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가오갤3〉: 과거의 나와 현재의 친구

영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3〉 리뷰

by 구감


* 스포일러가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마블 영화를 보려면 철없는 남자 주인공은 어느 정도 참고 견뎌야 하지만 그 중에서도 피터 퀼은 아무래도 도가 지나친 것 같아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는 그다지 챙겨보지 않는 편이었다. 그런데 이번 〈가오갤〉 3편은 사람들의 호평이 예사롭지가 않았다. 특히 주변적 존재들이 만나 서로를 돌보며 끈끈한 공동체를 이루는 ‘유사가족’ 스토리가 너무나 감동적으로 그려졌다는 극찬이 눈에 띄었다. 〈가오갤〉 1편은 피터 퀼의 엄마 얘기, 2편은 아빠 얘기였으니 3편에서는 유사가족 이야기를 하리라고 예상하기란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었지만, 그 얘길 그렇게 잘했다고? 지난 글에도 말했지만, 나는 얼마든지 예상 가능한 이야기를 기어코 재미있게 해내는 작품을 아주 좋아한다. 가뜩이나 할리우드 영화는 가족의 소중함을 강조하는 영화와 유사가족의 소중함을 강조하는 영화로 이루어져 있는데, 또 그 이야기를 해서 또 이렇게 사람들을 흥분시키다니…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막상 영화를 보니 〈가오갤〉 3편은 예상 외로 상당히 고독한 이야기였다. 이런 쓸쓸한 내용을 따뜻한 가족 이야기로 받아들여 주다니… 사람들은 대체 얼마나 마음이 넓은 건지 혼란스러울 정도였다. 영화는 우주 자경단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주요 멤버인 로켓이 치명적 공격을 받고 생명이 위태로운 상태에 빠지는 것으로 시작된다. 원래라면 ‘메드팩’이라는 의료기기로 치료할 수 있어야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로켓의 상태는 더욱 악화되고, 피터 퀼과 네뷸라, 맨티스를 비롯한 다른 멤버들은 로켓의 심장에는 의료처치를 시도하면 폭발하는 자폭장치가 장착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로켓은 생체실험에 의해 고도로 진화된 너구리인데, 이 실험을 자행한 기업 오르고가 이 진화생물들의 소유권을 독점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자폭장치를 설치했던 것이다. 여기서부터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멤버들이 로켓의 자폭장치를 해체하고 목숨을 살리기 위해 오르고에 침입하여 기업의 수장이자 생체실험의 책임자인 ‘하이 에볼루셔너리’와 결전을 벌이는 본격적인 모험담이 이어진다.


로켓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싸우는 친구들은 시종일관 신실하고 헌신적이다. 그들은 로켓을 위해 아무 망설임 없이 위험 속으로 뛰어들고 기꺼이 목숨을 건다. 로켓을 살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른 사정도 생각해야 하지 않냐는 갈등 따위는 전혀 없다. 각자 추구하는 방식은 다를지언정 로켓을 살려야 한다는 목표만은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이다.


