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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ㅡ 표정

by dy


화면에 비친 얼굴을 들여다본다. 아무런 생각 없이 그저 앞에 놓인 화면을 바라보다가 문득 검은색 화면에 비추어진 얼굴이 보인다. 초점이 맞추어지며 알게 된 사실은, 표정이 없다는 것이다. 일자로 그어진 눈썬과 일자로 그어진 입술 뚱한 표정의 얼굴이 보인다. 무방비 상태에서 들여다본 모습이 낯설어 급히 시선을 피한다. 항상 저런 표정이었지. 이런 식으로 갑자기 내 모습을 직시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한결같은 표정은 이런 표정이었다. 적응되지 않는 얼굴의 표정.

집으로 돌아와 거울을 바라본다. 거울에 비추어진 모습은 검은 화면에 비친 모습과 같다. 일직선의 눈과 입술, 무표정하게 바라보며 거울에 비추어진 또 다른 자신과 초점을 맞춘다. 문득 아까 그 장소에 사람들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는지 궁금해진다. 어떤 식으로 얼굴을 움직이는 거지. 노트를 펼쳐서 표정의 그림을 그려 본다. 한 개의 직선과 한 개의 직각 선으로 이루어진 이모티콘 형태의 표정이 한 줄 한 줄 채워지며 그려진다.

우선, 검은 화면과 거울에 비추어졌던 표정이다. 세 개의 직선을 이용한 이모티콘, 모든 것에 무관한 듯한 그 표정이 그려졌다. 여기서 입모양을 직각 선을 이용해서 변경하면 다른 두 개의 표정이 완성된다. 무표정에 입 꼬리만 올라간 얼굴과 내려간 얼굴. 다시 여기서 눈의 직선을 직각 선으로 변경하면 다른 표정이 생긴다. 웃고 있는 듯한 얼굴과 울고 있는 듯한 얼굴.

이렇게 쉽게 한 번의 손짓으로 표정을 바꿀 수 있는데, 왜 거울에 비친 내 얼굴에서는 안 되는 걸까.

양손을 들고 손가락을 입 꼬리에 가져다 다 본다. 우선 두 손가락으로 입 꼬리를 올려 본다. 일직선 눈에 입 꼬리만 올라간 웃는 표정. 무언가 혼자만의 생각에 재미있어하는 표정이다. 두 번째 아래로 입술을 내려본다. 반대로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아 하는 표정이다. 이런 표정을 짓는 나는 이런 얼굴이구나 라는 생각과 함께 다른 표정도 따라 연습해 본다.

문제가 생겼다. 사람의 손은 두 개뿐이다. 움직여야 할 것은 3개의 부품인 데 손이 두 개뿐이다. 오른쪽 눈과 왼쪽 눈 마지막으로 입술 세 개를 한 번에 다루기 위해서는 다른 손 하나가 더 필요하다. 왜 손은 두 개뿐이지 아쉽기만 하다.

두 개만으로 만들어 보자 한 손은 입에 다른 손은 눈의 한쪽에. 한쪽 눈은 울고 한쪽 눈은 아무렇지 않은 듯한 표정이다. 이런 표정은 없다.

어쩔 수 없다. 얼굴의 근육을 직접 움직여야 한다. 일직선으로 음하고 닫은 입술의 양 꼬리를 올려 보려 한다. 두 개의 손가락으로 올려지기 쉬웠던 그 양끝은 어째서인지 올라가지 않는다. 한쪽이 부들부들 떨리며 쥐가 날 것 같다. 어찌 저지 올려진 양 입술 끝을 유지한 채 손가락으로 오른쪽, 왼쪽 눈 부품을 바꾸어 본다. 한 번은 위로 한 번은 아래로.

바뀌어진 얼굴 표정이 이상하다. 입 꼬리는 떨리고, 웃는 표정과 울고 있는 표정. 한쪽은 실제이고 한쪽은 부품이기 때문일까? 우스워진 내 모습에 웃음이 나올 것 같다. 그 짧은 웃음의 찰나, 입 꼬리와 눈의 양쪽이 자연스럽게 휘어진다. 부품이 아닌 자연스러운 웃는 모습이다. 이내 다시 한번 따라 해 보지만 두 번은 없다. 다시 부들부들 떨리는 입 꼬리와 양쪽으로 그어진 눈뿐이다.

여러 표정을 연습해 보지만, 거울에 비 추워진 모든 표정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사람은 어떻게 표정을 짓는 거지. 실제로 두 손가락을 이용해서 입 꼬리를 올리거나, 눈꼬리를 올리는 건 아닌 텐데.

결국 모든 표정을 내려놓는다. 이렇게 모든 표정을 짓는 게 어렵다면 무표정으로 있는 게 좋지 않을까. 나는 다시 한번 입을 꾹 닫아 일직선으로 만든다. 그리고 양손으로 눈을 쭉 찢어 거울을 바라본다.


웃지도 울지도 기쁘지도 화나지도 않은 무표정의 얼굴. 그 얼굴을 보니 마음이 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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