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폭풍 같던 첫 출근, 아픔의 데뷔전 -
퇴근 후, 오른손 손등과 왼쪽 팔 안쪽에서 희미하게 울리는 통증의 아우성을 그제야 들을 수 있었다. 코 사이로 옅은 한숨과 함께 참아두었던 한 마디가 무너지듯 새어 나왔다.
“아프네.”
특수학교에서의 첫날을 한마디로 줄이자면 이 말 아닐까?
8시 40분경 통학버스에서 내려온 우리 아이들은 “이리 오너라, 게 아무도 없느냐!” 하듯 위엄 있게 행차했다. 돌쇠와 언년이가 된 나와 특수교육실무원님은 어르신과 마나님 같은 아이들의 심기를 건드리지는 않을까 싶어 연신 웃음을 띠며 아이들을 반겼고, 교실로 행차하시는 길이 어렵지는 않으실지 싶어 맞잡은 손을 꼭 쥐고 아이들을 안내했다.
그런데 아이들의 고집은 어찌 그리 쇠심줄 같으며 입맛은 어쩜 그리도 까다로우신지 신출내기 돌쇠가 결국 한 아이의 심기를 건드리고야 말았다. 시작은 복도에서부터였다. 개학식 행사를 위해 체육관으로 가야 했고 아이들을 줄 세워 인솔하려고 했지만, 한 아이가 바닥에 드러누워 버렸다. 겨울의 냉기가 남아있는 맨바닥이기도 하고 새 학기라고 잔뜩 멋 부린 옷에 혹여 먼지라도 묻을까 싶어 일어나라며 팔을 잡아당기자 어디 지엄한 옥체에 손을 대냐며 아이는 역정을 내기 시작했다.
아이의 손톱과 치아가 내 손등과 팔을 자비 없이 덮쳤다. 지금도 그때 생각을 하면 몸을 움찔할 정도로 아이는 온 힘을 다해 물고 할퀴며 나의 인도를 거부했다. 하지만 개학식은 아이들 앞에서 새로 부임한 선생님이 첫인사를 건네는 시간이기도 했기 때문에 아픔을 느끼는 시간도 사치였다. 아이와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체육관에 도착해야만 했다. 꼭 그래야만 했다.
집념으로 제시간에 체육관에 도착하기는 했다. 첫인사를 위해 적당히 격식을 차린 내 옷은 군데군데 흙이 묻었고 손등 이곳저곳에서는 붉은 피가 새어 나왔다. 하지만 아이는 멈추지 않았다. 마치 “이봐 신입! 특수학교가 만만한 줄 알았어!”라고 가르치려는 듯 개학식이 진행되는 내내 틈만 나면 아이는 옆자리에 앉아있는 내 손을 집요하게 노렸다.
어찌 됐든 개학식은 끝났다. 아쉽게도 개학식 종료와 함께 아이의 분노도 같이 끝난 것은 아니다. 이미 분화가 시작된 화산이라고 할까? 두 번째 폭발은(아 제발 그곳만은..) 급식실에서 일어났다. 급식에 손도 대지 않는 아이의 모습이 안쓰러워 숟가락 위에 고소한 냄새를 풍기는 생선 한 조각 올려 들이밀자(그냥 그러지 말걸..) 2차 응징이 시작되었다. 나는 무림 고수가 적의 공격을 막아내며 유유히 식사하듯 왼손으로는 아이의 공격을 흘려보내며 오른손으로 식사를 했다. 물론 진짜 고수는 아니었기에 패배의 흔적은 손등과 팔목 군데군데 아로새겨졌다.
상처만 남긴 폭풍 같은 시간 속에서 오후가 되자 아이들을 태운 하교 버스는 떠나버렸고 그 버스에 내 영혼도 타고 가버렸는지 나는, 아니 내 육신은 어느새 우리 집 저녁 식탁에 앉아있었다.
“오늘 어땠어? 많이 힘들었어?”
평소와는 다른 내 모습을 감지한 부인의 말에 나는, 아니 넋 나간 내 육신에 달린 입이 말한다.
“그냥 첫날이라…. 부인은 어땠어?”
올해 1학년 담임을 맡은 나의 아내는 첫날부터 울면서 교실에 들어선 아이, 엄마가 늦잠을 자서 덩달아 결석한 아이 이야기로 운을 떼더니 급식으로 나온 고기를 가위로 잘라주며 식사지도를 하다 보니 정작 자기는 밥 먹을 시간도 없어서 밥도 두 숟가락 뜨자마자 모두 버린 이야기를 하며 울상을 짓는다. 본인도 그렇게 힘들었을 텐데 먼저 나의 안부를 묻는 따뜻함에 얼른 소매를 내려 물린 자국을 덮었다. 그리고 오늘 1학년 학생으로 첫 등교를 한 우리 아들을 보며 물었다.
“아들은 오늘 학교 어땠어?”
“좋았어요.”
“뭐가?”
골똘히 생각하던 아들은 뭔가 생각났다는 듯 눈을 번쩍 뜨며 말했다.
“어.. 어.. (아들과 대화하려면 최소한 어.. 소리를 다섯 번 이상 들어야 한다.) 우리 교실에 장난감이 없어서 지루했어요.”
“아이코!”
아들은 천연덕스럽게 반찬으로 만들어준 콘치즈 한 숟가락을 뜨고는 옥수수 한 알 한 알을 터뜨린다는 기분으로 우적우적 씹는다.
그래. 참으로 긴 방학이 지났다. 편안하고 따뜻했던 집을 떠나 학교라는 공간에 떠밀리듯 찾아온 모두가 힘들었겠지, 부인도, 우리 딸 아들 그리고 오늘 나를 아프게 한 너도 아마 그랬겠지. 눈 떠보니 옷이 입혀지고 목적지도 모르는 버스에 탄 채 긴 시간을 보내다 내려보니 키도 덩치도 큰 남자가 담임이라며 너를 이리 끌고 저리 데려가고 여기 앉으라 저기로 가자 해서 말이야.
“그래 너도 애썼다.”
“그리고 나도 애써보마”
잠자리에 들며 나도 모르게 아내의 손을 꽉 쥐었다 힘들었던지 반쯤 잠든 목소리로 “잘 자”라고, 말하는 그녀
“잘할 수 있어!라고 말해줄래?”라고 하자 그녀가 말한다.
“신랑 아니면 누가 잘하겠어?”
그래,
늘 그렇듯 이 시간도 흘러갈 것이고 내가 너의 마음을 알아가듯, 너도 더 이상 불안함이나 경계심으로 나를 대하지는 않겠지. 그렇게 서로를 좀 더 따뜻하게 마주할 그때가 되면, 꼭 오게 될 그때가 되면 내 팔뚝에 붉게 물들었던 멍자국을 떠올리며 나도 이렇게 말할 수 있겠지
초봄 스쳐 간 진달래가 잠시 놀다 갔을 뿐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