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목처럼
정체가 불분명한 화가 온몸을 휘젓고 가는 때가 아주 가끔 있다. 이유도 대상도 없는 화가 어디인지도 알 수 없는 곳에서 발현이 되면, 그것은 혈관을 타고 흐르는 피에 섞여 온몸을 순회한다. 나는 화가 혈관을 타고 지나가는 자리마다 깊은 가려움과 뒤틀림을 느낀다.
화가 나의 속에서 장난을 벌일 때마다 나는 매우 난처하다. 그 불똥 같은 것이 아지랑이처럼 나를 놀리기 때문이다. 나는 얼른 이 화를 낚아채 밖으로 내던지고 싶은 마음이 절박하지만 화의 질감만 아스라이 느껴질 뿐 도저히 잡을 수가 없다. 나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활개 하는 그 불쾌한 진동에 무기력하게 넘어간다.
무기력해진다. 그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나는 나의 화를 무고한 바깥에 함부로 휘두르지 않는다는 것은 장담할 수 있다. 어릴 적부터 모든 화살의 과녁을 나에게 정조준하는 것을 생활화하였기 때문이다. 피해는 주면 안 된다. 고목처럼 안에서부터 썩어 들어가더라도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나는 화를 최대한 안에서 삭이는 수밖에 없다. 물론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나는 가면을 쓰고 동시에 팔다리를 묶는 연습을 했다. 머릿속에 응축된 감정을 함부로 입을 통해 분출하지 않으며, 입꼬리는 항상 직선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리고 팔과 다리에도 힘을 빼고 가만히 진정시키는 것이다. 나는 항상 그렇게 위기를 무마하였다.
하지만 이에 대한 부작용인지 최근 들어 갑자기 욱하는 것은 늘어났다. 저번에는 가족들이 물었다. 요즘 답답한 일이 있는 것이냐고. 답답한 것은 사실이다. 사람도, 사랑도, 미래도 어느 하나 속이 시원한 것이 없다. 이에 대해 쓰자면 책을 한 권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안에 차곡히 쌓아둔 것은 넘치기 일보직전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이에 반해 바깥으로 내보내는 것은 극히 적다. 어쩌면 아예 없다. 누구에게 어떻게 전달해야 하는 것인지, 심지어 전달하는 것 자체가 옳은 것인지마저 회의를 가져왔다. 그래서 나는 날마다 쌓이는 것들을 둘 곳이 없어 하는 수 없이 가슴속에 욱여넣듯 집어넣었고, 가득 찰 대로 차 버린 가슴은 결국 잠시 걸터앉을만한 공간조차 잃었다. 그리고 이제는 금이 가 그 틈으로 그동안 응축된 감정이 조금씩 새어나가고 있는 것이다. 욱이라는 이름으로.
그래서 사람의 마음을 꺼내 관찰할 수 있다면 분명 나의 것은 타인의 것보다 시퍼렇고 메말라 있으며, 쪼그라들어 여기저기 뒤틀려 있을 것이다. 날마다 쌓이는 것들에 밀려 빛도 영양도 제대로 공급받아본 적이 없으니 그럴 만도 할 것이다. 이제는 마음에 물을 줘도 흡수도 하지 못하니, 이미 고장이 날대로 고장났다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마음에게 그래도 신선한 바람이라도 쐬어주기 위해 원래는 내일 아침 일찍 홀로 동해 바다를 보러 갈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파도가 치는 모습이라도 가만히 지켜보면 말라 뒤틀어진 것들이 그나마 나아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기차표도 예매하고 무엇을 입고 갈지도 생각해놨었다. 그런데, 모종의 이유가 생겨버렸다. 스스로 무엇이라도 발버둥 치려던 담대하고 과감했던 계획은 정말 얼마 안 되어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누구를 탓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기에 나는 다시 한번 온몸을 휘감는 가려움을 무기력하게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 나는 반대로 굳게 다짐했다. 나는 바다를 보러 갈 것이라고. 나는 반드시 차가운 동해에 마음에 쌓인 덩어리들을 조금이나마 던져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보다 더욱 여유를 잃기 전에, 그래서 나를 완전히 잃기 전에 나는 곧 반드시 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파도가 나를 삼키는 상상을 하며, 나는 오늘도 내일도 버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