라오고, 칼바람에 귀가 비틀어질 것 같은 추위였다.
그런데 거짓말처럼 맹추위가 뒷걸음질 치며 물러간다.
창밖을 보고 있자니, 탁한 공기 사이로 봄이 스멀스멀 섞여 들어온다.
봄동.
이맘때 내가 가장 사랑하는 식재료다.
겨울 내내 차가운 땅에 바짝 엎드린 채 자라서 속은 단단하고, 잎은 낮고 넓게 펴진 채소.
키를 키워 뽐내는 대신 땅에 붙어 낮게 버티는 방식으로 겨울을 끝까지 살아낸 대견한 채소다.
고물가 시대에 가격마저 착한, 천사 같은 봄동.
내게는 '입춘대길' 보다 '입춘봄동'이 더 반가운 소식이다.
겉절이처럼 쓱쓱 무쳐내면 아삭하고 달큼한 봄의 맛이 나고,
잘 씻어 된장에 툭 찍어먹기만 해도 충분하다.
쌈으로 먹으면 또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오늘은 그중에서도 가장 포근한 맛을 내기로 한다.
아이들과 함께 먹을 봄동된장찌개를 끓여볼 참이다.
납작하고 넓게 펼쳐진 이 채소를 보며 아이들 눈이 휘둥그레진다.
"엄마, 이게 뭐야?"
"응, 봄동이라는 채소야."
"봄똥? 봄이 똥을 쌌어?"
아이의 시답잖은 농담에 한참을 웃는다.
"그래! 오늘은 봄이 싼 똥을 한번 먹어보자."
아이의 농담 앞에서 봄동의 위상이 단숨에 내려앉는다.
하지만 똥이라 놀림받아도 봄동은 개의치 않는다.
겨울을 이겨낸 그 단단함은
아삭거리는 싱그러운 식감과, 달큼하고 고소한 단맛으로,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아도, 그 존재감이 분명하다.
땅에 붙어 자라는 덕에 봄동에는 흙이 많이 묻어있다.
겨우내 고생했을 이 아이를 살살 달래며 깨끗하게 씻고 있자면,
여느 채소를 다룰 때와 마음가짐이 사뭇 다르다.
아욱은 부드러워지라고 바락바락 씻고, 시금치는 상하지 말라고 물에 살살 흔들어 씻지만
봄동은 내 손 차가운 줄도 모르고 물속에서 한없이 어루만져준다.
흙은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손바닥으로 문지르고 물을 여러 번 갈아내며 겨울을 보내는 의식처럼 정성을 들인다.
추운 겨울을 버텨내고 우리 집 식탁으로 와준 봄동이 고맙고 반가워 그렇게 정성을 들여 씻어낸다.
서걱서걱.
도마 위 칼질 소리도 특별하다.
어떤 채소가 이토록 단단한 수분감을 머금고 있을까.
평소 코인육수를 2알 썼다면 오늘은 3알을 써보자.
된장을 조금 줄이고, 그 빈 곳을 진한 육수로 채워 봄동을 오늘의 주인공으로 만들어주기 위함이다.
국간장 한 스푼으로 맛을 더하고 다진 마늘 반 스푼, 된장 한 스푼을 풀어준다.
진한 멸치 육수가 보글보글 끓으면 먹기 좋게 자른 봄동이 입수할 타이밍이다.
봄동은 너무 많은가 싶을 정도로 넣어도 좋다.
숨이 죽어 양이 줄기도 하고, 넉넉한 봄동 건더기가 얼마나 달큼한지 모른다.
여기서 우리 집 만의 킥은 '마른 새우'다.
마른 새우 한 줌을 인심 좋게 넣어주는 순간.
아이들에게 '한 그릇 더'는 이미 예약 완료다.
자칫 달큰함이 과해질 수 있는 찌개에 아이들도 먹을 수 있는 안 매운 고춧가루를 무심한 듯 반 스푼 넣어준다.
이 무심한 배려로 츤데레 봄동된장찌개가 완성된다.
고소하고 구수하고 달큼한,
한식에서 '맛있다'라고 표현할 수 있는 모든 단어가 이 작은 냄비 안에서 하나의 계절이 되어 피어오른다.
이쯤에서 생각해 보게 된다.
봄이 와서 좋은가, 봄동이 와서 좋은가.
무엇보다 좋은 것은,
문 밖의 계절보다 우리 집 식탁의 계절이 한 발 빨리 와 준다는 사실이다.
<삼 남매네 봄동된장국 레시피>
1. 물 800ml에 진한 멸치 육수를 낸다.
2. 국간장 한 스푼, 마늘 반 스푼, 된장 한 스푼을 풀어 준다.
3. 간을 한 육수가 끓어오르면, 잘 씻은 봄동을 먹기 좋게 잘라 듬뿍 넣어준다.
4. 대파와 마른 새우를 한 줌 넣어준다.
5. 보글보글 끓어오르면 고춧가루 반 스푼을 넣고 한번 더 끓여낸다.
tip. 집된장의 경우에는 설탕을 반 스푼 넣어주면 쿰쿰함을 잡아 줍니다.
<작가의 주방노트>
봄동의 흙을 정성스럽게 씻어내는 일은 결코 번거로운 일이 아니다.
겨울을 그렇게 버텨낸 흔적을 서둘러 지워버리는 것은 봄동에 대한 예의가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의 지난 시련처럼, 툭툭 털기보다 마음을 다해 잘 이겨냈다고 응원의 한마디를 더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