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 속에서 만난 진짜 나
좁은 플리스틱 베드에 눕힌 내 몸이 서서히 기계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둥둥 파합”, “둥둥 파합”
귀마개를 했음에도 규칙적으로 들려오는 기계음은 완전히 차단되지 않는다. 언뜻 예전에 나이트클럽 화장실에서 들었던 물먹은 비트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때와 다른 것이 있다. 절대로 비트에 맞춰 몸을 움직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저 기도하는 석상처럼 몸의 침묵을 지키며 기계에서 나왔을 때 마주할 검사 결과가 나쁘지 않기만 바라야 한다.
‘부디 큰 부상이 아니기를….’
..
..
“강00님 진료실로 들어오세요.”
친절한 음성에도 긴장을 내려놓지 못한 채 문을 밀어본다. MRI 검사 결과가 이미 나왔는지 의사는 내 쪽은 보지도 않은 채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하고 딸각딸각 마우스 소리만 내고 있다. 몇 번 더 이어진 클릭 소리 후 선고하듯 내뱉는 한 마디
“찢어졌네요.”
예상대로였다. 죄인이라도 된 듯 고개를 떨궜다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묻는다.
“저기 그럼 앞으로 운동은….”
“운동이요? 아! 배구 계속할 수 있냐고요? 하세요!”
“네?”
“하시라고요. 수술대 올라가고 싶으시면요.”
놀리듯 하시는 말씀이 비수처럼 가슴에 꽂힌다. 나는 멋쩍게 웃으며 다시 고개를 떨군다.
‘하, 끝났구나’
키 171cm 어중간한 키, 죽어라 점프해 공을 날려봐도 180㎝ 장신의 수비벽에 번번이 막히는 신세지만 군 복무기간을 제외하고는 교직 생활 내내 배구코트 언저리를 떠나본 적이 없다. 연습 중 부상으로 무릎 수술까지 했었음에도 다시 코트에서 뛸 날만 기다리며 재활프로그램에 참여할 정도로 나는 배구에 진심이었다.
무엇을 위해 그렇게도 이 운동에 매달렸던 걸까? 건강한 신체, 인간관계, 정신 수양 뭐 이런 것들? 솔직히 말하자면 그런 것들은 핑곗거리였을 뿐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의 낮은 자존감 때문에 이 운동에 목메고 있었음을 이제는 고백한다.
오래전 군 복무를 마치고 복직한 학교에서의 생활은 마냥 순탄치만은 않았다. 특수교육을 인정하지 않는 관리자와 각기 다양한 능력과 스펙을 가진 초등 선생님들 사이에서 나는 자꾸 움츠러들고 있었다. 중요한 직책을 맡거나 학생 지도 또는 연구 활동을 통해 실적을 내는 교사들이 더 인정받는 분위기 속에서 나는 특별한 이력도 성과도 내지 못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날이 갈수록 열등감만 심해졌고 스스로를 남들이 꺼리는 업무만 떠맡아 처리하는 추가 인력 같은 존재라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갖고 있던 역량은 부족했지만, 욕심만 컸던 나였기에 그들처럼 인정받고 주목받고 싶었다. 누군가 제발 나에게 기대와 선망의 눈빛을 보내주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런 갈급함으로 꾸역꾸역 학교생활을 하던 중 우연한 직원 체육활동에서 뜻밖의 상황을 마주하게 되었다.
나서는 사람이 없어서, 막 제대한 젊은 남교사라서, 떠밀리듯 공격포지션에 서게 됐다. 배운 적 없지만, 세터가 올려준 공을 어떻게든 상대 코트로 넘겨야겠다는 일념으로 서툴게 휘두른 손목에 배구공이 감겨 들어갔다.
“따당”
배구공이 상대 코트에 정확히 꽂히자, 감탄 또는 놀람으로 나를 보는 동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그때 직감했다.
‘내가 이걸로라도 두각을 나타낼 수 있겠구나!’
그 뒤로 네트가 있는 곳은 어디든 쭐레쭐레 따라다니며 주 4회 배구라는 말도 안 되는 일정을 소화했고 주위에서 배구 좋아하는 혹은 조금 잘하는 특수교사로 불리기 시작했다. 심지어 코트에서 만난 몇몇 관리자들이 함께 근무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하면서 나를 치켜세워주었고 마약과 같은 도취감은 어깨와 무릎의 통증을 무시하면서까지 나를 코트로 내몰게 했다. 그렇게 나는 구멍이 숭숭 난 자존감을 배구 네트로 땜질하고 있던 것이다.
