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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소장 Aug 03. 2022

그의 집은 잘 지어졌을까

집의 귓속말

나와 처음 만날 때 H는 A설계사무소 도면을 들고 왔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A설계사무소와 일을 진행하다가 설계가 엎어졌다는 것이었다. 그는 계약을 파기하고 다시 설계하고자 했다. 다른 설계사무소에서 진행하다가 멈춘 도면으로 마무리를 요청한 터라 그럴 수는 없다고 오해하지 않게 설명을 하고 돌려보냈다.


엎어진 이유는 간단했다. 유명 건축가의 건축사무소로 알려진 곳이라 꽤 비싼 설계비를 계약하고 시작했는데 실제 설계부터 일은 직원이 하고 정작 건축가가 신경을 쓰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더라는 거다. 게다가 수용하기 조금 어려운 디자인을 집요하게 강요하거나, 비용에서 부담이 큰 디테일과 재료를 쓰자고 욕심을 부리기도 했단다.


하지만 당연한 일이다. 뭔가 특별한 구석이 없었다면 H씨가 그 건축가를 알 수 있었을까. 그런데 막상 설계를 맡겨놓고 보니 불만이 쌓인 것이다. 설계비가 비싸면서 서비스도 안 좋으니 설계를 고쳐보려고 결심까지 하게 된 것이었다. 나는 이렇게 조언을 드렸다.     


“A설계사무소는 나름대로 그 사무실 방식에 맞게 일을 하고, 클라이언트가 바라는 수준에 따라 설계비를 제시했을 거예요. 따라서 선생님이 마땅치 않게 여기는 그 부분들은 문제제기 하셔도 만족할 만큼 바뀌진 않을 겁니다. 결국 최종 결과물만 잘 정리되면 중간의 문제들은 큰 의미가 없을 테니까요. 가령 구청 앞 B설계사무소 역시 나름의 사무실 방식에 맞게 신속하고 저렴한 설계를 통해 집을 빨리 지으려는 분들에 맞춰 설계비와 일하는 방식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같은 집을 설계해도 A설계사무소는 최소 5천만 원을 받고 B사무소는 천만 원을 받는 거겠지요. 설계 기간도 A설계사무소는 최소 서너 달 걸리고 B는 길어야 한 달인 거고요. 도면도 A설계사무소는 세부 도면까지 포함하면 100장이고 B는 다해봤자 20~30장인 거고요. 그러니 도면을 제작하는 시간도 마찬가지로 몇 곱절씩 차이가 납니다.


도면이 비교적 상세하다는 의미는 재료와 시공 방법이 더 자세히 표현되었다는 뜻이고 그런 경우에는 감리만 제대로 한다면 시공사가 임의로 시공 변경을 할 여지가 줄어듭니다. 공사 중에 추가 비용이 생기거나 시공자 편의대로 싼 자재나 부실하게 시공되는 일을 제어할 수 있다는 말이지요. 또한 건축주 입장에서 현장 갈등이 생겼을 때 의지할 수 있는 마지막 보루는 결국 도면이니까요.


설계 과정 중 건축가와 건축주가 상의하는 것도 A설계사무소는 수시로 만나지만 B는 처음부터 끝까지 공식적으로 네댓 번 미팅이 전부일거예요. 설계가 끝난 후엔 궁금해서 물어봐도 일일이 친절하게 대응하기 어려운 부분이 생길 겁니다. 사무실을 유지하려면 여러 가지 다른 일을 바로 이어서 같이 해야 할 테니까요. 감리도 설계에 공을 들인 A설계사무소 같은 경우는 시키지 않아도 평일이 아닌 주말이어도 알아서 감리를 나가보는데 B는 시작할 때, 끝날 때 빼곤 행정과 관련된 문제가 발생하기 전까지는 거의 보기가 힘들겠죠.


건축 설계란 결국 건축가의 시간을 빌리는 비용이라고 생각합니다. 변호사나 의사에게 법률상담과 진료를 받아도 상담료, 진료비란 명목으로 시간당 비용을 지불하듯이 집을 잘 짓기 위해서 선택한 전문가가 시간을 많이 쓰기 원한다면 그에 맞는 비용이 필요한 것이겠죠. 싼 비용으로 제대로 된 서비스를 받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가족이나 친한 친구라 해도 마찬가지죠.


그래서 제 생각엔 다시 A설계사무소로 가셔서 차분히 논의하시고, 거기서 마무리를 짓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일 것 같습니다. A는 적어도 집에 대해서는 전문가의 자존심을 지키려 노력하는 사무실이거든요.”     


그로부터 1년이 흘렀다. 그의 집은 잘 지어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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