그러나 정작 로켓은 전혀 다른 곳, 생체실험을 당한 뒤 우리에 갇힌 동료들끼리 처음으로 친구가 되었던 자신의 과거를 헤매고 있다. 로켓은 그 친구들이 목숨을 잃은 것이 전부 자기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기는 혼자 탈출하여 살아남았다. 그 과거가 너무나 고통스러워서 로켓은 차마 아무에게도 그 일을 말하지 못한다. 본디 온순했던 성격은 사나워졌고, 자신을 너구리라고 부르면 특히나 난폭하게 화를 냈다. 그 후 새로 만난 친구들과 더없이 친밀한 애정과 신뢰의 관계를 맺게 되었지만, 그 친구들에게조차 로켓은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완벽함을 강요하지 않는 유쾌하고 너그러운 친구들은 로켓이 원래 사나운 성격이겠거니 하며 이해하고 받아들여주었다. 그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 준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로켓이 과거 이야기를 한사코 숨기는 것마저 그대로 이해해주었다. 그 친구들은 로켓의 과거가 궁금했을까? 너구리라는 호칭에 그렇게까지 화를 내는 데에는 필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까? 어쨌든 불같이 욕을 들어먹을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과거를 캐물을 할 정도로 아쉬운 점은 없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모든 것을 ‘원래 좀 저런 애’라고 이해하면서 충분히 잘 지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렇게 어느 정도 덮어둬야만 잘 지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실 로켓에겐 자기 때문에 사랑하는 친구들이 죽고 자기 혼자 도망쳐 나온 그 순간만이 자신의 전부이다. 그 순간이 너무나 슬프고 고통스럽고 후회되고 수치스러워서 말은커녕 제대로 떠올리지도 못하고 마치 그런 일은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처럼 철저히 숨겨둔 채 살아가지만, 로켓에겐 오직 그 순간만이 의미가 있다. 그 후에 자기가 뭘 어떻게 하고 살아왔든, 그것은 그저 그날 친구들과 같이 죽지 못했다는 불미스러운 사건이 남긴 덧없는 부산물 같은 것이다. 목숨이 붙어 있으니 이것저것을 하고 살지만, 자신을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고통을 입 밖에 내지 않는 한 그 문제는 해결되지도 않고 사라지지도 않은 채 로켓을 결박하고 있다. 그 문제에 결박되어 있는 이상, 로켓은 현재 새로운 일, 새로운 친구와 함께 아무리 뜻깊은 경험을 한들 그것이 자신에게 얼마나 중요한 순간인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렇게 로켓이 과거에 잃어버린 친구들, 더 정확히 말하면 과거에 자신이 저지른 뼈아픈 과오에만 정신을 빼앗기고 있는 동안, 현재의 ‘가디언즈’ 친구들은 천신만고 끝에 로켓의 자폭장치를 해체할 코드를 구하는 데 성공하고, 가까스로 메드팩을 사용해 그를 치료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로켓의 기력은 거의 다해가고 있었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로켓은 드디어 먼저 간 옛 친구들을 만난다. 지금까지 전혀 볼 수 없었던 다정한 몸짓으로 친구를 끌어안더니 로켓은 눈물을 흘리며 나도 너희가 있는 곳으로 가도 되냐고 묻는다. 그러자 친구는 더없이 반갑다는 표정으로 물론이지, 라고 답한다. 로켓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친구들 쪽으로 걸음을 내딛는다.


그 순간, 나는 이것이 너무나 고독한 이야기라고 느꼈다. 로켓은 그토록 친밀하게 지내던 가디언즈 친구들은 조금도 떠올리지 않는 것 같았다. 마치 과거의 그날 이후로 친구라곤 단 한 순간도 있었던 적이 없었다는 듯이, 그날 이후로 로켓에게 생겼던 수많은 일들은 사실 아무 것도 아니었다는 듯이, 정말 스스럼없고 당연하게 그는 옛 친구들이 있는 저세상으로 걸어간다. 지금 현실에서 친구들은 죽지 말라고 악을 쓰느라 침을 뚝뚝 흘리며 심장마사지를 해대고 있는데, 그들은 안중에도 없는 것 같다. 로켓에겐 오직 ‘그때 나도 같이 죽었어야 했다’는 자신의 과오, 그에 대한 아픔과 후회, 지금이라도 그 생각을 집행하겠다는 강박만이 있을 뿐이다.