몸에서 보낸 신호를 무시한 대가는 너무나도 컸다. 무릎 수술로 인해 굽혔다 폈다 하는 동작을 할 때마다 무릎에서는 모레 쓸리는 소리가 들리며 오른쪽 어깨는 스트레칭을 할 때마다 아프다고 아우성이었다. 결국 그 아우성에 못 이겨 찾아간 병원에서 15년간의 배구 여정의 마침표를 찍게 되었다.
두려웠다. 그동안 갈고 닦았던 나의 무기가 눈앞에서 산산이 쪼개지는 모습을 목도하는 것처럼 하지만 누군가 말하지 않았던가! 「한쪽 문이 닫히니 다른 쪽 문이 열린다.」라고 말이다. 아니 첫 수술을 마치고 책 한 페이지를 넘길 때부터 나는 다른 쪽 문을 염두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운동하는 시간이 줄어든 만큼 나에 대해 질문할 시간이 늘어나고 그 궁금증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책을 꺼내 보는 시간이 늘어났다. 마음을 울리는 문장 한 구절이라도 길어 올릴 때면 잊을까 아쉬워 가볍게 메모하게 됐고 그렇게 글도 조금씩 쓰게 되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에서 한결같이 말해주고 있는 것이 있다.
“꼭 뭔가를 잘해야만 네가 가치 있는 게 아니야, 그저 너라서 귀한 거야!”
“그걸 알았다면 정말 중요한 일을 떠올려봐 남의 시선에 휘둘리지 말고”
밖에서 그토록 찾아 헤맸던 것이 내 작은 몸 한구석에 있었음을 다른 쪽 문을 연 순간에야 알았다. 그 안에는 외면받고 상처 입었음에도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던 나의 자존감이 두 팔을 내밀고 있었다.
‘미안해, 많이 기다렸지.’
사랑했던 배은 플리스틱 베드에 눕힌 내 몸이 서서히 기계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둥둥 파합”, “둥둥 파합”
귀마개를 했음에도 규칙적으로 들려오는 기계음은 완전히 차단되지 않는다. 언뜻 예전에 나이트클럽 화장실에서 들었던 물먹은 비트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때와 다른 것이 있다. 절대로 비트에 맞춰 몸을 움직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저 기도하는 석상처럼 몸의 침묵을 지키며 기계에서 나왔을 때 마주할 검사 결과가 나쁘지 않기만 바라야 한다.
‘부디 큰 부상이 아니기를….’
..
..
“강00님 진료실로 들어오세요.”
친절한 음성에도 긴장을 내려놓지 못한 채 문을 밀어본다. MRI 검사 결과가 이미 나왔는지 의사는 내 쪽은 보지도 않은 채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하고 딸각딸각 마우스 소리만 내고 있다. 몇 번 더 이어진 클릭 소리 후 선고하듯 내뱉는 한 마디
“찢어졌네요.”
예상대로였다. 죄인이라도 된 듯 고개를 떨궜다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묻는다.
“저기 그럼 앞으로 운동은….”
“운동이요? 아! 배구 계속할 수 있냐고요? 하세요!”
“네?”
“하시라고요. 수술대 올라가고 싶으시면요.”
놀리듯 하시는 말씀이 비수처럼 가슴에 꽂힌다. 나는 멋쩍게 웃으며 다시 고개를 떨군다.
‘하, 끝났구나’
키 171cm 어중간한 키, 죽어라 점프해 공을 날려봐도 180㎝ 장신의 수비벽에 번번이 막히는 신세지만 군 복무기간을 제외하고는 교직 생활 내내 배구코트 언저리를 떠나본 적이 없다. 연습 중 부상으로 무릎 수술까지 했었음에도 다시 코트에서 뛸 날만 기다리며 재활프로그램에 참여할 정도로 나는 배구에 진심이었다.
