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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무의식을 담는다

집의 질문들

by 최소장


집은 거주자의 무의식을 담는다


무의식을 반영한 설계가 가능한가요? 라고 질문 했던 어떤 건축주가 기억난다. 그 때 답변을 뭐라고 했는지 정확하진 않지만 재즈의 즉흥연주와 정통합주를 빗대서 이야기했었다. 재밌는 질문이네요, 집짓기에 거주자의 무의식을 반영할수 있다면 그건 재즈 연주자의 즉흥 연주같은거 아닐까 싶은데... 하지만 건축은 미리 정교하게 작곡한 악보를 바탕으로 연주하는 정통 클래식 합주같은거라서.... 블라블라. 이후의 이야기는 잘 기억 나지 않지만.


집과 무의식의 관계... 에 관해서 생각해보자면 ' 집은 두번째 피부다 ' 라고 했던 가스통 바슐라르(또 바슐라르다. 집에 관한 모든 명언은 혼자 다 하신거 같다)가 떠오르는데 집이 피부라는건 집이 나고 내가 집이라는 일종의 물아일체적 세계관이 아닌가 싶다.


카사바트요의 외관

1920년대 칼 융은 ' 집의 구조는 무의식의 상징 ' 이라고 했는데 이는 아마 심리학자나 정신과 의사들이 환자를 진단할 때 환자의 집을 증상의 원인을 추적하는 중요한 대상으로 간주했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또 융은 사람의 무의식을 ‘ 보이지 않는 또 하나의 나 ’ 라고도 했다. 쉽게 말해, 나도 모르게 형성된 감정과 경험이 우리가 하는 행동을 조용히 결정한다는 뜻이다.


프로이트나 융같은 정신분석학자들의 활약 덕분인지 20세기 이후의 건축가들은 집을 단순한 ' 공간 '이 아닌 ' 인간 정신의 확장 '으로 바라본다. 가령 바르셀로나에 있는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의 '카사 바트요' 는 곡선과 유기적 형태로 마치 인간의 본능과 욕구를 반영하는듯한 추상화 같은 느낌이다. 물론 그는 ' 자연이 건축 속에서 숨 쉬는 것처럼 ' 이라고 이 집을 설명했지만 아마도 거주자의 무의식이나 정서의 흐름을 공간화한 사례로 봐도 좋지 않나 싶다.


카사바트요의 내부

겉으로 평범한 집도 막상 하나 하나 뜯어보다 보면 단순하다고 말할수가 없다. 어떤 집이라도 거기 사는 사람의 무의식이 스며든다. 거창한 이야기는 아니다. 당신의 집도 마찬가지고 부자의 집, 빈자의 집도 마찬가지일뿐. 평소 좋아하는 색감, 손이 자주 닿는 물건, 묘하게 특징있는 가구 배치.. 이 모든 것이 합리와 이성으로 판단한 의식적 선택이라기보단 나도 모르는 사이 흘러나온 취향과 습관의 흔적인 것이다. 당신의 집은 왜 이런 분위기를 갖게 되었죠? 저 가구는 왜 저 자리에 둔거죠? 라는 질문에 .. ' 실은 제가 오랫동안 계산해서 조명의 각도를 맞추고 가구 역시 색상과 스타일을 엄밀히 판단해서 배치를 했습니다 ' 라는 답변보다 ' 글쎄요, 살다보니 이렇게 되었고 특별히 거슬리지 않으니 그게 지금의 집이 된거 같네요 ' 라는 답변에 우리는 대체로 수긍이 더 가는 것 처럼.


집 이란게 그런것 같다. 미니멀한 공간을 원한다 말하지만 나도 모르게 아기자기한 소품을 하나둘 쌓아간다면 사실은 따뜻한 분위기를 선호하는 사람일지 모른다. 반대로 아기자기한 소품을 좋아하는 줄 알았다가 우연히 아무것도 없는 빈 공간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스스로에게 낯선 느낌을 받는 경우도 있다. 이런 무의식이 결국 집에 직간접적으로 투사되는 것이다.


무의식을 반영한 설계란 가능한가


그렇다면 건축가는 새로운 집을 설계할 때 거주자의 무의식을 얼마나 반영할 수 있는 걸까.

