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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소장 Aug 03. 2022

창문의 일상

집의 귓속말

창문은 풍경과 빛을 조절한다. 창문은 외벽에 표정을 만들어 외관의 모양을 결정짓는다. 또한 밖으로 보이는 풍경과 실내로 유입되는 빛을 조절하면서 실내 공간의 분위기를 결정한다. 과장해서 말하자면 집의 전반적 분위기, 공간감, 외관을 좌우하는 가장 결정적 요소가 창문이라 할 수 있다.

건축가의 도면과 업자의 도면을 구분하는 기준 가운데 하나가 바로 창문이다. 건축가의 도면에는 창의 크기와 위치, 비율, 높낮이가 매우 정교하게 설계되어 있다.


건축가는 설계를 하면서 창문 하나하나에서 들어오는 빛과 바깥 풍경에 대해 예민하게 따져보고, 외관의 느낌과 실내의 분위기를 반복적으로 피드백하면서 창문을 계획한다. 결국 창문과 관련된 도면들은 매우 논리적이고 기술적인 결과물이며, 한편으로는 사람의 정서와 관련된 정보를 담고 있다.


창문 자체의 규격과 사이즈가 기술적 정보를 제공한다면 창문 위치를 결정하는 치수는 공간 분위기를 정하는 정서적 정보라고 할 수 있다. 즉 창문이 어떤 높이에서 시작해서 어떤 높이로 끝나는지가 중요하다. 방에 넣을 가구나 살림살이의 규격이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눈높이에 따라 보이는 바깥 풍경도 창문 위치에 따라 결정된다. 그래서 정확한 창문 계획은 실제 거주자들의 키와 눈높이까지 고려해야 한다.


높은 가구를 낮은 창에 놓게 되면 창밖으로 가구가 노출되고, 내부에서도 가구 밑에 창이 위치해 분위기가 깨진다. 또 창이 너무 높게 있으면 창 아래 벽이 높아져서 방의 중심이 전반적으로 아래에 놓이게 된다. 무거운 느낌의 방이 되는 것이다.


창의 크기도 문제다. 창이 작으면 방이 어두워지는 문제를 차치하고라도 방이 받아들이는 바깥 풍경의 크기가 협소해지므로 방도 좁아 보이게 된다. 창이 너무 커도 마냥 좋은 것은 아니다. 겨울철엔 열손실이 커져 춥고, 여름엔 일사량이 과다 유입되어 덥다. 그리고 커다란 창으로 외부가 너무 훤히 보이는 터라 방 분위기가 산만해지고 프라이버시에 문제가 생긴다.


일반적으로 아파트 창문은 개인의 취향과 상관없이 공공의 표준을 임의적으로 정해 위치와 크기가 결정되므로 거주자들 역시 개인의 입장을 내세우지 않는다. 하지만 단독주택은 창문에 대한 거주자의 취향과 바람을 설계 도면에 직접 반영할 수 있다.


어느 유명 소설가의 집은 서재 한가운데에 창을 마주하도록 큰 책상을 놓고 벽은 책장으로 가득 채웠다고 한다. 서재는 큰 창이 북측으로 열려 있는데 뒷산이 바로 코앞에 있어서 하루종일 남쪽 태양을 받는 깨끗한 산 풍경을 눈부심 없이 즐길 수 있다고 한다.


북측 창은 보통 어두울 것이라 생각하지만 은은한 간접 광이 집중력에 도움이 되는 분위기를 만들어준다. 서재나 공부방, 침실로 활용하기엔 북향이 더 좋은 선택일 수 있다. 숲을 끼고 있는 전원 속 단독주택에서만 이런 호사를 누릴 수 있는 건 아니다. 아파트도 잘 살펴보면 주변에 볼 만한 숲이 있는 집을 구할 수 있다.


어떤 집이든 일단 들어가면 긴 시간을 살아야 한다.

어떤 풍경과 어떤 빛을 곁에 두고 살 것인지, 거주자의 선택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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