무엇을 위해 그렇게도 이 운동에 매달렸던 걸까? 건강한 신체, 인간관계, 정신 수양 뭐 이런 것들? 솔직히 말하자면 그런 것들은 핑곗거리였을 뿐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의 낮은 자존감 때문에 이 운동에 목메고 있었음을 이제는 고백한다.
오래전 군 복무를 마치고 복직한 학교에서의 생활은 마냥 순탄치만은 않았다. 특수교육을 인정하지 않는 관리자와 각기 다양한 능력과 스펙을 가진 초등 선생님들 사이에서 나는 자꾸 움츠러들고 있었다. 중요한 직책을 맡거나 학생 지도 또는 연구 활동을 통해 실적을 내는 교사들이 더 인정받는 분위기 속에서 나는 특별한 이력도 성과도 내지 못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날이 갈수록 열등감만 심해졌고 스스로를 남들이 꺼리는 업무만 떠맡아 처리하는 추가 인력 같은 존재라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갖고 있던 역량은 부족했지만, 욕심만 컸던 나였기에 그들처럼 인정받고 주목받고 싶었다. 누군가 제발 나에게 기대와 선망의 눈빛을 보내주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런 갈급함으로 꾸역꾸역 학교생활을 하던 중 우연한 직원 체육활동에서 뜻밖의 상황을 마주하게 되었다.
나서는 사람이 없어서, 막 제대한 젊은 남교사라서, 떠밀리듯 공격포지션에 서게 됐다. 배운 적 없지만, 세터가 올려준 공을 어떻게든 상대 코트로 넘겨야겠다는 일념으로 서툴게 휘두른 손목에 배구공이 감겨 들어갔다.
“따당”
배구공이 상대 코트에 정확히 꽂히자, 감탄 또는 놀람으로 나를 보는 동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그때 직감했다.
‘내가 이걸로라도 두각을 나타낼 수 있겠구나!’
그 뒤로 네트가 있는 곳은 어디든 쭐레쭐레 따라다니며 주 4회 배구라는 말도 안 되는 일정을 소화했고 주위에서 배구 좋아하는 혹은 조금 잘하는 특수교사로 불리기 시작했다. 심지어 코트에서 만난 몇몇 관리자들이 함께 근무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하면서 나를 치켜세워주었고 마약과 같은 도취감은 어깨와 무릎의 통증을 무시하면서까지 나를 코트로 내몰게 했다. 그렇게 나는 구멍이 숭숭 난 자존감을 배구 네트로 땜질하고 있던 것이다.
몸에서 보낸 신호를 무시한 대가는 너무나도 컸다. 무릎 수술로 인해 굽혔다 폈다 하는 동작을 할 때마다 무릎에서는 모레 쓸리는 소리가 들리며 오른쪽 어깨는 스트레칭을 할 때마다 아프다고 아우성이었다. 결국 그 아우성에 못 이겨 찾아간 병원에서 15년간의 배구 여정의 마침표를 찍게 되었다.
두려웠다. 그동안 갈고 닦았던 나의 무기가 눈앞에서 산산이 쪼개지는 모습을 목도하는 것처럼 하지만 누군가 말하지 않았던가! 「한쪽 문이 닫히니 다른 쪽 문이 열린다.」라고 말이다. 아니 첫 수술을 마치고 책 한 페이지를 넘길 때부터 나는 다른 쪽 문을 염두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운동하는 시간이 줄어든 만큼 나에 대해 질문할 시간이 늘어나고 그 궁금증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책을 꺼내 보는 시간이 늘어났다. 마음을 울리는 문장 한 구절이라도 길어 올릴 때면 잊을까 아쉬워 가볍게 메모하게 됐고 그렇게 글도 조금씩 쓰게 되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에서 한결같이 말해주고 있는 것이 있다.
“꼭 뭔가를 잘해야만 네가 가치 있는 게 아니야, 그저 너라서 귀한 거야!”
“그걸 알았다면 정말 중요한 일을 떠올려봐 남의 시선에 휘둘리지 말고”
밖에서 그토록 찾아 헤맸던 것이 내 작은 몸 한구석에 있었음을 다른 쪽 문을 연 순간에야 알았다. 그 안에는 외면받고 상처 입었음에도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던 나의 자존감이 두 팔을 내밀고 있었다.
‘미안해, 많이 기다렸지.’
사랑했던 배구여 안녕
이제 나를 온전히 더 사랑해 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