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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운동

by dy


음식을 입에 넣고, 맛을 음미한다는 건 단순히 생체활동에 필요한 에너지를 얻기 위해서 하는 활동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가끔씩은 단순히 위아래 운동을 해서 입을 움직이고 싶을 때가 있다. 아무 이유 없이, 아무 생각 없이 단순히 저작운동을 하고 싶어질 때가 있는 것이다. 오늘은 나에게 그런 날이었고, 어딘가 추위를 피할 겸 앉아 아무 생각 없이 그런 행위를 하고 싶었다. 현관문을 열고 나와 밖으로 나서는 순간, 든 생각은 이 추위를 피해 어딘가든 도피하고 싶다는 기분이었다. 바닥에는 계절을 알리듯 반년 동안 나무에 붙어 있던 잎들이 색깔이 변한 채 나뒹굴어져 있었다. 주위를 오가는 사람들의 옷차림에서도 추위를 견디기 위해 무장한 기사 같은 모습이 보였다. 나 역시 기사처럼 몸의 구석구석을 보호했지만, 불어오는 바람은 옷 틈 사이로 스며들며 겨울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렸다.


빠르게 발을 움직여 근처 패스트푸드점으로 향했다. 점심시간을 향해가는 현재, 가게는 사람들로 미어터질 것 같았다. 줄을 서며 문득, 터무니없는 상상이 떠올랐다. 이곳에 누군가 수류탄을 던진다면 어떻게 될까? 내 앞에 선 사람들은 모두 사라지고, 순식간에 내 차례가 오겠지. 그 상상은 현실감 없는 기괴한 장면으로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나 역시 허탈한 웃음을 속으로 삼켰다. 하지만 이런 불필요한 생각마저 기다림의 답답함 속에서는 순간적인 위안이 되었다.


기다리는 시간은 실제 시간보다 기다는데, 짧은 기다림에도 답답함이 몰려왔다. 마음속에서는 어딘가에 앉아 단순한 저작운동을 수행하라고 아우성치는 초조함이 느껴졌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앞선 사람들과 달리 내가 주문한 음식은 심플했다. 그 어떤 특이점도, 요구사항도 없는, 오직 운동을 위한 음식. 간단한 주문을 마치고 비어있는 자리를 찾아 앉았다.


모든 테이블은 빽빽이 배치되어 있었다. 한 사람이라도 더 앉히려는 구조였다. 옆 테이블의 소리, 앞뒤에서 흘러드는 말소리, 이 모든 소음이 아무런 저항 없이 내 귀에 도달했다. 나는 이 불필요하고 쓸데없는 수많은 단어를 차단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건 저작운동을 실행한 뒤에야 가능했다. 그래야만 이 모든 행위가 완성될 것이다. 음식이 도착했다. 모든 것은 저작운동을 위한 준비물이었다. 앞에는 저작운동의 희생양인 음식, 그리고 내 귀를 방어해 줄 이어폰과 핸드폰 세트가 놓여 있었다. 나는 재빨리 모든 준비를 완료했다. 이제부터 아무 생각 없는 단순한 저작운동이 시작되었다.


귀에는 큰 음악 소리가 들렸고, 입은 위아래로 씹는 운동을 반복했다. 1회, 2회, 3회... 그리고 무한히. 아무 생각 없이 시선을 앞으로 두고 음식을 씹던 중, 문득 주위 사람들의 움직임이 눈에 들어왔다. 소리가 없는 단순한 행동이었다. 위를 손으로 올리거나, 입을 움직이거나, 다리를 움직이며 어딘가로 향하는 모습들. 그 모든 행동이 내 귀에 꽂힌 음악과 어우러져 묘한 의미를 갖기 시작했다. 내가 위아래로 입을 놀릴 때, 주위 사람들도 동일하게 입을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마치 내가 그들의 움직임을 조종하는 듯했다. 이외에 나와는 다른 움직임도 있었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모든 사람들은 각자의 삶이 있고, 각자 다른 영역의 존재일 터인데, 지금 이 순간만큼은 내가 주인공이 되어 모두 똑같은 행동을 하는 집단이 된 것 같았다. 이상했다. 아니, 멍청했다. 모두가 동일했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착각일 뿐이었다.


저작운동은 내 앞에 있는 음식이 없어질 때까지 계속되었다. 어느 순간, 더 이상 음식이 존재하지 않음을 깨달았다. 나만의 세계에서 나가야 할 때가 온 것이다. 더 지속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더 이상 희생물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귀의 방어막을 제거했다. 그리고 다시 여러 단어로 내 세계는 채워졌다.


돌아가기 싫었다. 그러나 돌아와야만 했다. 그래서 나는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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