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관
집 설계 할 때마다 유독 생각 많아지고 정성을 들이는 공간이 있다. 현관, 복도, 계단.... 등등이 그렇다. 거주자 입장에서 중요한 공간은 침실, 거실, 주방 등이 되겠지만 설계자 입장에서 보면 조금 다르다. 그렇다고 침실, 거실, 주방이 중요하지 않다는 건 물론 아니고 어떤 정형화된 기준이 있는 중요 공간들은 보편적 답안이 있어서 오히려 명료한 부분이 있다는 얘기. 그래서 침실, 거실, 주방 위주로 설계를 하다보면 나머지 아이들은 찬밥신세가 되거나 하다 공간이 남으면 적당히 채워야지, 하는 식이 되버리는데 그건 좀 곤란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한다.
예전 살던 집, 늘 어두운 현관에 대한 불길한 기억 때문인지 현관 분위기에 집착하는 편이다. 어둡지 않아야 한다... 정도가 아니라 집에서 이왕이면 가장 밝고 화사한 공간이 되면 좋겠다는 욕심이 있다. 매일 사람이든 물건이든 들어오고 나가는 관문인데 기분 좋은 현관이 되는게 나쁠 건 없지 않을까. 조명을 켜지 않으면 안되는 어두운 자리에 현관이 놓이는 건 좀 곤란하다. 등을 켜지 않아도 어느 정도 볕이 들어오는 자리가 좋은데 왠지 음산한 자리 뿐이라면 설계를 전체적으로 재고할 수 있다. 그만큼 현관은 중요하니까.
현관문 열고 막 한걸음 옮기는 순간 뭐가 처음 보이면 좋을지 생각하다가, 아무래도 나무, 풀, 자연과 마주 하는게 게중 가장 기분 좋은 환영인사라고 생각했다. 비가 내리던, 눈이 오던, 바람이 불던, 봄볕이 내려앉던, 시시각각 변하는 계절과 날씨가 온전히 살아있는 풍경은 집이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일테니.
현관에 서면 어두운 복도나 막힌 느낌이 아니라 정원과 그 뒤에 동산이 펼쳐진다. 바깥 세계에서 막 전투를 마치고 집에 들어오는 사람에게 뭔가 작은 위로가 되는 공간을 상상했다. 현관문을 열고 닫을 때 단순히 바깥에서 실내로 들어가는 느낌이 아니라 타인들의 세계에서 나의 세계로, 야생에서 은신처로... 일상 모드가 트랜스퍼 되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
풍경들
현관에서 만난 녹색 풍경은 집 전체에 걸쳐 있다. 복도와 식당, 계단, 2층 홀과 침실... 심지어 욕실에 이르기까지 집안 곳곳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 풍경의 설계자로서, 정성 들여 이 땅이 가진 좋은 환경을 풍경으로 치환하고 싶었다. 창은 집 내부에서 보면 갤러리 벽에 걸린 회화의 캔버스와 같다. 창의 위치나 크기를 어느 정도는 마음데로 계획할 수 있다. 창 밖의 환경과 실내에서 창을 바라볼 거주자의 시선에 대한 계획이 어느 정도 있다면 빛의 양, 계절, 날씨에 따라.... 보여주고 싶은 풍경들을 얼마든지 집 내부에 그림처럼 걸 수가 있다.
집안에는 많은 창이 있지만 창 몇 개는 꽤 정교하게 설계되어 바깥 풍경을 완성된 회화작품처럼 실내의 인테리어 요소로 만들고 싶었다. 비슷한 녹색 풍경이라도 농도와 분위기는 모두 다르다. 침실에서 보이는 것과 복도에서 보이는 것, 식당에서 보이는 것과 욕실에서 보이는 것들은 서로 미묘하게 다른 풍경이어야 자연스럽다.
온기준공사진 : https://naau.kr/WORK/view/49744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