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리뷰

자책과 반성의 자기완결성

by 구감

요전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봤다. 미야자키 하야오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었지만 은퇴했다 자꾸 다시 복귀하는 게 재밌었는데다 이번엔 심지어 제목마저 너무 노골적이어서 대체 그렇게까지 해서 하고 싶은 말이 뭘까 하는 궁금증이 일었다. 선언적 제목과 달리 스토리는 상당히 은유적이었지만, 또 한편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뚜렷했다. 전쟁통에 엄마의 목숨을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가진 소년 마히토가 엄마를 만나기 위해 이세계에 들어가 (점점 망가지고있는) 이세계를 이상적인 곳으로 만들어달라는 요청을 받지만, 엄마가 생전에 자신을 낳고 기르며 노력했듯 자신도 (이미 망가진) 현세계를 책임지겠다며 돌아오는 이야기.

평범한;; 메시지의 와중에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부유한 전학생인 자신을 따돌리는 학교에 가지 않으려고 마히토가 자신에게 상처를 입히는 장면이었다. 나중에 그는 이것이 자신이 타인을 증오한 흔적이며 자신이 완벽하지 못하다는 증거라고 말한다. 타인을 증오한 흔적이 타인을 해친 흔적이 아니라 자신을 해친 흔적으로 남다니... 상당히 자기완결적 세계관이 아닌가? 타인과의 관계에서의 과오도, 세계를 망친 과오도 전부 오직 자기 안에 남는다. 그런 의미에서 군수공장을 하는 아빠와 그에 따른 가정의 풍요, 그것을 누리고 산 자신도 모두 (확장된) 자아의 과오로서 자기 안에 흉터를 남긴다.


그러나 죄책감이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자기완결적이다. 죄책감이란 자신의 과오로 인해 손상된 외부보다는 그런 잘못을 저지른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죄책감에 빠져 자신의 잘못을 상세하게 반추하면 할수록 정작 피해자는 소외되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죄책감은 ‘내가 무슨짓을 했는가'에 몰두할 뿐 정작 '남이 무슨짓을 당했는가'에는 관심을 두지 않기 때문에 아무리 혹독하게 반성을 한들 정작 피해자에겐 별 위로가 안 되는 경우가 많다. 그 반성은 오직 더 잘하지 못했던 자신을 추스리기 위한 것이지 피해자의 고통을 살피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이 영화에서 미야자키 감독이 자신의/아버지의/일본의 전쟁범죄를 아무리 구체적으로 반성하든, 그 전쟁의 피해자인 한국인의 입장에서는 소외를 느끼고 상처를 입는다. 군수공장을 하는 아빠는 영화에서 아주 대표적인 죄책감의 대상이었기 때문에 뭐... 필요했던 설정이라고 어찌어찌 받아들인다 해도, 출정을 결의한 마을 유지가 깃발을 높이 들고 행진을 하면 거리의 모든 사람이 박수를 치고 인사를 하는 장면 같은 것을 보면서 이와 똑같은 출정독려가 조선에서도 있었으며 그 과정에서 정신대와 위안부가 무자비하게 차출되었다는 사실이 떠올라 온몸에 소름이 쭉 끼치는 걸 막을 수가 없는 것이다. 마히토가 전학간 학교에서 한창이었던 증산운동 역시 그 이름 그대로 조선의 식량과 물자를 전부 쥐어짜서 농민의 삶을 완전히 파탄내버린 정책인데... 이 모든 전쟁의 과오가 오직 자기자신에게만 상처를 냈던 것처럼 묘사하고 있는 이 영화가 한국인인 내게 무슨 의미란 말인가... 하는 회의에서 아무래도 벗어나기가 힘든 것이다.


(참고로 마히토는 군수공장을 경영하는 아버지에게 얌전히 순종하고 전쟁 중인 국가에도 그럭저럭 충성한다. 당시의 그는 스스로 전쟁에 비판적 의식을 가질 만큼 문제적 인물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적극적으로 전쟁을 지지하는 애국소년도 아니었다. 그는 아버지에게 공손하지만 어느 정도의 거리를 좀처럼 좁히지 못하고, 국가의 정책을 성실히 따르지만 학교나 마을에서는 겉돌기만 하는 어정쩡한 “동조자”였다. 그럼에도 사업이 잘된다고 기세등등한 아버지와 전쟁에 여념이 없는 일본사회의 모습이 상당히 구체적으로 묘사되는 이유는 거기에 말없이 동조했던 마히토가 자신의 과거를 고백하며 반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세계에서 여러 분쟁을 목격하고, 그 와중에도 생명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여러 여성들을 만난 뒤로 마히토는 더 이상 현세계의 전쟁을 방관할 수 없게 되었을 것이다. 그 뒤로 마히토가 어떻게 살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가 자신의 과거 행동을 자책하고 참회한 결과가 영화의 앞부분을 이루고 있다.)


그래도 어쨌든 전쟁을 반대하고 반성하는 거니까...? 한국도 전쟁가해자였던 역사는 얼마든지 있으니까...? 좀 더 추상적으로 생각하면 영화의 훌륭한 메시지를 좀 더 어른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흠... 글쎄... 자신이 누구인가를 지우거나 감추고 즐겨야 하는 예술은 억압적이다. 2차대전 제국주의의 식민지였던 국가에게 자신의 역사를 잠시 잊고 영화를 보라는 것은 “무관심한 취미”로서의 예술의 요청이 아니라 제국주의 폭력은 비판하지 말라는 이데올로기의 압력이다. 일본의 2차대전을 반추하는 영화를 보기 위해 내가 한국인임을 지워야 하고 식민지 역사를 결여시킨 상태가 되어야 한다면, 내가 이 영화를 봐야 할 이유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더욱 웃겼던 것은 이 영화가 미국의 유명 배우에 의해 정성스럽게 더빙되어서 미국에서 인기를 끌었다는 점이었다. 뭘까...? 이세상에서 가장 2차대전을 반성하지 않는 나라 1위인 동시에 현재에도 절찬리에 전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이 이 영화를 왜 보지? 보고 뭘 느끼지? 대체 뭐라고 감상을 말할 거지? 영화 잘 봤어? 무슨 얘기였던 거 같애? 이스라엘의 가자 침공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 그냥 자기네가 원자폭탄으로 깨부신 일본이 막 2차대전 반성합니다 하니까 일종의 전리품 같은 감각으로 보는 건가? “마저... 그땐 니네가 참 멍청했지... 근데 그 뒤로 경제적 성장이 너무 급격해서 잠시 쫄았지만 이젠 다시 뭐 우리 식민지니까ㅋㅋ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반성해라” 이런 건가?


여튼... 잘 모르겠다... 이 영화가 한국에서 개봉하고 미국에서 개봉했다는 것이 이 영화가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는 모종의 좋은 의미를 아주 떨떠름하게 만드는 결정적 이유 중 하나인... 뭐... 산업이라는 게 그런 거겠지요... 개봉해준다면 어디서든 해야지…… 무엇보다 미야자키 감독이 2차대전을 비판하고 반성하는 것이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라 하더라도, 그 방식이 상당히 구체적이고 그 방향이 자책의 형태를 띠면서 작품이 좀 시들해지는 효과가 생겼던 것 같다. 물론 그동안 돌려돌려 말하던 걸 말년에 직설적 고백으로 냅다 지르고 싶은 마음이 이해 안 되는 건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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