아마 건축가 마다 다른 접근 방법이 있겠지만 나의 경험을 말한다면 몇가지로 정리할수는 있을것 같다.


일단, 거주자의 습관과 본능적인 기호를 읽는다. 건축가 안도 타다오는 ' 공간이란 인간의 경험을 담는다 ' 라고 했다는데 사람의 경험은 학습과 달리 의식보다는 무의식에 영향을 더 준다. 가령, 거실에 오래 머물지 않고 방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는게 좋은 사람에겐 넓고 개방적 거실보단 아늑한 서재 느낌의 거실을 대체할수 있는 공간이 필요할 수 있다. 저는 햇볕을 좋아합니다, 라고 말하면서 실제로는 본능적으로 조금 어두운 곳을 선호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집은 직접 조명보다는 간접 조명을 위주로 조명 설계를 하고, 자연광 유입을 적절히 조절할 수 있도록 하고, 어두운 곳과 밝은 곳을 선택할수 있게 공간을 배치하려고 한다.


두번째로는 지나치게 ‘이상적인 집’을 목표로 하지 않는 편이 중요할것 같다. 대부분 잡지에서 본 군더더기 없는 갤러리 같은 집을 보면 감탄하지만, 정작 자신이 오래도록 편하게 머물 수 있는 공간은 아닐 공산이 크다. 예컨데 완벽한 화이트 인테리어를 원하지만, 커피 한 잔 마실 때마다 뭔가 마음이 불안하고 손이 떨리는 성향임을 모를수도 있는 것이다. 너무 깨끗한 공간이 오히려 스트레스를 주는 사례는 흔한데 이상적 공간과 현실적 생활 사이에서 착각을 하는 경우다. 무의식을 반영한 설계의 핵심은 완벽하지 않은 공간이 아닐까. 건축가 안도 다다오는 ' 빈 벽은 거주자의 기억으로 채워진다 ' 고 했는데 예를 들어, 주방에 애매하게 뚫린 창문 하나는 처음엔 조금 이상했지만 매일 아침 그 사이로 깃드는 햇볕을 보며 일상의 행복으로 자리 잡을수도 있는 것이다. 의도한 비완벽성이랄까, 이런 설계의 위트는 공간에 생기를 주고 거주자의 무의식에도 의외의 긍정적인 자극이 된다.


