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으로

by dy


어제 내가 꾼 꿈에서 나는 누군가를 쫓고 있다. 아니, 처음부터 그 사람을 찾거나 쫓지는 않았다. 우리는 어디선가 본 기억이 있는 그런 사람이었고, 그 사람은 어느 순간 도망을 선택했는지 빠르게 앞으로 달려 나간다. 이내 배경과 장소는 기차의 플랫폼으로 변경된다. 그 사람은 빠르게 그 기차를 타려고 달려간다. 나 역시 그 사람을 쫓아야 한다는 생각만을 가지고 달려 나간다. 내 뒤에서 누군가 나를 잡는 소리가 들리지만, 나는 그냥 달려 나간다. 그리고 기차의 후미에 어떻게 달려들어 들어가게 된다.


그 사람을 쫓아 들어간 그 기차는 어딘가 이상하다. 모두가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앉아 있다. 그리고 나와 같이 아슬하게 기차에 올라탄 다른 승객들은 자리를 잡기 위해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나는 자리를 찾아야 하는지, 그 사람을 찾아야 하는지 헷갈려하며 앞으로 나아간다.


내 몸에 이내 어떤 가방을 메고 있다는 걸 이때 눈치챈다. 어떻게 내 자리를 찾았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거기가 내 자리라는 건 알 것 같다. 나는 짊어진 가방을 자리 위의 짐칸에 올려둔다. 이 짐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히 총과 같은 무기가 들어가 있을 거라는 예감이 든다. 왜 그런 예감이 드는지는 모르겠으나, 분명히 차가운 그런 느낌의 가방이 자리 위의 짐칸에 실린다.


가방을 그대로 둔 채 앞으로, 다시 앞으로 이동한다. 기차는 내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기차와는 다르다. 하지만 확실한 건 사람들의 표정이 무표정이라는 것이고 모두 앞만을 바라보고 있다. 아니, 머리를 숙인 채 있다.


그러다가 내가 이 기차에 올라탄 이유를 생각하고 다시 그 사람을 찾으러 앞으로 나아간다. 하지만 앞으로 나아가도 그 사람을 찾을 수 없다. 아니, 내가 찾으려고 하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방황하며 앞으로 나아가던 중 누군가 나를 잡는다. 그 사람은 기차 안의 일반적인 승객과는 다르다. 위압적이고 긴장감 있는, 그리고 무언가를 억압할 것 같은 인상의 사람이다. 그는 나를 억지로 앉히고 어떤 질문을 한다. 이 열차 안에 반입해서는 안 되는 무언가를 가지고 타지 않았냐고 나에게 묻는다.


나는 그게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아니라고 말한다. 하지만 내가 가지고 탄 그 짐 안에 무엇이 있는지 모르기에 나는 긴장한 채 그의 관심을 받지 않기 위해 자연스럽게 행동한다. 나는 당신과 같은 사람이라는 걸 어필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는 내가 가지고 온 짐을 찾아 나를 억압하려고 하는 것 같다. 하지만 내 짐이 어디에 있는지는 모르는지 계속해서 나를 응시한 채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나는 자연스럽게 일어나 다시 앞으로 이동한다. 그 사람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 사람은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는 것 같다. 아니, 사라진 것 같기도 하다.


이내 앞으로, 앞으로 달려 나간다. 내가 가지고 들어온 짐이 무엇인지 모르기에, 그리고 내가 찾아야 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기에 나는 앞으로 계속 달릴 수밖에 없다.


차량의 연결 통로의 문을 열자 어떤 사람이 쓰러져 있다. 머리는 금발에 여자라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어디선가 본 느낌이다. 그 사람은 죽어 있는 걸까? 그리고 나는 왜 그 사람을 아는 건지는 모르겠으나, 여기서 그 사람을 살필 여력이 없다. 이름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 그 사람을 지나쳐 다음 차량으로 넘어간다.


다음 차량은 지금까지의 어떤 차량과 다른 느낌이다. 여기에는 책상과 의자가 있고 외국인들이 책이나 노트북을 보고 있다. 나는 바로 앞에 있는 어떤 외국인의 바로 맞은편에 무심코 앉는다. 그 외국인은 대수롭지 않은 듯 인사를 한다. 그 사람은 여기는 다른 곳과 다르다고 말해준다. 그리고 괜찮다고 이야기해 준다.


뭐가 괜찮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내 지금까지 달려오면서 느껴졌던 피로가 한 번에 찾아온다. 그리고 숨을 헐떡인다. 이내 남자는 내가 누군지 묻는다. 나는 내가 누군지 모른다. 기억에 남는 거라고는 내가 살아온 고향의 이름 정도이다. 그 사람에게 핸드폰을 이용해서 어떤 곳인지 알려준다. 하지만 외국인이기에 대화가 잘 통하지 않는다. 그런데 어떻게 처음 그 사람이 말한 괜찮다는 건 알 수 있었던 걸까?