결국 옛 친구들에게마저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만류를 당하고 나서야, 로켓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이승으로 끌려간다. 그리고 드디어 자기를 살려준 친구들과 함께 자신의 과거를 대면하기 위해 나선다. 로켓은 과거의 한 순간에 고착되어 있었기에 그 순간이 영원히 지속되는 듯한 환상의 삶을 살고 있었다면, 두려움을 무릅쓰고 찾아간 오르고의 실험실에서는 자신과 친구들이 당했던 것과 같은 생체실험 및 살처분이 실제로 지속되고 있었다. 우리에 갇혀 떨고 있는 새끼너구리들을 본인 역시 떨리는 눈으로 바라보면서, 로켓이 끝내 떨칠 수 없었던 고질적 트라우마의 환상과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끔찍한 살육의 현실이 마침내 겹쳐진다. 마치 잘리고 없는 팔에서 고통을 느끼는 환상통을 치료할 때, 팔이 있는 거울상에 팔이 없는 현상을 겹쳐 보여주면서 통증부위(팔)가 사라진 현실을 차츰 인식시켜주면 통증도 누그러뜨릴 수 있는 것처럼, 자신의 트라우마와 겹쳐진 다른 생물들을 직접 죽음으로부터 해방시켜주면서 로켓 역시 자신의 과거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의 과거에서 벗어나고 나서야, 자신이 생체실험으로 고통 받다 겨우 목숨을 건진 ‘너구리’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지금까지 그는 과거를 직면할 수 없었기에 자신이 어떤 일을 당했었는지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너구리였다는 것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를 위해 고생을 마다않고 심지어 목숨도 기꺼이 걸 수 있는 좋은 친구들을 만나서 그 친구들의 힘으로 내 고통을 해결할 수 있다면 정말로 좋겠지만, 〈가오갤〉 3편에서 자신의 고통에 직면하는 동안 로켓은 철저히 혼자다. 물론 온전히 고통에 직면할 수 있도록 친구들이 목숨도 살려주고 적진에도 같이 쳐들어가주지만, 그들은 그저 한 발 떨어진 곳에서 로켓에서 필요한 환경을 마련해주는 정도일 뿐 그 이상 개입하지 못한다. 심지어 가디언즈 친구들은 로켓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싸우느라 그의 사연을 조금씩 알게 되었을 뿐, 로켓에게 직접 과거 이야기를 듣는 기회조차 갖지 못했다. 이 친구들이 없었다면 결코 로켓이 과거의 트라우마를 치유할 수 없었다 해도, 자신의 트라우마를 해결하기 위한 노역은 어디까지나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이 혼자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결국 자신의 트라우마를 치유하고 자신과 비슷한 실험동물들을 해방시킨 로켓은 마침내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리더가 된다. 그리고 너무나 놀랍게도, 영화의 결말에서 가디언즈의 멤버들은 각자 자신이 아직 해결하지 못한 과제를 책임지기 위해 혼자만의 길을 떠나기로 한다. 할리우드…의 유사가족 찬양…이라기에 다 같이 추수감사절 식사하는 장면이나, 우주 배경인 만큼 약간 이국적인 맛을 더해 설날에 세배하는 장면으로 끝날 줄만 알았던 내게는 너무나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렇게 주요 멤버가 뿔뿔이 흩어지는 이야기를 보고도 사람들이 그토록 ‘완벽한 유사가족 스토리’라고 찬양을 했단 말인가? 왜? 역시 가족은 멀리 떨어져 살아야 화목한 법이니까? 예상보다 훨씬 차분한 영화의 결말과 훨씬 심오한 관객 반응에 매료되어 나는 한참동안 ‘유사가족 스토리’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했다. 혈연가족을 떠나 자신이 직접 만든 공동체를 ‘유사가족’이라고 하는 만큼, 유사가족은 오히려 혈연가족보다도 더 ‘희노애락을 함께 하는 것’, ‘물리적으로 같이 사는 것’을 중시하게 마련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 영화와 영화의 관객들은 모두 그런 것에 구애되지 않아도 끈끈한 유사가족이 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 고독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는 동시에 더없이 사랑이 넘치는 이야기일 수 있게 된다.


과거에 갇혀 있는 사람은 자신이 현재를 살고 있기도 하다는 사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 그런 이들은 제대로 된 삶과 제대로 된 관계는 지금이 아니라 모든 문제가 해결된 미래의 언젠가에나 가능할 거라고 생각하거나, 앞으로도 영원히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한다. 즉 과거에서 나오지 못했기에 현재도, 미래도 없는 것이다. 그러면 지금 누구와 어떻게 살고 있는가와 상관없이 그저 외로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과거에 갇혀 있는 것이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라 해도, 동시에 현재를 살고 있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현실임을 받아들여야 한다. 나는 과거와 현재에 동시에 존재한다. 내가 예측하는 어떤 미래가 있다면, 그 미래에도 나는 존재하고 있다. 과거에서 벗어나야만 현재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과거에도 있고 현재에도 있으며 과거의 내가 어땠는지에 따라 현재의 내가 바뀌는 것과 마찬가지로, 현재의 내가 어떠한가에 연동하여 과거의 나도 달라진다. 사실 이 양자역학의 기초적 아이디어가 마블의 〈인피니티 워〉에서 한 번 죽었던 히어로들이 다시 살아나는 데 결정적 열쇠이기도 했다. 물론 로켓은 그의 고독을 성심껏 지원해줄 뿐 아니라 그 와중에 본인들이 로켓으로부터 소외당하는 것을 서운하게 생각하지 않는 친구들을 둔 덕에 순차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지만, 과거의 트라우마를 안고서도 덜 고독하도록 지금의 ‘유사가족’을 만들어가는 것은 꽤 큰 힘이 될 수 있다. 물론 이때의 유사가족은 무언가를 같이 하고도, 하지 않고도 가족일 수 있는 ‘끈끈한’ 공동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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