높은 천정은 누군가에겐 멋지지만, 또 누군가에겐 높이에 대한 부담감을 준다 _ 동탄 오하나집 가족홀


셋째는 그럼에도 집의 가장 중요한 조건은 '심리적 안정감' 이라는 것이다. 바슐라르의 ' 집은 두번째 피부' 라는 어록에 비추어보면 집은 일단 나를 보호하는 셀터같은 느낌을 줄수 있어야 한다. 높은 천장이 시원하고 멋지게 느껴지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늘 높이에 압도당하는 기분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창이 넓은걸 모두 좋아한다면 설계는 너무 쉬웠을 것인데, 넓은 창에 개방감을 느끼는 사람이 있지만 작은 창에서 안정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주택 설계가 어려운 점은 단순히 기능적 요소뿐만 아니라 그 공간에서 살아가야할 사람이 어떤 감정이 들지를 예측하고 고민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서적 교감능력이 약한 건축가(다 그런건 아니지만 극 T 보유자가 은근히 많다)들이 가끔 잘 지내던 건축주와 사이가 안좋아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넷째는 집의 동선과 움직임을 예측하는 것이다. 누구는 부엌에서 요리를 하면서도 가족과 끊임없이 대화하는 걸 좋아하고, 또 누구는 조용히 방해없이 혼자 요리를 즐기는걸 선호한다. 거주자의 사소한 습관을 잘 포착해서 적용하면 그게 바로 공간이 되는 경우가 은근히 많은데, 부엌과 거실을 오픈형으로 할지 분리할지가 여기에 달려 있다. 가까운 미래엔 어쩌면 AI가 집주인의 숨소리, 발바닥을 딛는 족압까지 분석해서 조명의 각도와 온도를 조절할지 모를일이다. 그런 행동 하나하나가 무의식과 연동되는 레퍼런스가 집에 내장된 스마트 기기에 반영할수 있다면 말이다. 2018년 한 구글 직원이 스마트 스피커에 ' 내가 외로울 때는 조명을 어둡게 해줘 ' 라고 프로그래밍한 사례를 보면 이런 미래가 멀지는 않은것 같다. 하지만 진정한 ' 무의식 반영 '은 기계가 아닌 관찰에서 시작되는게 옳을것이다. 거주자가 신발을 벗는 위치, 집에서 특별히 좋아하는 구석이나 특정 좌석, 심지어 자주 걸리는 문턱까지 분석하는게 지금 기술로도 그리 어렵지는 않을테니까. 가령, 아침마다 정신이 돌아오지 않아 세면대에 물을 틀어놓고 1분간 멍하게 있다면 아마도 당신의 집은 자체적인 절수 아이디어를 고안하거나, 정신을 차리게 하는 여러가지 조치를 고민하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공간의 기억’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기억은 어떤 특정 공간과 연결되는 경향이 있다. 단순하게 어릴 적 놀던 작은 마당이 그리운 사람은 그 마당과 비슷한 느낌의 작은 정원이나 베란다가 필요할 수 있다. 반대로 최근에 어떤 복잡하고 시끄러운 공간에서 극도의 불안 공포를 느꼈던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최대한 간결하고 조용한 분위기를 유지할 공간 구조가 필요하다. 좋은 설계란 단순히 새 집을 의뢰자가 원하는데로 짓는게 아니라 과거의 경험을 현재의 공간으로 자연스럽게 가져오는 과정에서 만들어질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나만의 집을 지으려면


집을 설계하는 과정은 원하든 원치 않든 계속되는 자기 고백의 시간이기도 하다. 부끄러워 숨길수도 있지만 좋은 집이 되기 위해 내 무의식도 꽤나 중요한걸.. 이라 느끼는 사람이라면 실은 제가... 이런 식의 살짝 애매한 사연도 건축가에게는 중요한 설계 포인트가 되는 것이다. 계단을 오를때 왼발부터 들어올리나요? 한번도 생각해본적 없겠지만 바로 알수 있는 작은 습관 하나는 집의 계단 디자인의 출발점이 된다. 현관 들어오는 코너에 그림 걸지 마시고 조금 생뚱맞은 빅토리아풍의 작은 의자 하나 어떨까요? 의자 하나도 어디에 놓이냐에 따라 누군가의 무의식 처럼 느껴진다.

양양 카루나의 마운틴 뷰 객실, 볕과 의자와 녹색의 풍경이 편안한 분위기를 만든다


가까운 미래에 자신의 집을 짓고 싶다면 남이 진열해놓은 멋진 공간을 내 것인듯 꿈꾸기보다 스스로의 무의식을 먼저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는게 어떨까 싶다. 인터넷과 SNS에 넘치는 멋진 남의 집 사진을 수백장 수천장 모으는 것도 좋지만, 나는 어떤 공간에서 가장 편안한지를 한번쯤 진지하게 관찰하는 것이 더 중요할것 같다. 아침 커피를 마실 때, 책을 읽을 때, 쉬고 싶을 때 내 마음이 자연스럽게 향하는 공간은 어디인가? 여행을 갔을 때 어떤 스타일의 숙소에서 가장 편하고 행복했는가? 단순히 후기 좋고 남들이 다 좋다하는 그런 숙소에 가면 그들처럼 마냥 좋은가, 아니면 의외로 불편함을 느낀적이 있었던가?


인생 살면서 집짓는 사람은 흔한 일이 아니다. 무의식을 조금 깊이 이해한다면 단순히 멋진 집이 아니라 진짜 '나와 닮은 집'에 좀더 가까워질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누군가의 집을 설계하다보면, 건축가란 각자 그런 집을 찾아가도록 돕는 역할을 하는 안내자라는 생각이 든다. 내 무의식도 못 읽으면서 남의 무의식을 읽고, 공간으로 표현하는 일은 어려운 만큼 보람과 의미가 있다. 거주자의 무의식을 비추는 거울 같은 존재가 좋은 집 아닐까,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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