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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비는 얼마입니까

집의 질문들

by 최소장


unnamed.jpg?type=w773 영덕동 빛담집 거실, 설계 시작할때는 이런 공간이 될지 알지 못했다


일전에 친한 친구 J가 물었다.


- 어이 최소장은 설계비 얼마받남?

- 갑자기 왜, 집 짓게?

- 아니 아는 지인이 집 지으려고 땅을 샀는데 설계비 물어보길래.


무슨 집을 어떻게 어떤 규모로 어느정도 예산으로 지으려는지 아무런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물어보는 설계비... 이런 경우는 사실 설계비를 말해주는게 큰 의미는 없다. 허나 J의 지인이라니 대략 얼마에서 얼마정도 범위로 일하고 있다는 정도로 알려주고, 많이 여기저기 알아보시고 상담 필요하면 계약 부담 안드리니 걱정말고 언제든 연락하시라해.... 답변을 했다.


친구의 지인은 이후 주변 소개로, 혹은 본인이 알아봐서 여러 건축가, 업체를 만난 모양이었고 마지막으로 나를 찾아왔다고 했다. 처음부터 준비없이 두서없이 묻고 시간 뺐는게 실례같아서 나름 여기저기 정보수집하느라 좀 늦었다면서. (그러실 필요는 없는데 아는 사람이 중간에 끼면 꼭 이렇다. 사람심리가 좀 그런가 부다)


향 좋은 캡슐 커피를 마시며 대략 어떤 집을 어떤 규모로 어떤 스타일로 짓고 싶은지 편하게 얘기도 듣고, 본인이 원하는 집에 대한 구상이나 생각들도 듣고, 살아온 이야기나 취미나 성격 등등 즐거운 스몰 토크도 나눴다. 대개 첫 상담 원칙은 의뢰자의 이야기를 많이 듣는것이다. 계약 할지 말지 그 여부를 떠나서 집을 짓는다는 결심은 인생 살면서 누구나 하는건 아닌 진귀한 경험이니 그 이야기를 듣는게 솔직히 흥미진진하기도 하다. 당사자의 이야기 속에 집짓기 대한 모든 힌트가 들어있기 마련이기도 하고.


마음이 얼마나 설레일지 기대반 걱정반이 섞인 묘한 기분일지.. 사실 계약을 위한 어설픈 밀당이나 네고 보다는 진심의 응원과 정확한 조언이 필요한 시점이라는걸 난 잘 안다. 나 역시 8년전 내 집을 짓기 위해 땅을 사고 설계를 하고 공사를 했던 경험을 떠올려보면, 내 맞은편에 앉은 예비 건축주에게는 뭔가 판단의 기준점 같은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 일단 만난 것 자체가 큰 인연이니 혹시 인연이 되지 않는다해도 도움 될만한 조언을 드리는게 당연한 인지상정이다.


대략 집짓기 구상을 들어보니 구조는 철근콘크리를 원했고 본인이 생각하고 있는 집의 스타일도 오래 고민한 내용들이었고 확고한 편이었다. 집짓기 예산이나 규모 등은 적정 수준으로 생각하고 계셔서 특별한 문제가 없었고 설계비 역시 본인이 생각한 범위였다. 상담 시간은 유쾌했고 며칠이 지난 후 연락이 와서 집 설계를 의뢰하셨는데, 결과적으로 이 집은 맡지 못했고 적임자가 될만한 다른 건축사 두 분을 소개 드리는 걸로 마무리되었다.


그럴 이유가 있었는데 일단 원하는 집의 퀄리티, 설계비, 건축주의 요구조건들, 규모와 예산 등등은 합리적인 수준이었지만 설계 기간이 많이 촉박했다. 당연히 공사 기간도 마찬가지였다. 아이의 학군 문제로 이사를 들어와야 하는 시점이 집이 완성되는 시점이 맞아야하는데 아무리 계산을 해도 안될거 같았다. 난 단독주택 설계를 6개월 내외로 잡는다. 임의로 정한 기간은 아니고 10년 가까이 50여채 넘게 해보면서 얻은 일종의 평균 데이터다. 조금 빨리 끝나거나 조금 늦게 끝날 수는 있지만 설계를 하다보면 경험상 평균 반년은 필요하다. 석달 설계에 너댓달 공사로 8개월내 입주는 나로서는 책임지기 어려운 속도라는 판단을 했다.


IMG_20190127_155033_594.jpg?type=w773 보정동 미생헌의 천정, 작은 집일 경우 천정을 높게 하면 비좁은 느낌이 없다


대개의 설계비는 공사비에 비하면 5~10% 수준이지만, 설계에 문제가 생기면 공사비의 10~20% 이상 리스크가 생길수도 있다. 방향을 잘못잡은 댓가인데 가령 공사비 예산 8억의 단독주택 설계비가 4천만원 이라 가정할 때 공사비 대비 미미한 설계비로 보이겠지만, 설계에 따라 공사는 7억5천에 끝날 수도 있고 8억5천에도 못 끝낼 수가 있다. 비싼 자재나 공법의 문제가 아니라 엇 비슷한 퀄리티의 집임에도 설계의 영향은 빈번하게 발생하는 것이다. 그래서 설계비는 때때로 건축주들에겐 알송달송한 미지의 비용처럼 여겨진다. 어떤 건축가는 1천5백만원 설계비에 두달이면 설계, 인허가 끝내고 착공 들어가게 해준다 하고 어떤 건축가는 1억에 최소 1년의 설계시간은 필요하다고 하고. 세상엔 참 다양한 건축 설계가 존재하니, 건축가의 설계비 역시 부르는 사람 마음데로가 아닌지 오해할만하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현명한 건축주들은 나름 건축잡지나 건축가 작품들이 진열된 인터넷 플랫폼이나 건축가 홈페이지를 서치하며 며칠 동안 엄선한 몇 군데를 골라 상담 투어를 돌고 장단점을 따져보고, 설계비도 비교해서 결정한다. 선택된 건축가와 앞으로 최소 1년 넘게 설계도 하고, 공사가 잘 되도록 감리도 요청해야한다. 입주하는 날까지 일종의 집짓기 연대, 파트너쉽이 결성되는 것이다. 이성적 부분과 감성적 부분을 종합한 결정이므로 이제 막 집짓기에 나서려는 건축주는 건축가 선택을 앞두고 걱정반 기대반 고민이 많아진다.


