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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을 거닐며 집을 그려본다

집의 질문들

by 최소장


땅을 거닐며 상상으로 집을 그려보는건 늘 즐거운 일이다


땅을 보는 건축가의 시점이 중요한 이유는 장차 지어질 집의 씨앗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건축과 땅의 관계를 배우와 무대의 관계로 바라보든 혹은 다른 어떤 방식으로 바라보든 건축가의 손끝은 보는 관점 따라 전혀 다른 공간과 형태로 전개될수 있다. 그러니 건축을 설계한다는 건 땅과의 관계를 해석하고 풀어간다는 이야기가 된다.


인간은 땅이 있어야 살아갈수 있는 존재다. 그러니 인간에게 땅이란 음식의 식재료처럼 마음데로 볶고 썰고 요리할 처리 대상이 아니라 인간과 함께 공생하는 상호보완적 존재라는 인식이 중요하다. 기억이 가물거리긴 하지만 일찌기 생텍쥐베리는 소설 <인간의 대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 대지는 맘데로 쓰는 자원이 아니라 우리가 머물고 가꾸어야 할 터전이라고. 그러니 문명을 세운다는건 땅을 정복하는 게 아니라 땅과 계약을 맺는 것이라고 ' 땅과 계약을 맺는 거라니... 땅과 건축의 관계를 한마디로 이처럼 명료하게 정의한 문장이 또 있을까. 문명이 결국 건축을 말하는 거라면 인간에게 건축이란 땅을 잠시 빌려쓰는 계약 관계라는 이야기가 된다.


땅을 건성건성 대충 읽다가 건축이 낭패를 보는 경우는 흔하다.

낭패의 양상은 여러가지인데 땅의 물리적 조건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아서 엉뚱한 설계를 하는 경우가 있고, 감성적 인문적 조건을 소홀히 해서 갬성이라고는 쥐톨만큼도 없는 갱스터 집장사풍의 황량한 집을 만드는 경우도 있다. 전자나 후자 모두 일단 일이 벌어지면 속이 쓰릴 수준의 금전적 피해가 생길수 있다는 점에서 주의가 요망된다.


주택에서 땅의 물리적 조건은 일종의 형식논리를 맞추기 위한 최소한의 필요충분 조건 같은것이다. 설계에 이것들 반영이 제대로 안되면 집이 좀 이상해진다. 물이 새거나 물이 안빠지거나 건물이 기울거나 건물이 가라앉거나, 법을 안지켜서 골치 아픈 송사에 휘말리거나 허가를 받지 못하거나, 큰 창이 있는 곳에 빛이 없고 창이 별로 없는 곳에 볕이 잘 드는 웃픈 집이 된다거나, 도로와 땅의 레벨이 안맞아 주차 할때마다 차 바닥을 긁게되고, 하수도 보다 낮은곳에 배관을 묻어 뻑하면 안좋은 애들이 역류하는.... 등등의 블랙 코미디같은 일들이 자칫하면 발생하는 것이다.


사실 땅의 물리적 조건을 체크하는 건, 건축을 작품처럼 하는 설계부심 늠름한 건축가나 건축을 건수로 빨리 쳐내야하는 동네허가방이나 똑같이 중요한 일이다. 이게 흐트러지면 일단 건축 자체가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건축가의 건축이나 허가방의 건축이나 특별한 문제 없이 버젓이 잘 서있을수 있다는 건 일단은 물리적 조건 체크는 별 문제가 없었다는 얘기다.


땅의 물리적 조건 체크는 어느정도 경험있는 건축가에게는 아침에 세수하고 이빨닦는 일 같은 것인데 어떤 체크를 하는지 궁금한 분들을 위해 생각나는데로 줄줄이 읊어본다면 대략 다음과 같다.


먼저 토양, 땅의 질감이나 굳기를 느끼는건데 발로 한번 밟는다고 '음 대충 제곱미터당 8톤의 단단함을 지녔군' 이라 답을 척 내는 수준은 당연히 어렵겠지만 뭔가 무르거나 날리는 땅은 지반강도 확인이 필요하다. 대부분의 땅은 새로 성토한 매립지라 해도 몇년만 흐르면 토양 안정화가 되면서 밀도가 생겨 작은 건물 하나 들어가는게 큰 문제가 되진 않는다. 허나 간혹 미처 예상못한 일을 발생시키기도 하는데 가령 땅을 2미터쯤 파보니 암층이 구렁이처럼 포진하는 경우, 아니면 조금 파다보니 갑자기 건설 쓰레기같은게 나오는 경우... 벼라별 일이 드물게 생기곤 한다. 이럴땐 땅의 몇 곳을 깊게 파서 층의 구성을 확인하는 지질조사를 할수 있다.


토양이 땅의 성질에 관한거라면 지형은 토양의 형태를 보는 것인데, 앞서 말했듯 땅과 싸우지 않는 스며들듯 자연스러운 건축이 되려면 땅의 형태를 잘 활용하는게 중요하다. 토양과 지형은 집에서 가장 중요한 배수 문제와도 연결되어있다. 물이 잘 빠지는 땅인지 땅이 울퉁불퉁한지 배수가 용이할지, 폭우시 집수정과 배수로가 별도로 필요한지 등등을 본다. 배수가 망하면 방수도 망한다는게 지론이라 특히 잘봐야 하는 부분이다.


땅의 형태를 본다는건 경사나 높낮이를 체크하는 것인데 눈대중이나 간단한 치수 확인 정도로 설계가 가능한지 별도의 측량이 필요한지 가늠한다. 지형이 익숙해지면 땅위를 이리 저리 걸으면서 곧바로 상상속에서 집을 이렇게 저렇게 앉혀본다. 여기서 상상속 집이 의외로 구체적으로 그려지기 시작하면 집의 외형과 내부 공간까지 대략 틀을 잡아보면서 이미 집의 내외부를 돌아다니기도 한다.


이때가 건축설계가 시작되는 순간이다.




다음 이야기는 나머지 땅의 물리적 조건들...

건축법규,일조와 방위, 경관, 인프라등 에 대해 풀어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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