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어릴 적의 흉터

멋대로 새겨진

by 우인

오늘 거울을 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다가 이렇게 자신감이 떨어지게 된 것일까. 분명 어릴 적에는 이 정도까지 스스로를 작게 보지는 않았었기 때문이다. 물론 꽤 일찍부터 나에 대한 기대치를 한껏 내려놓은 것은 사실이지만, 아무튼 어릴 적부터 이런 상태는 아니었다. 나는 아무도 없는 집에서 커피를 마시며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다.


지금, 나의 근원이라. 기억을 다시 초등학생 시절로 돌이켰다. 8살이었던 초등학교 1학년 시절만 해도 나는 꽤 밝은 아이였다고 한다. 당시 담임선생님은 나를 보고 너는 참 청산유수구나 라고 말을 했었다. 당시에는 청산유수가 무슨 말인지도 몰랐었지만, 그 말을 하는 선생님의 표정이 밝았던 것으로 보아 좋은 의미로 말을 한 것이라 받아들였다. 하지만 초등학교 2학년으로 올라가자, 삶의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자세한 이유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나는 당시 학급 사람들로부터 집단적인 따돌림을 당했었다. 그 나이에 알면 무엇을 알고, 잘못을 했으면 무엇을 그렇게 잘못을 했다고, 나는 매일 놀림을 당하고 운동을 잘하는 짝꿍으로부터 꼬집힘을 당했다. 꼬집힌 귀에는 파랗게 멍이 들었고, 마음은 피멍이 들었다. 멍이 난 곳들은 눌릴 때마다 너무 아팠다. 그 사람들이 내 멍 좀 그만 누르게 해 달라고, 하지만 당시 담임선생님은 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내가 울기 시작하면 귀찮은 표정을 지었었다. 그 선생님의 눈에 나는 그저 학급에 따라가지 못하는 미숙한 아이였다. 그 선생님에게 있어 나는 청산유수가 아니었다. 그저 시끄러운 아이였다.


그래서 나는 지금의 내가 시작된 시기를 그때 당시로 생각하고 있다. 그 어린 나이에 너무 많은 것을 잃었고, 많은 것을 놓쳤다. 넘어졌으면 일어나야 했지만, 그 어린 나이에 나는, 어쩌면 당연하게도 스스로 일어날 수 있는 능력이 없었다. 이미 그때부터 사람들은 넘어져있는 나를 밟고 지나가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나는 남들보다 작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horizontal-silhouette-lonely-male-clear-sky.jpg


물론 세상이 그렇게까지 가혹하지는 않아서, 그리고 내가 그렇게까지 무능력하지는 않아서 살다 보니 긍정적인 일들도 도화지에 점찍듯 일어나긴 했었다. 생각지 못했던 기회가 나를 낚아채거나 과분할 정도로 좋은 사람들을 알게 되거나 했다. 그런 식으로 가끔이나마 그동안 움츠려졌던 어깨가 조금씩 펴지긴 했었다. 하지만 그 어떤 순간에도 온몸에 박힌 찌뿌둥함이 사라지는 일은 절대 없었다. 무엇을 해도 찝찝하고 개운치 못한 감정, 과거와 미래에서 동시에 덮치는 후회와 불안은 날마다 나를 뻐근하게 만들었다. 그것은 몸만 자란 나의 속은 여전히 9살 그때의 나에 머무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귀에 들었던 시퍼런 멍도 그대로.


어릴 적에 생긴 흉터는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덜 자란 몸에 멋대로 새겨진 흉터는 아물지도 못해 나의 모든 순간에 함께 한다. 인생의 모든 사진에 나의 흉터가 함께 찍혀있는 것이다. 물론 시간이 흘러 너무나 익숙해진 나머지 요즘은 그 흉터의 존재를 잊고 살아가기도 한다. 하지만 흐리고 쌀쌀한 그 어떤 날, 마음조차 이리저리 차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몸 어딘가 욱신거리는 것이 느껴질 때가 있다. 욱신거리는 곳을 찾다 보면 그 자리에는 잠시 잊고 살았던 흉터가 선명히 보인다. 그리고 그 흉터의 틈 사이로는 귀가 파랗게 멍든 한 아이의 얼굴이 보인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시력과 시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