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의 여름, 웃음으로 서로를 지탱하는 우리가 있다
“2학년 2반…. 아니 초등 4반 물품 찾으러 왔습니다!”
“잠시만요.”
방학 돌봄을 총괄하시는 K선생님께서 바쁘게 서류를 뒤적이며 상자 안 물건을 확인한다. 빠진 게 없었던지 서류를 탁 덮은 선생님은 내 품에 묵직한 종이상자를 안겨준다.
“일주일간 잘 부탁해요!”
“근데 왜 우리 반이 초등 4반이래요? 그냥 2학년 2반으로….”
“아! 거참 좀! 그냥! 좀! 어?!”
“알았어요. 그냥 입에 안 붙어서 물어봤죠. 고생하셔요!”
코를 찡긋하고 웃으며 돌아섰다. 6월부터 방학 중 돌봄교실 운영을 도와달라고 애걸복걸할 때는 언제고, 그때는 간이며 쓸개도 다 내줄 것 같았다. 허나 막상 운영일이 되자 조금이라도 토를 달면 서슬 퍼런 눈빛을 쏘아붙이니 깨갱하고 물러날 수밖에
몇 발짝 걷다가 뒤를 돌아봤다. 쉼 없이 서류를 확인하고 다른 반 선생님 품에 상자를 전달하는 K 선생님, ‘정신이 없으시겠지.’, 1주일간의 전체 학생들의 일과 운영을 온전히 책임져야 하니 말이다.
[교사가 미칠 때쯤 방학이 찾아오고, 부모가 돌아버리기 전 개학이 찾아온다.]
명언이다. 드디어 우리 학교에도 방학이 찾아왔다. 특수학교의 방학도 일반학교의 방학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온전히 가정에서 재충전의 시간을 보내는 녀석들도 있고, 친척 집 방문이나 해외여행을 위해 방학 전부터 가정체험학습을 신청하는 학생들도 종종 보인다. 물론 여러 가지 이유로 추가적인 보살핌이 필요한 친구들도 있다. 이 아이들을 위해 우리 학교에서는 방학 이후에도 일주일간 추가 돌봄 교실을 운영한다.
프로그램 운영은 아이 특성을 잘 이해하고 있는 담임교사가 실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거부할 권리가 있지만 내 반 내 새끼들이 학교에 나온다는데 돌봄을 못 맡겠다고 손사래 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특별한 일(출장, 연수 등)이 없다면 담임 선생님들이 돌봄 교실을 맡게 되고 정신줄을 놓기 전 마지막 한 가닥을 부여잡고 1주일간의 추가 여정을 나서게 된다.
“읏쌰”
내려놓은 상자 안에 프로그램 운영을 위한 갖가지 물품들과 활동 시간표가 보인다. 담임 선생님의 부담을 덜어주려 노력한 흔적이 절절하다. 시간표대로 프로그램을 운영해도 되지만 실질적 운영은 담임 재량이기에 첫 시간에 어떤 활동부터 해볼지 상자 안을 뒤적여 본다.
‘좋아, 너로 정했다!’
요거트에 각종 시럽을 넣어 만드는 요거트 아이스크림 키트가 내 손에 걸려들었다. 충분히 얼릴 시간도 필요하기에 첫 시간에 진행하는 것이 알맞을 듯했고 무엇보다 요리 활동 자체를 선호하지 않는 담임을 만난 한 학기 동안 간식 한번 못 만들어 본 아이들에게 꽤 새로운 체험이 될 것 같았다.
사실 아이들도 방학이 시작됨을 알고 있다. 말로 표현하지 못해서 그렇지 통학버스의 빈자리, 줄어든 교직원, 한결 너그러워진 선생님들을 보며 본능적으로 알아챈다. 그리고 선생님들 못지않게 쉬고 싶어 한다.
그렇게 버티면서 나오는 아이들에게 “기특하다, 고생했다”라며 선물 같은 하루를 선사하기에 아이스크림만 한 게 없겠지. 꽝꽝 얼려진 아이스크림을 번쩍 들었을 때 더위에 퍼져있던 아이들이 액체가 고체가 되어 있는 기적을 목도한다. 신비로움에 두 손 들어 나를 추앙하고 경배하는 모습을 상상하니, 무슨 교주라도 된 듯 한 쪽 입꼬리가 올라가며 거만한 웃음이 지어진다.
기적을 일으키기 위한 성수를 만들 듯 넓은 그릇에 요거트 가루를 넣고 우유를 섞는다. 아이들 한명 한명의 손길이 더해져 어느새 시큼한 요거트 냄새가 젓는 손길을 따라 피어오른다. 이제 과일시럽을 고를 차례 요거트에는 관심도 없던 지성이가 망고 시럽을 냄새를 맡더니 ‘이거야 이거!’ 하며 환호하는 소리를 낸다. 다른 녀석들의 압도적 지지가 이어졌기에 딸기는 탈락이다.
