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 부모의 탄생] 누가 그들을 탓할 수 있을까 -
`어디 보자, 성함이…`
새 학기가 시작되기 일주일 전 보호자님 한분 한분에게 인사차 전화를 걸었다. 지난 1년간 우리 학교에 아이들을 보냈던 그분들의 짬밥에 비하면 나는 전출 인사명령서에 잉크도 채 마르지 않은 솜털 보송이임이 분명하기에 대본까지 준비하고 여쭐 내용도 꼼꼼히 점검했다. 하지만 수화기를 들기까지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후”
번쩍 수화기를 드는 순간만큼은 제법 패기를 부려 보았다. 하지만 전화번호 열한 번째 숫자를 누르기 전 깊은 심호흡과 콧잔등에 옅게 맺힌 땀방울에 내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 발가락이 오므라든다.
사실 일선 학교 보호자들의 기상천외한 민원과 요구사항에 대해서도 왕왕 들어본 적이 있기에 첫 통화부터 어리숙하거나 만만해 보이면 안 된다는 압박감도 제법 컸던 것 같다.
다행히 준비한 대본은 제법 효과를 발휘했다. 때로는 뭔가 막힐 때도 있었지만 “열심히 해보겠습니다.”라는 신입사원 돌림노래 같은 소리라도 하다 보니 드디어 마지막 보호자님과의 통화에 이르렀다. 내가 맡게 될 아이 중 유일한 여학생의 보호자님이다. 그런데 앞선 통화들과는 다르게 통화 시작부터 보호자님의 목소리가 마뜩잖다. 그리고 의아스럽다는 듯 꺼내시는 한마디
“혹시, 남자 선생님이신가요?”
“네 보호자님, 저는 남자인데요.”
우려와 염려가 담긴 질문에 대한 나의 답변이 썩 만족스럽지 못했는지 잠깐의 정적이 찾아왔다. 그러고는 의아함을 넘어 걱정스러움이 가득 담긴 질문을 던지신다.
“저희 아이가 아직 기저귀를 착용하는데 어떻게 하죠?”
“걱정 마세요. 저희 교실에는 저뿐만 아니라 여성 실무원님도 계십니다.”
“그럼, 그분께서 1년 동안 저희 아이 기저귀를 봐주시는 건가요?”
“네 그러실 거예요.”
“하…”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한숨은 안도감으로 내쉬는 짧은 한숨은 아니었다. 시름과 염려로 가득한 쇳덩어리처럼 길게 내뱉는 한숨이 수화기 너머에서 느릿느릿 나의 가슴으로 굴러 내려왔다.
‘혹시 전년도 실무원님과 어떤 갈등이 있으셨던 걸까?’
‘아니면 실무원님께서 자리를 비우게 되었을 때 남교사 혼자 남게 되는 상황이 되면 어떻게 책임질 것이냐고 물으시려나?’
‘아이를 위해 지원 인력을 더 배치해 달라고 요구하면 나는 어쩌지? 내 소관이 아닌데.’
오만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쳐 갔고 솜털 보송이 주제에 상황별로 나는 어떤 방어 전략을 펼쳐야 할지 잔뜩 머리를 굴리던 그때 보호자님께서 한숨 사이에 숨겨둔 이야기를 나지막이 꺼내셨다.
“그분 혼자서 많이 힘드시겠어요.”
“아….”
그 뒤로 아이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통화를 마쳤지만, 사실 그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꽃을 내 미려던 아이에게 등 뒤에 숨긴 무기를 들키지 않으려 안절부절못하는 어떤 영화의 주인공 얼굴처럼 오해와 의심을 감추기 위해 허둥지둥 말을 늘어놓는 나의 얼굴이 떠올라 다시금 발가락이 오므라들 뿐이었다.
몬스터 패런츠 흔히 괴물 부모라는 말을 종종 듣곤 한다. 어렵게 설명할 것도 없이 평화로운 학교에 갖가지 민원과 간섭으로 학교 생태계를 파괴하는 모습이 흡사 괴물과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괴물 부모의 탄생] 저자 김현수 교수는 괴물 부모가 탄생하는 이유를 개인적 사회적으로 나누고 있다. 개인적인 이유로는 자기 증오 또는 연민, 병적 자기애, 과도한 불안, 트라우마, 희생의 대가를 요구하는 마음 등으로 설명하고 있으며 사회적 요인으로는 가부장제 문화, 육아 지원 시스템의 부재, 과도한 공부 경쟁, 성공에 대한 강박, 공동체 축소로 인한 각자도생의 분위기 등을 말하고 있다.
결국 괴물 부모 현상은 보호자 개인의 문제도 있지만 보호자가 괴물이 되지 않고서는 생존할 수 없는 사회 속에서 자신도 모른 체 괴물이 되어감을 의미한다.
이는 일반교육만의 문제가 아니라 특수교육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특히나 장애 학생들에 대한 그릇된 시선의 화살을 아이 곁에서 함께 맞고 있는 보호자들은 더더욱 이러한 사회 구조 속에서 몬스터 패런츠가 될 가능성이 클 것임은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부모들을 마주하는 교사들은 교사로서의 존중이 아닌 인간으로서의 생존을 위해 더 단단한 방패 뒤로 자꾸만 오그라들게 되는 것이다.
물론 학교를 보호하기 위해 악성 민원을 자행하는 보호자의 접근을 막고 처벌할 수 있는 법률도 발의되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것이 근원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차단과 처벌을 통한 교육 생태계유지는 진정 가능한 일일까? 어쩌면 몬스터들을 양산해 내는 환경 변화에 더 큰 관심을 가지는 것이 가장 중요한 숙제가 아닌가 싶다. 그나마 남아있는 부모들까지 모조리 몬스터가 되어버리기 전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