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로 떨어질지 모른다. 방향도, 목적도 없다. 그저 위에서 아래로, 중력을 거스를 수 없기에 낙하한다. 떨어지기 전에 자신이 닿을 곳을 선택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그런 선택은 애초에 주어지지 않는다. 아래로 떨어지는 동안, 나의 자리를 정하는 건 중력과 가벼운 나를 실어 나르는 바람뿐이다.
확실한 목표와 방향, 목적을 가진 사람들은 아래가 아닌 위로 올라가기를 희망한다. 아래보다 위가 더 낫다고 믿는다. 하지만 위로 갈수록 중력은 더 강하게 작용하고, 올라가는 길은 더욱 험난하다. 반면 아래로 떨어지는 것은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는 일이다. 어떠한 목표와 방향, 목적을 가지지 않아도 된다. 그래서 나는 몸을 아래로 맡긴다.
중력의 힘에 이끌려 계속 아래로 떨어진다. 그 끝은 어디인가? 어떤 이는 누군가의 우산 위에, 또 다른 이는 흘러가는 자동차 지붕 위에, 누군가는 아직 지지 않은 낙엽 위에 닿는다. 운이 나쁜 자는 도로 위에 떨어져 누군가의 발에 밟히고, 밟히기 전에는 다른 낙하물에 짓눌리기도 한다. 그래도 그들은 하얗고 작은 형태를 유지한 채 떨어진다. 물웅덩이에 떨어지는 자는 하얗던 몸이 투명해지며 물에 녹아든다. 자신이 하얗다는 것도 잊은 채 섞여 들어가며, 더 이상 자기 자신이 아닌 타인이 된다.
다른 이는 이미 떨어져 쌓인 이들 위로 내려앉아, 마치 역행이라도 하려는 듯 서로를 끌어안고 쌓아 올라간다. 우리는 낙하가 아니라 상승을 원했던 것이다. 하지만 바람과 달리, 우리의 몸은 위로 올라가지 못하고 쓸려 내려갈 뿐이다. 처음에 혼자였지만, 떨어진 후에는 여럿과 하나가 되어 존재하게 된다. 아래로 모이는 이들은 더 높이 올라가기 위해 새로운 동료를 불러 모으지만, 이미 떨어진 이곳은 너무도 멀다.
더 이상 떨어질 이들이 없다. 이제 그만 포기해야 하는 것인가? 개인이 모여 거대한 하나를 이루었지만, 여전히 위로 올라가기엔 부족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한 무더기가 되어 위로 올라간다. 갑작스럽게 중력을 역행하는 이 운동은 희망을 준다. 우리는 더 높이 올라갈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이내 역행은 끝나고 다시 중력에 끌려 아래로 떨어진다. 우리가 위로 간 것이 아니다. 우리는 잠시 던져졌을 뿐이다.
다시 땅에 닿은 우리는 어딘가 부딪히며 깨지고 분리된다. 그 순간 잠깐의 희망이 사라진다. 위로 올라간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게 떨어진 자리에는 조금 전의 그 물웅덩이가 있다. 물웅덩이에 떨어진 나는 더 이상 하얗던 형태를 유지할 수 없었다. 내 존재는 녹아들며 그의 일부가 되었고, 더 이상 위로 올라갈 수 없음을 깨달았다.
더 이상 나로서 존재할 수 없는 그곳에 떨어진 나는, 나의 타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