당연히 설계 견적서의 금액만 보고 그 비용의 적정성으로만 판단할 수는 없다. 공사비에 10%도 안되는 설계비지만 지금은 전혀 보이지 않는 꿈에 투자하는 것이니까. 이왕이면 기분좋고 의미있게 그 시간을 함께 할 사람이라면 더 좋을 것이다. 단독주택의 건축가는 건축주 입장에선 자주 만나고 자주 이야기해도 부담없는 솔메이트 같은 관계가 제일 좋지 않을까. 걱정거리 있으면 해결사도 되주고 공사 중 난관이 생기면 능숙하게 풀어나가는 지휘자가 되주길 기대해야 한다.


그래서 설계의 가격은 음식점 메뉴판 같은 요금표가 아니라 내가 꿈꾸는 미래 가치가 된다. 설계는 결국 실제 건축물로 지어져야 그때 진짜 가치를 판단할 수 있으니까. 한 달 만에 도면 만들어 인허가를 받아주는 설계는 그 서비스에 맞는 가치가 있고 최소 6개월 이상 시간을 투자하는 설계는 한 달 짜리 설계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종합적 매니지먼트로서의 설계(설계의 컨셉 부터 기본디자인, 기초설계, 허가설계를 거쳐 시공을 위한 상세 도면까지 마무리하고 최적의 시공사를 선별하도록 견적서를 검토하고 시공 계약을 가이드하는 일까지)가 된다. 이런 과정을 비전문가인 건축주가 직접 처리하며 일을 해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고 익숙치 않은 건축을 하나하나 선별하면서 해쳐 나가는건 필시 마음고생을 동반한다. 그러니 좋은 설계일수록 집짓기의 마음고생은 최대한 발생하지 않는게 목표다.


우리 대부분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만질 수 없는 물건에 수 천만원을 써본 적이 없다. 만질 수 없는 주식에 수천만원을 투자하지만 그것의 미래가치는 역시나 만질 수 있는 돈으로 환산 되고, 골치 아픈 송사에 휘말려 변호사비로 수천만원이 들거나 운 나쁘게도 병에 걸려 수술과 치료에 수천만원을 쓸 수는 있겠지만 그 역시 닥친 불행을 해결하고 다시 원래의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당연히 써야할 비용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건축을 잘 짓기위한 설계는 구체적으로 내가 뭘 얻을 수 있는지 지금으로선 가늠하기가 낯설고 당장 확인할 수 없으니 이게 맞나 싶은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사실 살면서 나도 한번 지어볼까 하는 시기란, 인생에서 어쩌면 가장 행복한 시절이기도 하다.


반년간 설계를 진행하고 허가를 받고 다시 반년 공사를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대부분 건축주는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설계비가 자신이 쓴 돈 중 가장 적은 투자로 가장 큰 가치를 좌우한 중요한 비용이었다는 것을. 설계에 따라 이후에 쓰여진 그 많은 돈들이 모두 설계에서 결정되었다는 것을. 1년전 설계비 1~2천만원 차이를 두고 누굴 택할지 고민했을 새 집의 오너들은 자신의 선택이 다행히도 옳았음을, 집이 끝날 때 쯤 확실히 실감하게 된다.


*


친구 J의 지인은 소개 드렸던 건축가들과도 인연이 안된 모양인지 또 다른 지인의 소개로 기간을 줄이기 위해 설계와 시공 같이 하는 모 업체와 집을 짓는 중이라는데 잘 되고 있는건지는 모르겠다. 그의 예상데로라면 1월에 끝났어야 할 집이 아직 최소 한달은 더 걸린다고 하니 아이의 학군 문제 포함 그의 이런 저런 고민이 대략 헤아려진다. 하지만 사람마다 집마다 목표와 기대치가 다른것이고 집짓기에 정답은 없다. 어떻게 가든 결과만 좋다면 해피엔딩일수 있으니 좋은 마무리를 응원하는 수 밖에.


설계는 시작하기 전엔 백지 상태고 손에 잡히지 않는 상상 속 그림이다. 하지만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마음을 놓으면 설계가 미치는 영향은 의외로 만만치 않으니 아마 집짓기가 끝날 때 쯤엔 꽤 놀랄 수도 있다. 이제 시작이라면 설계부터 조금 진지하게 접근하는게 아무래도 좋지 않나 싶다.


아무것도 없던 땅에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일이 건축이다. 20년 넘게 건축가로 설계하고 짓고 있는데도 새 집을 할 때마다 신기하고 흥미진진하다. 설계에 따라 평균 이하가 될 수도 있고 어쩌면 작품이 될 수도 있다는 걸 믿는다면 그에 어울리는 설계비는 얼마일지도 한번 생각해보자. 꼭 아껴야 한다면 다른 부분에서 아낄 항목을 찾아보는게 더 나은 선택일수 있다. 그런거 찾는거 역시 실력 좋은 건축가라면 잘하는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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