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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소장 Aug 03. 2022

테넷, 이해하려하지마

영화 리뷰

   

초등학교 6학년 때였나 친구집에서 어린이 문고로 나온 스콧피츠제랄드의 단편 <벤자민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를 읽고 한동안 멍하게 지냈던 기억이 난다. 말하자면, 세상 모든게 갑자기 허무하고 슬프게 보였달까. 돌이켜보면 그때 ‘시간’에 대해 생애 처음으로 깊이 있는 성찰(은 당연히 아니었겠지만) 비스무리한 걸 했었던 것 같다. 이후 EBS 주말의 명화에서 본 원조 슈퍼맨 크리스토퍼 리브의 <사랑의 은하수>는 시간과 더불어 남녀의 사랑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금 깊이 있는 성찰(은 역시 아니었겠지만)을 하는 기회가 되었다. 그래서인지 이후 지금봐도 재밌는 명작 백투더퓨처1,2,3 와 터미네이터 시리즈를 거쳐 메멘토, 말할 수 없는 비밀, 어바웃타임, 인셉션, 미드나잇인 파리.... 신카이 마코토의 ‘너의 이름은’ 으로 이어지는 나의 러블리 무비 리스트 중엔 공교롭게도 ‘시간여행’ 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시간여행’을 소재로 삼는 영화의 줄거리는 대개 현재를 바꾸기 위해 과거로 가는 이야기다. 그러니 현실에 불만 많은 평범한 이들이 사는 이 세계에서 이런 영화가 늘 보편적 호기심과 대리만족의 대상으로 인정받는 건 지극히 자연스럽다. 더군다나 지금은 지옥만 아니면 어디든 가고 싶은 코로나 전시 상황이 아니던가.

자가 격리 수준의 일상이 지속되는 와중에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테넷’을 일주일 간격으로 두 번 봤다. 거실로 입고된 친절한 광케이블을 통해서. 누군 그러더라. 극장에서 볼 영화를 집에서 보니 이해가 잘 안 되는 거라고. 물론 어떤 영화든 보고 나면 무슨 말이든 하고 싶은 말이 많을 것이다. 나 역시 테넷을 보고 나니 저런 말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을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제대로 각 잡고 봐야 하는 영화가 종종 있다지만, 테넷 같은 경우는 각 잡을수록 오히려 더 안 보이는 영화다. 테넷은 최대한 편한 자세로 머리를 내려놓고 가슴으로 봐야 한다. 적당한 알코올과 주전부리, 수다 떨며 여럿이 같이 보는 것도 테넷 관람엔 도움이 된다. 세상엔 대충 보면 알 것도 같은데 깊이 들어갈수록, 어설프게 따지며 앞뒤를 맞춰보려할 수록, 뭐가 뭔지 모르게 되 버리고 재미가 반감되는 것들이 있다. 테넷이 그렇다. 이해보단 상상, 해석보단 느낌에 집중하는 편이 테넷을 온전히 즐기게 해줄 것이다.  


유튜브와 포털에 넘치는 이 영화에 대한 복잡 난해한 각종 분석 썰들과 엔트로피니 시간대칭성이니 하는 과학 이론도 지금껏 제대로 찾아 보지 않았다. 그걸 보는 순간 내가 본 느낌과 전혀 다른 영화가 되어 버릴테니까. 테넷은 아주 단순한 이야기니까. 악당을 막기 위해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가는 남자. 그리고 그 남자가 좋아하는 한 여자. 끝.


이야기의 중심에 시간을 역행하는 기계 ‘인버전’ 이 있다. 회전문처럼 생긴 인버전이 지금껏 우리가 알던 타임머신, 타임슬립, 타임리프트 등의 기계와 조금 다른 점은 순간 이동 방식이 아니라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 테넷과 기존 시간 여행 영화와의 큰 차이가 있다.


인버전은 가고 싶은 날짜를 입력하면 자판기에서 캔 떨어지듯 과거로 갈 수 있는 흔한 기계가 아니다. 인버전은 전진하는 시간을 후진하게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시간이 순방향이라면 인버전을 거친 사람은 시간을 역방향으로 겪게 된다. 인버전을 통과한 사람에겐 시간이 뒤로 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 상황을 복잡하게 이해할 필요가 없는 이유는 크리스토퍼 놀란이 간접 체험 수준의 뛰어난 영상으로 구현을 해놓았기 때문이다. 날리던 흙들이 청소기 흡입구에 빨려드는 먼지처럼 땅에 달라붙고, 튀어 오르던 바닥의 물방울이 소멸하듯 고인 물이 되고, 자동차가 뒤로 가고, 사람도 뒤로 가고, 새가 뒤로 날며, 강물이 상류로 거슬러 흐른다. 흐르던 시간을 억지로 잡아 세워 뒤로 돌리는 장면들은 시각적으로 매우 불편하고 고단하며 부자연스러운 느낌이어서 행여나 나중에 저런 기술이 생긴다 해도 시간을 절대 뒤로 돌리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였다.


이미 다양한 ‘시간여행’ 영화를 간접 체험한 우리는 과거로 간다는 게 결코 낭만적이지 않다는 정도는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시간을 되돌린다는 게 예상 보다 더 괴롭고 부질없는 일이라는 거, 간다한들 모든 게 순리 데로 흐르는 상황에서 막상 할 수 있는 게 현실적으론 거의 없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


과거로 역행하는 나와 순행해서 올라오는 내가 만나는 장면은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그때의 너는 무엇을 하고 있던 걸까. 그때의 너는 내게 뭘 말하고 싶었던 걸까. 일어 일은 결국 일어난다는 변치 않는 율법 하나, 오직 현재뿐이라는 중요교훈 하나가 남았다.        


지금 우리 앞에는 어떤 선택이 있을까. 선택을 고민하게 만들 정도의 기회일까. 그걸 흘려보내도 살다보면 다시 내게 오는 걸까. 이미 지나버려 되돌릴 수 없는 과거의 그 무수한 '그 때' 를 한번쯤 돌이켜보면, 이런 저런 선택이 놓여있는 지금이 결국은 후회하고 있을 미래의 '그 때' 라고 생각해본다면, 지금 당신 앞의 펼쳐진 현재가 인생 최고의 순간이란 걸 당신은 이미 알고 있지 않을까.


크리스토퍼 놀란이 조언한 테넷의 관람법은 이러했다. “Don‘t try to understand it. Feel it ” 인생을 현명하게 사는 법도 별로 다르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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