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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법이란 뭘까

집의 질문들

by 최소장


' 법 ' 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하면 반사적으로 갑갑해하는 분들이 많다.



증상의 원인은 법을 알고 모르고를 떠나서 법이란게 태생적으로 뭔가를 제한, 구속한다고 보기 때문.

하지만 법은 취지나 배경에 대해 조금만 이해하게 되면 생각만큼 낯선 내용도 아니고, 나를 괴롭히는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게 마련이다. 오히려 법은 여러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사회에서 다툼을 막아주고 상식의 기준을 정해주는, 꼭 필요한 존재가 아닐까 싶다.


건축사는 선비 사(士)자를 쓴다. 직업 이름에 선비 사(士)가 들어가는 것들은 변호사, 회계사, 세무사, 변리사 등등인데 공통점은 관련 법을 다루는 전문 자격을 의미한다는 것. 변호사는 형법 민법등의 소송법을 회계사, 세무사는 세법과 상속, 금융법등을, 변리사는 특허법을, 건축사는 당연히 건축법을 다룬다.


세상의 모든 법이 마찬가지겠지만 건축법 이슈가 불거지면 다들 머리가 아파온다. 당연한 인지상정 아닐까. 수시로 건축법을 체크하고 해석해야하는 20년차 건축사인 내게도 법이란 늘 가깝고도 먼 존재, 알 듯 하면서도 확실치 않은 미지의 세계와 다름 아니다.


건축법 포함해서 모든 법이 어렵다고 느껴지는 이유는 간단하다. 법에 명시된 ‘글’ 과 그걸 해석하는 사람의 ‘생각’은 늘 차이가 생기기 때문이다. 해석하는 사람이 늘수록 그 차이 역시 거의 비례해서 커지기 마련이고 이는 너무 당연한 일이다. 각자 내게 유리한 쪽으로 법을 이해하고 싶은게 사람 마음이니까. 건축법은 특히나 그런 편이다. 대체로 땅과 건물.. 큰 돈이 걸려있다보니 이익을 위해, 법을 악용하거나 말도 안되는 논리로 편법을 궁리하고, 불법을 눈감아주고... 결국 법과 돈은, 동전의 양면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나저나 최초의 건축법은 언제였을까. 고대 바빌로니아의 왕 함무라비의 법전(기원전 18세기)에서 흔적을 찾을수 있다. 역시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당시 건축법은 매우 강력한 편인데 특히 안전과 부실 공사에 대한 처벌 조항이 살벌하다. 가령 이런식.. 229조. 건물이 무너지면 그거 지은 건축가는 사형 (헐..) 230조. 무너진 건물 주인의 애가 죽으면 건축가 애도 죽음 (ㅜㅜ) 등등. 거의 목숨걸고 건축하는 시절 아니었나 싶다.


그러다 기원전 3세기 전후의 로마제국으로 넘어오면 건축법은 현대적 건축법의 틀을 갖추게 되는데, 세부 조항만 보면 지금 건축법과 너무 비슷해서 놀라울 뿐이다. 가령 건축물의 높이제한 (도시미관과 밀도 조절, 일조권 확보등을 위한 규정)이라든지, 용도지역제한 (도시균형발전을 위해 지역별로 용도 지정해서 주거지역, 상업지역등으로 정해주는 규정), 기타 공중위생 상하수도 관련 법령 등등... 지금 건축법에서도 매우 중요한 조항들이 명시되어있다. 사실상 지금의 건축법 틀이 이 시절에 거의 만들어졌다고 볼수 있을 듯 싶다.


이후에는 중세, 근대, 현대로 이어지는 건축기술이 발전하면서 새로운 법이 추가되고 기존 법이 강화되는 과정이다. 중세에는 길드 제도를 통해 건축 전문가들이 체계적으로 관리되는 시기였는데, 상업이 발달하면서 도시가 복잡해져서 건축법도 좀더 세분화 되면서 시대 변화를 맞춰나갔다.


건축법 역사에서 큰 전환점을 맞은 시기는 19세기 이후다. 산업혁명을 계기로 도시화가 급격히 진행되면서 현대적 개념의 건축법이 처음으로 시작된 시기다. 농업에서 공업으로 주도산업이 바뀌면서 도시로 엄청난 사람이 몰려들었고 인구과잉에 도시 시스템은 이를 따라가질 못했다. 거주 환경은 열악해지고 각종 질병에 취약한 상황이 이어졌고 평균 수명은 역대급으로 낮아졌다. 자연스레 이 시기 건축법은 기본적인 위생, 안전, 환경 개선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부유한 자본가나 귀족을 제외하면, 일단 사람답게 사는게 쉽지 않은 시대였다.


