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재밌지 않아?”
“응 재미있다.”
“……, 너는 말에 영혼이 없어”
익숙한 대화 속 이 반응에 대해, 나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여기서 상대방이 말하는 “영혼이 없다”는 건 단순하다. 재밌다는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않았다는 의미이다. 감정의 공유. 상대방에게 자신이 느꼈던 감정에 대한 동의를 구하거나, 내가 느꼈던 감정을 가지고 다르게 표현해 주기를 원했던 것이다. 하지만, 감정의 표현이 서툰 나에게는 “영혼이 없다”라는 단순한 말이 내 치부를 들킨 것과 같은 말로써 들려온다. 이후에는 조금 더 감정을 담아야겠지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데 어떤 감정을 담아야 하는 거지. 감정이란 뭐지.
기쁘다. 화가 난다. 슬프다. 짜증 난다. 외롭다. 재밌다. 이것들은 사람들이 통상적으로 알고 있는 감정이라는 것이다. 이런 감정을 느끼는 그대로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도 하나의 재능일 것이다. 어릴 때만 해도 자기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던 것 같은데. 그저 있는 그대로 아무런 제약 없이 표현할 수 있었는데. 소풍을 떠나기 전 설렜던 기분과 아끼던 장난감이 망가졌을 때 느끼는 분노를 있는 그대로 표현할 수 있었는데. 이제 나는 더 이상 어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방법을 잊어버렸다. 지금에 와서 감정을 표현하기에 너무 많은 제약과 필요조건이 있는 것 같다. 말을 하기 전, 이 말이 상대방을 배려하는지, 상황에 어울리는지 같은 생각으로써 표현이 도출된다.
문제는 감정의 표현만이 아니다. 그런 감정들이 어떤 것이었는지도 잊어버렸다. 인간의 감정이며, 특정 상황에 이렇게 느낀다라는 것을 알고는 있다. 하지만 더 이상 느끼는 것이 아닌 생각을 통해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이렇다는 결과에서 도출한 것 같은 무언가로 변질된 것 같다. 온전히 감정을 정의하고 그게 어떤 느낌이었는지 나는 잊어버렸다.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라고 하는데, 나는 더 이상 감정이 존재하지 않는 무언가가 된 것 같다.
기쁘다는 건 어떤 거지? 무언가 자기가 원하던 것이 이루어졌을 때 생각되는 감정이다.
화가 난다는 건 어떤 거지? 가슴속에서 알 수 없는 답답함과 막힘. 그래서 말보다는 행동이 우선시 된다고 생각되는 감정이다.
슬프다는 건 어떤 거지? 소중한 무언가를 잃었을 때, 더 이상 존재하지 않거나, 존재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될 때 생각되는 감정이다.
이외에 짜증 난다는 건? 외롭다는 건? 재밌다는 건? 즐겁다는 건? 더 이상 감정은 느끼는 게 아니다. 생각을 통해 도출된 이도저도 아닌 무언가이다. 위와 같이 이도저도 아닌 무언가를 마지막으로 생각해 보았던 건(느껴본 적은) 언제였을까.
그런데, 이런 변화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나는 감사함이라는 감정을 생각한다. 감정이 더 이상 감정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하여.
*감사 고마움: 무언가 필요함이 충족되었을 때 생각되는 감정
지금의 나, 감정 표현이 서툰 내가 오히려 좋다. 감정을 표현하지 못한다는 건 곧 생각을 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반면, 감정을 느낀다는 것은 내 통제를 벗어난 무언가라면 생각은 다르다. 생각은 주체적이고, 통제 가능하며, 논리적으로 부정할 수도 있다. 그렇기에 나는 지금의 내가 좋다.
“……, 너는 말에 영혼이 없어”
이제 그 말을 들은 내가 대답해야 할 차례다. 이 말을 들었을 때, 과거의 나는 마음이 불편했을 것이다. 상대방에게 나의 감정을 어떻게 보여줄지 고민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이 말은 그저 무의미한 단어들의 조합처럼 들린다. 나에게 더 이상 감정의 동요를 일으키지 못한다. 상대는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다. 나는 입을 열어 이렇게 말한다.
“그래도 나는 재미있다고 생각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