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홀로, 혼탁

매듭 한가운데서

by 우인

현실에 집착하는 인생은 메말라 비틀어져버린다. 촉촉이 적셔주는 꿈도 이상도 없이 하루하루 벌겋게 달아오른 눈으로 앞만 바라보다 탈진에 쓰러진다. 그게 잘못되었던 것인지도 모른 채로. 그래서 가는 길에 가끔 멈춰 서서 하늘도 보고 길가도 보라 하는 것이다.


길바닥에 차이는 돌멩이마저 부럽게 느껴지는 요즘에 이르러, 다양한 잡생각들이 머리를 강타하고 있다. 정신만 차리려 하면 새로운 잡생각이 다시 머리를 내려찍으니 정신을 차릴 틈이 없다. 진정이 되지 않고 집중이 되지 않는 것은 바로 그러한 것들 때문이다. 최근처럼 머리가 혼탁함을 느낀 적도 없었던 것 같다.


과거는 나의 발목을 붙잡고 있고, 미래는 어둠 속에 숨어있다. 과거와 미래 틈에 끼어버린 현재의 나는 숨이 막히는 것을 눈을 뜨는 순간마다 함께 느낀다. 목이 졸리는 상황에서, 앙상한 팔로 내 목을 조르는 그것을 본능적으로 떼어내려 해도 차마 힘에 부친다. 숨은 가빠지는데 팔에는 점점 힘이 빠지는 것 같다.


하지만 도와주는 사람도 없다. 물론 내가 먼저 그들을 부르지 못하는 책임도 못지않게 크다. 내가 그들에게 그만한 필요로 하는 사람인지 스스로에게조차 답을 내려주지 못했으니 그럴 만도 하지만, 아무튼 이러한 상태에 손 잡아달라 할 수 있는 사람 하나 없는 것은 퍽 슬픈 일이다. 카카오톡에 저장된 수백 개의 연락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건 그저 어떤 데이터의 집합체일 뿐이었다.


abstract-splashed-watercolor-textured-background_53876-8697.jpg


최근에는 나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작아져버린 상태였음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마른 마음을 꺼내 확인해보니 그 속에 들어있던 나는 예상보다 극심하게 줄어들어 있었다. 돋보기를 가져와야 겨우 확인할 수 있을 만큼 줄어들어 있었다. 무척이나 수척해지고 창백해진 나는 빛을 두려워하며 저기 구석에 쭈그리고 있었다. 툭 건들면 잿더미가 될 것만 같이 말라 있었다. 그것이 나라고 믿고 싶지 않을 정도로 하찮았다.


무엇이 문제인지도 모르는데 답을 찾고 있다. 시작과 끝을 모르는 줄의 엉킨 매듭 한가운데서 매듭을 풀 궁리만 하고 있다. 그럴싸한 흉내에도 한계가 보이고 있다. 수수깡 얼기설기 엮어 만든 성은 삐걱거리고 있다. 무언가 분명 해결해야 하는데, 정말로 모르겠다. 분명 내 바로 앞에 서있는데, 도저히 그것이 무엇인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무엇인지 형체도 모르겠는데 시간은 얼른 해결하라고 채찍질을 하고 있다. 남들은 이미 전부 다 했던 것이라고. 보라, 저 사람들은 저렇게 잘만 해치우는데 너는 뭘 멀뚱멀뚱 서있는 것이냐, 뒤에서 발길질을 한다. 그런데 팔이 움직이질 않는다. 이미 목이 졸려 팔도 힘이 빠지고 있는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냐고 소리를 지르고 싶다. 물론 그렇게 말해봐야 돌아오는 것은 남들 다 하는 것 하나 못하는 나약해빠진 사람이 하는 소리라는 비웃음일 것이다.


바다에 가는 꿈을 자주 꾼다. 바다로 가득한 곳에서 조용히 산책을 하고 있다. 그런데 꼭 뒤에서 누가 나를 쫓아온다. 나는 그 낌새에 놀라 산책을 멈추고 부리나케 달아난다. 나는 자면서도 꿈에서도 쉴 수 없는 존재인 것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어릴 적의 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