한편 현대사회로 넘어가기 위한 건축법이 필요한 이 시기는 우리도 비슷한 과도기를 겪고 있었다. 사실 조선시대와 그 이전 시대의 건축법이란건 어명이나 훈령보다 권위가 낮은 지침이라 별 의미는 없었다. 다만 조선 중기 경국대전(1485)에는 건축법의 흔적이랄까, 도성 내 건물 신축시 규모와 재료 사용에 대해 명문화된 규정이 있었고 계급별 주택 규모 제한등의 신분체제 유지를 위한 기본법 등이 있어 눈길을 끈다.


본격적인 건축법 출발은 일제강점기 1916년 총독부가 제정한 <조선시가지계획령>인데 최초의 현대 도시 계획법이었고 지금의 서울시 주요 가로 체계를 만든 출발점이 된다. 하지만 법 제정의 취지가 식민통치와 대륙 진출을 위한 목적하에 진행되다보니, 주로 도로 확장과 행정 및 각종 관리시설 개발에 중점을 두었고 지역별로 주택,, 상업, 학교, 공원, 문화재 등을 균형 있게 개발하는 방향과는 차이가 있었다. 결과적으로는 전통 건축이 많이 사라지고 무분별한 난개발로 인한 서구식 콘크리트 건물과 일본의 목구조 건물이 혼재하는 도시 풍경이 만들어졌다.


현재 대한민국 건축법의 시작은 1962년이다. 현대적 개념의 체계적인 건축법으로 도시 균형 발전을 위한 지역별 용도규정과 안전 기준이 확립되었다. 이후 서울로 인구가 집중되자 대량 주택공급을 목적으로 1972년 <주택건설 촉진법>이 만들어지고 1980년대엔 고층건물 증가에 따른 내진성능, 방화기준을 명시한 <건축기준법>이 만들어진다. 1990년대는 삼풍백화점 붕괴와 성수대교 참사를 계기로 <건축물의 구조 안전기준>이 대폭 강화되는데, 97년 IMF까지 이어지면서 사실상 60~80년대 고도성장기를 달려오며 놓쳤던 것들의 댓가를 치루는 시기였다.


2000년대 이후 건축법은 친환경과 에너지 중심으로 강화되는 중이다. 녹색건축물이니 에너지 효율이니 탄소중립이니... 기후위기와 자원고갈에 대비하는 시대의 흐름이 건축법에도 적용되는 중이다. 건축법을 설계에 반영해야 하는 입장에선 규제만 점점 늘어나는 분위기가 달갑지는 않지만 큰 방향은 공감하고 있다. 한정된 에너지는 최대한 세이브해야하고 집은 왠만한 재해에도 견딜만큼 단단한게 옳으니까.


집과 관련된 건축법을 가볍게 말하려다 얼결에 건축법 역사로 빠져버려 이야기가 새버리고 말았는데, 건축법이 그 시대의 중요했던 가치에 따라 즉각적으로 변화한 과정을 살펴보면 이 법을 마냥 골칫거리 취급하거나 미워할수만은 없고, 크게 보면 상식의 범주에서 충분히 이해할수 있는 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서로 지켜야 할 선에 대한 이야기니까.


건축법이란 결국 나와 타인 모두 넘지않아야 할 선, 내 땅과 남의 땅이 서로 지켜야할 선에 대한 내용이다. 선 넘지 않아야 모두가 적정한 행복과 만족을 공평하게 얻을 수 있다는 상식에 근거한다. 집 지으려면 늘 따라오는 건축법들... 가령 건폐율, 용적율, 사선제한, 대지안의 공지, 주차규정 등등은 각자의 집이 서로 선을 넘지 않고 적정한 거리를 유지할수 있게 한다. 점점 강화되는 단열 규정 역시 건축주 입장에선 돈 나갈 일이지만 여름, 겨울 불필요한 전기세를 막아준다. 실제로 10여년전 단열규정과 지금의 규정은 열효율에서 엄청난 차이가 난다. 초기 투자를 법으로 못박는게 불만일 순 있지만 짓고 나서 20년을 본다면 손익계산은 해볼 것도 없을 듯 싶다.


그러니 이왕이면 피할수 없는 건축법을 미워할 게 아니라 법의 취지를 살펴보고 상식선에서 접근하는게 바람직하다는 생각이다. 법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면서 인상 덜 쓰고 역으로 활용하면 가끔 생각지도 못한 좋은 공간과 디자인이 나온다.


규제와 구속에서 진정한 자유로움으로 나아가는 순간, 그것이 건축의 묘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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