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의자

by dy


존재가 존재한다는 것은 어떻게 인식할 수 있을까.


우리가 사물이나 동물 또는 다른 무엇이든 그 존재를 인식하는 첫 번째 방법은 형태일 것이다. 예를 들어 4개의 다리와 등받이가 있는 일반적인 의자를 생각해 보자. 우리는 왜 그것을 의자라고 받아들이는가? 눈으로 받아들여지는 형태가 우리가 알고 있는 의자와 유사하기 때문이다. '앉는다'는 기능을 생각하기 전에, 형태로서 먼저 받아들이기에 의자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형태만으로 존재의 증명을 이끌어 내기에는 한계가 있다.


예를 들어 4개의 다리와 등받이가 있는 이 의자를 쪼개보자. 이제 부품으로써 4개의 다리, 등받이 그리고 앉는 부분으로 나뉠 것이다. 더 이상 의자로서의 형태를 이루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것을 의자라고 할 수 있을까?


어떤 이는 재구성하는 상상을 통해 이것이 의자의 부품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다시 이를 쪼개보자. 아주 작은 단위로 쪼개었을 때, 우리는 이 부품들을 의자를 이루었던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만약 가능하다고 하면 다시 이를 더 작은 단위로 쪼개고 난 뒤 물어보고 싶다. 이것이 의자라고 할 수 있을까?


아무리 작게 쪼개어도 그것이 의자였다는 사실을 형태만으로는 알 수 없다. 형태가 존재를 증명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의자를 의자이게 하는가? 의자가 의자로서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어떻게 아는가?


바로 목적성이다.


"앉기 위한 물건"이라는 목적성이 존재하기에 우리는 이를 의자라고 인식하는 것이다. 의자든 사람이든, 어떠한 사물이든 그렇지 않을까. 존재란 목적성을 가진 무엇이다. 이 목적성은 사소한 것일 수도 있고, 대단한 것이 될 수도 있다. 이 목적성이 있기에 사물이든 동물이든 인간이든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목적성을 잃으면 무엇이 되는 걸까.


의자의 다리가 하나 없다고 가정해 보자. 균형을 맞추기 힘든 이 의자를 우리는 의자라고 부를 수 있을까. 부를 수 있다. 이때는 그 목적성이 변경된 것이다. 지금까지는 4개의 다리를 가지고 '앉기'라는 목적성을 가진 의자였다면, 한 개의 다리를 잃은 의자는 '고쳐지기를 바라는' 목적성 또는 '균형을 맞추기를 바라는' 목적성을 가진 의자가 된다. 목적성 자체를 잃지 않았기에 우리는 이를 여전히 의자로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더 나아가 질문해야 한다.


만약 의자가 완전히 부서져 더 이상 '앉기'도, '고쳐지기'도 불가능하다면? 아무도 그것을 의자로 인식하지 않고, 그 자체도 어떤 목적성도 가질 수 없다면?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아니면 다른 무엇으로 존재하는가.


이 목적성을 잃어버린 것들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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