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의 횟집, 우리는 동료를 만났다.
00 횟집
신규·저경력 선생님들과 10년 차 이상의 선생님들이 한자리에 둘러앉았다. 이 모임의 이름은 ‘멘티·멘토 교사의 만남’.
멘티로 불린 선생님들이 정말 멘토를 원했는지, 또 그 멘토가 나여도 괜찮은지 묻기도 전에 나는 그 역할을 맡게 되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이 자리에 참여하며, 일반학교에서는 흔한 아침 티타임조차 쉽지 않은 특수학교의 현실 속에서 이렇게라도 얼굴을 마주하고 동료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음에 새삼 감사함을 느꼈다.
음식은 하나둘 차려지는데 누구 하나 쉽게 젓가락을 들지 못한 채 어색함만 흐른다. 뭐라도 한마디 해야 할 것 같은데, “학교는 어떠세요?”, “아이들은 괜찮아요?” 같은 너무 ‘멘토스러운’ 질문은 왠지 부담스럽다.
괜히 뒤에서 멘토스처럼 씹히지 않을까 싶어 말을 고르는 순간 한 멘티 선생님이 예상치 못한 질문을 던진다.
“선생님, 00 아파트 사시죠? 거기 어때요?” 뜻밖의 부동산 이야기. 잠시 당황했지만 이유를 물어보니 결혼 후 이 지역에 살 계획이라고 한다. 이웃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내가 사는 아파트는 물론 주변 입지까지 이것까지도 멘토의 역할인 것처럼 부동산 중개인처럼 열심히 설명한다.
그렇게 대화는 자연스럽게 주식, 재테크, 동네에서 가장 저렴한 마트 이용법으로 이어지고, 다른 테이블에서도 사람 사는 이야기가 오가며 분위기가 서서히 풀린다.
그리고 어느 순간,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이야기의 방향이 학교로 향한다. 먹고사는 이야기들로 충분히 예열이 끝났기 때문일까? 처음 맡은 담임으로서의 고민, 학부모 상담에서 느꼈던 부담감, 특수교육의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오는 좌절감까지—
어쩌면 가장 약한 이야기, 숨기고 싶었던 실수들이 봇물 터지듯 흘러나온다. 멘토로서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그리 거창하지 않다.
“선생님, 그러셨군요. 저도 그래요.”
꼭 더 잘해서, 정답을 알고 있어서 멘토가 되는 건 아니다. 그저 그들보다 하루 먼저 같은 고민을 해봤고, 그래서 조금 더 깊이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일 뿐. 그 관계 속에 우리는 멘토와 멘티라는 이름을 붙였을 뿐이다.
자리가 길어져 새벽이 가까워진다. 한 사람씩 집으로 돌려보내고 나 역시 터벅터벅 집으로 향하며 생각한다.
‘오늘 무슨 이야기를 나눴지?’
드문드문 떠오르는 기억들이 알코올에 희석되어 흐릿해지는 것 같아 아쉽다. 그래도 분명한 건
좋았다!
멘토 멘티로서 만남이 아닌 동료를 만나서 좋았다. 함께했던 선생님들도 오늘을 그런 기억으로 남겨주면 좋겠다.
그래야 늦은 귀가로 내일 마주할 아내의 눈총이 조금은 덜 아플 것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