조금의 시간이 흐른다. 기차 안의 알림에서 다음 정류장에 도착한다는 방송이 들린다. 내 앞의 외국인은 이제 가야 할 시간이라고 한다. 갑자기 나는 여기서 내려야 한다는 목적이 생각이 난다. 왜 여기서 내려야 하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한 건 여기서 내리지 못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릴 때는 반드시 그 짐을 가지고 내려야 한다. 그 생각만이 갑자기 내 머릿속에 울려 퍼진다.


나는 다시 뒤로 돌아 앞으로 달려 나간다. 들어오기 전에 쓰러져 있던 여자의 이름이 어렴풋이 기억난다. 나타샤? 크리스티나? 그 여자의 이름을 한 번 불러보지만, 그 이름을 가진 그 여자는 이미 죽어 있는 상태이다. 무언가를 하다가 총에 맞아서 죽어 있는 것 같다. 나에게는 시간이 없다. 바로 뒤로 돌아서 앞으로 달려간다.

그러다가 어떤 무리를 만난다. 그들은 모두 죄수복을 입고 있다. 그 사람들 중 누군가와 안면이 있다. 그 사람이 갑자기 소리친다. 여기서 내리면 안 된다고. 자기는 아니라고 하지만, 죄수들은 모두 쇠사슬로 연결되어 있기에 앞사람들의 움직임에 맞추어 그 사람도 앞으로 걸어 나간다.


그 사람들이 내리려고 준비하는 출구는 오른쪽이다. 그리고 이상하게 그 사람들은 오른쪽의 철창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지금까지 고함치고 있던 그 사람은 어느샌가 빠르게 안으로 빨려 들어가듯 사라지고 있다.

나도 그들과 같은 사람이었던 건지 모르겠으나, 나는 빨리 내려야 한다. 내가 지금까지 찾던, 쫓던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겠으나, 나는 내려야 한다. 그 무리를 지나쳐 앞으로 나간다.


이내 기차가 멈춘다. 그리고 왼쪽, 오른쪽의 출구가 열린다. 나는 출구로 나아갈 수 없다. 나에게는 짐이 필요하다. 그 짐을 가지고 나아가야 한다. 나는 앞으로, 앞으로 달려 나간다. 하지만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차량에서 사람들이 물밀듯 나온다. 엄청난 인파가 나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내가 지나온 적이 없는 그런 장소가 있다. 2층이다. 계단이 있다. 중앙을 두고 양옆에 2층으로 가는 계단이 있다. 나는 어쨌든 뒤로 가야 한다. 2층을 올라가지만, 그곳은 내가 지나온 곳이 아니다. 방으로 나뉜 객실이 있다. 하지만 안에는 아무도 없는 건지, 아니면 아직 내리지 않은 건지 문들은 모두 닫혀 있다.

이제 기차가 다시 출발한다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벌써 시간이 많이 흘렀다. 아직 짐을 찾지 못했다. 그 짐을 가지고 내려야 하는데, 그 생각이 한순간 사라진다. 빠르게 내려야 한다. 곧 있으면 이 기차는 내가 가면 안 되는 어딘가로 출발하기에 여기서 빨리 내려야 한다.


오른쪽은 아니다, 왼쪽으로 가야 한다. 왼쪽으로, 왼쪽으로. 그 생각만이 내 머릿속을 채우고 빨리 달려 나간다. 아직 나는 안 내렸다고, 어디에 출구가 있는지 모른다고 미친 듯이 누군가에게 외치면서 객실을 달려 나간다.


한 번 꺾고 다시 꺾어서 들어가 어떤 통로에 다다르자 드디어 밖의 불빛이 보인다. 왼쪽이다. 거기가 출구인지 아닌지는 모른다. 하지만 밖으로 나갈 수 있다. 미친 듯이 소리를 내면서 밖으로 달려 나간다.

밖에는 승무원인지 제복을 입은 어떤 남자가 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손가락으로 앞을 가리킨다. 그 사람이 누군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 사람이 가리킨 그 방향으로 달려 나간다.


지금 내가 왜 여기에 있는지, 내가 찾고 있던 그 사람이 누군지, 그리고 그 짐 안에 무엇이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지금 나는 왼쪽으로 나왔고, 저 앞의 사람들의 무리를 향해서 달려가고 있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혹시 나는 누군가를 쫓는 사람이 아니라, 쫓기던 사람이었던 건 아닐까? 내가 쫓기고 누군가 나를 쫓아오기에 앞으로, 앞으로 빠르게 달려서 어딘가의 목적지를 가지고 달려 나간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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