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매모호

by dy


영화의 끝을 알리는 장면이 올라간다. 영화의 결말은 주인공이 악역을 물리치며 해피엔딩. 그리고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이런 결말의 영화가 있는가 하면, 독자들에게 다음을 연상하게 하는 끝맺음의 영화도 있다. 이른바 열린 결말. 영화 이후의 상황에 대해서 독자의 상상에 전적으로 맡기는 것이다. 주인공이 행복하게 살았을 수도 있으며, 아니면 가슴속 답답함을 남긴 채 마무리되는 것이다. 이런 열린 결말은 모호하다. 나는 이런 모호함이 좋다. 좋고 싫음에 관해서 확신이 없는 나에게 있어 한 가지 확실히 할 수 있는 건, 이런 모호함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너는 주관이 없니? 너 하고 싶은 게 없어? 너 원하는 건 없니?" 등 어떤 질문을 받을 때, 나의 대답은 항상 모호하다. “응, 좋은 것 같아.” “나쁘진 않은데.” 이런 대답은 확신이 없는 것이다. 이것도 좋고, 그렇다고 나쁘지도 않은 애매한 대답. 이런 대답은 상대방을 피곤하게 만든다. 이 사람이 정말 좋은지 싫은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답답한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런 모호함이 좋다. 상대방을 생각할 여력 따위는 없다. 사실 모호한 대답을 하는 이유에는 정말 모르기 때문이라는 이유도 있다. 좋은지 나쁜지에 대해서 판단하기에는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한정적인 상황과 한정적인 생각만으로 그게 좋은지 나쁜지 어떻게 판단할 수 있단 말인가. 그렇기 때문에 확실히 모르기 때문에 모호하게 대답하는 것이다. 만약 “이것이 좋다.”라고 단정 짓는다면, 나에게 있어서는 그건 항상 좋아야 하는 것이다. 반대로 “싫다.”라면, 이건 항상 싫어야 하는 것이다. 변할 가능성을 닫아버리는 그런 선택은 나에게 부담스럽다.


이런 사고방식을 가진 나이기에, 글을 쓸 때도 좋고 싫음보다는 확실하지 않은 모호한 표현을 많이 사용한다. 모호하면서 추상적인. “이거는 이거다.”라는 단언보다는 “이거는 이렇지 않을까?”라는 추측형 표현이 주를 이룬다. 이런 글은 읽는 독자에게 힘이 들고 읽기 싫은 글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말하고 싶은 게 뭐야?”, “이 글을 쓴 목적이 뭐야?”라는 의문만을 남기기 마련이다.


글이란, 일단 쓰이고 나면 독자가 읽는 순간 하나의 완성된 형태가 된다. 쉽게 바꿀 수 없게 된다. 앞에서 “A는 B이다.”라는 말을 하고, 뒤에서 “A는 B가 아니다.”라고 말한다면, 일관성뿐만 아니라 맥락도 들어맞지 않게 된다. 그래서 “A는 B이다.”보다는 “A는 B일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표현을 더 많이 사용하게 된다. 그러다가 후에 아니라면 “A가 B가 아닌가 보네.”라고 말할 수 있으니까.


이런 글을 쓰게 된 나는 왜 이렇게 된 걸까. 알 수 없다. 알기 위해서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아왔는지 헤집고 싶지는 않다. 그냥 이대로 내가 쓰고 싶은 대로, 내가 말하고 싶은 대로 지내면 되지 않을까.


오늘의 글은 모호하지 않을 것이다. 확실히 말할 수 있다. 나는 모호한 걸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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