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출발을 위해 도시를 떠나 황량한 벌판으로 이사 온 한 가족. 그들을 반겨주는 건 벌판에 버려진 듯 덩그러니 놓여있는 낡고 길죽한 트레일러와 우거진 잡초, 야생의 숲, 드문드문 허름한 농가들 뿐.
이건 아닌데 하는 표정으로 트레일러에 힘겹게 오르던 모니카가 제이콥에게 묻는다. ‘여기는 대체 어디야?’ 제이콥의 답변. ‘ 어 우리 집이지 ’
영화의 초반, 이 대화에서 이유 없이 너무 울컥해져서 영화의 엔딩까지 그 기분이 이어졌다. 우리 삶에서 집은 대체 뭐고, 산다는 건 또 뭐길래. 제이콥이 생각한 집의 근본은 땅이 아니었을까 싶다. 힘겨운 대도시 생활 십 수년간 내 땅 한 평 갖기 어려웠을 못사는 나라의 이민자로서 하루하루 생계를 위해 열심히 반복적 삶을 받아들이는 것 밖에 다른 방법은 없었다. 그래서 제이콥은 표류하며 떠도는 생활을 멈추고 정착의 삶을 꿈꾼 것이다. 내 땅 위에 내 손으로 뿌리를 내리는 그런 삶만이 불안정한 이민자의 궤도를 멈추게 해줄 것임을, 아이들과 아내를 구원해줄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을 것이다. 비록 그들의 새 보금자리가 황무지 위에 트레일러라 할지라도.
그때 황량한 땅 위에서 애써 미래의 희망을 품는 제이콥의 불안한 미소에서 아주 오래전 누군가와의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결국 우리에게 남는 건 땅이라며 집은 허울 좋은 껍데기일 뿐 내 땅만 있으면 누구든 잘 살 수 있다고, 그 누군가도 그 시절 제이콥과 비슷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었다.
J의 집에 처음 가던 날은 대학 신입생 시절의 봄날이었다. 오후 수업 마치고 일찍 집으로 향하던 나는 지하철역에서 같은 과 신입생 J를 만났고, 같은 방향 열차를 타고 가다보니 서먹함을 피하려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우연히 J의 집에 가기로 한 것이었다. 지하철 3호선 양재역에 내려 시 경계를 넘어 과천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그 날 오후. 나른하고 따뜻한 미풍이 열려진 시외 버스 창문 너머 들락거리고 길가엔 벚꽃 잎이 헝클어지듯 흩날리고 있었다.
시 경계를 넘으니 주변은 정리되지 않은 택지들과 밭, 허름한 건물들이 드문드문 있는 다소 황량한 풍경이 이어졌다. 그런 풍경의 중간 어디쯤, 사람 사는 주택이라 할만한 것이 보이지 않는 낯선 지역의 정류장에 우리는 내렸다. 싸구려 스틸 가설 하우스로 지은 단층 화원, 비닐하우스 조경원이 밀집된 큰 길가, 그 주변엔 밭이 있었고 길 건너편 하천 너머엔 큰 아파트 공사 현장이 있었다. J가 ㅁㅁ화원 간판이 붙어 있는 비닐하우스로 들어가길래 따라 들어갔다. 각종 화분과 식물 분재들이 한가득 쌓인 화원의 좁은 실내를 통과하는 J의 뒷통수를 보며 내가 물었다. ‘근데 여기는 대체 어디야?’ J는 걸으며 앞을 보고 답했다. ‘어 내가 사는 집’
화원 내부를 지나 비닐하우스 끝에 달린 문을 열고 나가니 아예 비닐하우스 마을이 나타났다. 비닐하우스와 비닐하우스, 그리고 그 너머의 또 비닐하우스. 하우스의 틈새는 작은 오솔길이었고 가스통과 각종 낡은 세간, 버려진 물품들, 빨래가 어지럽게 널려있었다. 그 하우스 중 하나가 J의 집이었다.
변변한 창문 하나 없는 밀폐된 비닐 하우스 내부, 문을 열고 들어가는데 바깥 볕이 순간적으로 실내의 뽀얀 흙먼지 입자를 비추자 바닥에서 위로 뿜어졌다가 분사하듯 뿌려지는게 보였다. 온실 재배를 위해 설치한 비닐하우스 내부 흙바닥에 두꺼운 스티로폴을 겹으로 얼기설기 깔고 스티로폴과 스티로폴은 청테이프로 칭칭 감아 하나의 판으로 엮어 놓아 실내 바닥을 만들었다. J는 비가 많이 오면 흙 속에서 물이 올라와 바닥이 물 위에 뜨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고 했다. 나는 잠시 J가 난파선 표류자처럼 뗏목 위에서 살고 있다는 상상을 했다.
화장실은 건설현장용 가설 화장실을 공용으로 쓰고 목욕과 식수는 밤마다 비닐하우스촌 외곽을 돌아나가는 공용 수도 밸브를 열어 비닐하우스 순번을 정해 각 집안 큰 물통에 물을 채워 놓아야 하는 생활. 난 그날 J의 집에서 밤새 술 먹고 수다를 떨며 그 집을 체험했다.
한참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 때 형편이 어려웠던 J는 논밭 지역에 아파트 개발 계획 소문이 돌자 택지 보상받으려는 땅 주인 친척을 대신해 비닐하우스를 점유하며 돈을 받고 살아주는 대리인 역할을 하고 있었다. 졸업 때까지 그 집에 살며 모은 돈은 J에게 새 삶을 위한 희망이었던 셈이다. J는 늘 말했다. 내 땅 하나 있으면 좋겠다고. 내 땅만 있으면 지금처럼 비닐하우스 짓고 살아도 좋겠다고.
제이콥 가족이 트레일러를 처음 만나는 장면에서 애매한 불편함을 느낀 이유는 그 시절이나 지금이나 내가 살 집에 관해 집단 히스테리에 빠져있는 우리 사회가 보였기 때문이었다. 80년대 이민자 제이콥도, 90년대 비닐하우스의 J도, 지금의 나도, 우리 모두도 뿌리 없는 집에 대한 고민은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진 게 없다. 어디 사세요? 라는 질문의 내가 사는 곳이 내 집을 묻는 게 아니라, 내 계급을 묻는 거라는 것쯤 아이들도 다 아는 세상. 누구는 집이 없어 불안하고 누구는 집이 있어 불안하고, 집값이 오르면 올라서 불안하고 내리면 내려서 불안하고. 돈을 위해서라면 언제든 당장이라도 떠날 준비를 해야 하는 아파트 유목민의 세상.
얼마 전 거의 20년 만에 통화에서 ‘ 요즘 어디 살어? ’ 물었을 때, J는 말했다. ‘ 어, 나? OO동 OO 아파트 살어 ’ 다주택자 J는 지금 재건축된 강남 OO아파트 22층에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