준비된 비닐 튜브(설레임 아이스크림 포장지와 같음)에 깔때기를 꽂고 망고 시럽을 나눠 담은 뒤 요거트를 부으면 제작 과정은 끝, 이제 얼리기만 하면 되는데….
“어라?”
뚜껑이 없다. 튜브를 막기 위한 뚜껑이 키트안에 있어야 할 터인데 아무리 뒤져봐도 보이지 않는다. 혹시 빠뜨렸나 싶어 K선생님께 여쭤보니 잠시 후에 나타나서는 자기도 내가 말해줘서 알게 되었고 뚜껑이 없는 반이 여럿 있단다.
“그냥 얼리지 말고 마시게 할까요?”
이미 엎질러진 우유였기에 실무원님 깨서 궁여지책으로 주스처럼 마시게 하자 하신다. 그러는 것이 수월하긴 하겠지만 시원한 아이스크림을 먹이고자 했던 계획이 틀어지니 속이 상했다. 하지만 뚜껑을 대체할 만한 것도 없었고 에어컨을 틀긴 했어도 무덥고 습한 날씨에 상할 것이 염려되다 보니 달리 선택지가 없었다.
“왜 별로야?”
난감한 상황이 벌어졌다. “시원한 아이스크림을 주겠다더니 거짓말쟁이!” 하며 심통이 난 건지 아니면 요거트 특유의 시큼한 냄새가 별로였던지 아이들 모두 손사래 치며 마다한다. ‘짜식들 준비한 성의가 있는데….’ 국자로 괜히 그릇 안을 휘저으며 눈을 흘기지만, 망고 향에 환호했던 지성이마저 질끈 눈을 감은 채 고개를 휙 돌려버린다.
“됐다 됐어! 내가 먹으면 되지, 뭐!”
홧김에 두 손으로 그릇을 들고 벌컥벌컥 마시는데 이게 요거트인지 막걸리인지 들큰한 느낌마저 들고 손 등으로 입을 쓱 닦는데 시큼한 냄새가 진동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이들은 여전히 관심이 없고 실무원님만 그걸 진짜 다 마신 거냐며 쿡쿡 웃으신다.
“버리면 아깝잖아요.”
터덜터덜 빈 그릇과 국자를 들고 화장실로 갔다. 방학 돌봄 첫 시간을 아주 시원하게 말아먹었다. 어찌나 시원하게 말아먹었던지 개운하게 올라오는 트림까지 쏟아내며 쓸쓸히 그릇과 국자를 씻어냈다.
이어진 두 시간 동안은 여름 바다를 풍경으로 한 저금통 만들기를 하며 어찌어찌 보냈고 마지막 신체 놀이 시간, 강당에 가 보니 다른 반도 많이 보인다. 돌봄 첫날 활동 내용이 제각각이었기에 각자 어떤 활동을 했는지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다. 모두 우왕좌왕 하기는 마찬가지였나보다. 떡 간식을 만들던 중 그릇에 재채기를 해버린 친구 때문에 먹지도 못하고 버렸다는 반도 있었고 바람을 불어 넣어 만드는 뿅망치를 손톱 끝으로 세게 눌러 터쳐버리는 바람에 반 아이들 모두 까무러쳤다는 반까지 사건·사고도 다양했다.
다행인 것은 방학도 충분히 누리지 못하는 마당에 이런 좌충우돌을 겪었음에도 모두의 얼굴은 한없이 밝았다. 서로의 어려움에 공감하고 작은 실수에도 “괜찮다. 그 정도면 다행이다.” 해주며 어깨를 내어주는 이들이 있어 피곤함도 잊은 듯했고 앞으로 사용할 교구를 미리 사용해 본 반 선생님께 노하우를 얻으며 내일 수업을 준비하는 모습도 뭉클했다.
그런 동료들을 보니 새삼 위안이 찾아왔다. 학년도 교과 내용 그리고 아이도 너무 다르기에 자칫 각자의 어려움에 소홀해질 수 있지만 사실 모두가 애쓰고 있음을 또 견뎌내고 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우리다. 그리고 내일은 더 낫겠지 더 잘해야지 하며 다시 일어서고 또 일으켜 주는 우리임을 나는 잊지 않는다. 진정으로 추앙 받아야할 분들은 당신들이며 기회가 되면 언제고 나도 여러분들에게 기댈 수 있는 어깨를 내어주고 싶다.
“선생님!”
내 마음을 읽은 걸까 누가 내 어깨를 툭 친다. 돌아보니 후배 선생님 한 분이 빙긋 웃으며 서 계신다.
‘이제 내가 어깨를 내어줄 차례인가?’
‘무슨 말부터 하지? 애쓰셨어요? 아니면 오늘 어땠어요?’
어떤 말을 할지 고민하려던 찰나 그럴 필요 없다는 듯 선생님께서 선수 치신다.
“그걸 혼자 다 드셨다면서요? 큭큭큭큭큭”
요거트 유산균이 장까지 살아서 갔나 보다. 쥐구멍이나, 아니 화장실이나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