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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 무언가 이야기 #2

by 최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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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는 집은 이렇습니다



설계는 의뢰인의 요구사항으로부터 시작된다. 의뢰한 사람이 어떤 건축물을 갖고 싶은지가 핵심이라는 얘기. 장인의 수공업으로 제작되는 주문 생산 제품과도 같다. 몸에 맞는 정장, 구두 하나 맞추려할때도 재료의 톤과 질감, 핏의 정도, 디자인과 스타일.... 등등이 제작의 방향이 되듯 결국 주문자의 취향과 선택이 중요한 것이다. 하물며 집이라면 더 말할 필요가 있을까.


특히 단독주택은 의뢰인의 요구사항이 설계의 전부가 되는 경우도 심심치 않다. 그럴수밖에 없는게 정장, 구두와 달리 일단 큰 돈 들어가는 일이고. 지어놓으면 최소 십년이상 좋든 싫든 살아야 하니 실수는 용납할수 없다는 다소 경직된 분위기에 빠져들기 십상이다. 하지만 각오와 현실은 조금 다른 것.. 눈 부릅뜨고 실수 없이 완벽한 집을 지어야만해, 라는 각오만으로 좋은 집이 된다면 참 좋으련만, 오히려 힘 뺄수록 좋은 집이 되는 삶의 역설은 집짓기에서도 마찬가지다.


web_DSF7842.jpg?type=w773 무언가의 전면 테라스, 열려있지만 이웃의 시선은 차단한다


헌데 역설의 의미가 잘 안통한다 해서 설계에 별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원하는 집 이미지가 확고부동하고 그런 집을 짓고 싶다는 열망이 크다는 건, 확실하게 설계 방향을 잡는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 반대로 말하면 가장 핵심 조건만 잘 해결할수 있다면 나머지 자잘한 조건들은 어느정도 절충 가능한 것일테니까. 동탄 무언가의 설계 요구조건도 그러했다. 층별, 실별 요구사항들이 꽤 있긴 했지만 설계의 기본에 관련한 것들이어서 하다보면 자연스레 해결되는 내용들이었고... 정작 중요한건 크게 네가지였다.


첫째, 추위를 많이 탑니다. 단열이 중요합니다.

둘째, 토지를 최대한 활용해서 외관이 웅장해보였으면 합니다. 성처럼 막혀있는 집도 좋습니다.

셋째, 중정이 필요합니다. 프라이빗 해야합니다.

네째, 거실과 주방은 하나의 큰 공간이 되어야 하고 가로로 긴 통창(최소폭 5미터 이상)을 원합니다.


대체로는 자주 나오는 조건들이라 특이점이 없었지만 두번째 항목에서 시선이 멈췄다. 특히 웅장하게, 성, 막혀있는... 등등은 여러 해석이 가능한 것들이다보니. 토지를 최대한 활용하자는 건 어떤 의미신지, 웅장함에도 여러가지 스타일이 있는데 혹시 생각하고 있는 스타일 있으신지, 성처럼 막힌 집이란 집이 조금 어두워도 된다는 얘기신지... 자칫 내멋데로 이해했다가는 동상이몽의 집이 되어버린다. 이럴땐 최대한 중도적 태도로 조심스레 청진기를 대보는게 좋다. 마음의 소리를 듣기 위해.


%EB%8B%A4%EC%9A%B4%EB%A1%9C%EB%93%9C.jpg?type=w773 아파트의 풍경


감춘듯 보여주는 집


외부의 시선은 막고, 내부의 시선은 열고... 마음의 소리를 들어보니 대략 결론에 도달했다. 감춘듯 보여주고, 보이기 싫지만 멋지게 보이고도 싶고, 외부에서 집이 보이는건 싫지만 집안에서는 바깥이 잘 보이는 집. 이런 집이 가능하냐, 너무 욕심인데... 라고 할수도 있지만 사실 대부분 단독주택 집주인이 원하는 집이 이런 집이다. 감출거 감추고 보여줄거만 보여주고 싶은... 집 이전에 사람 마음이 원래 다 그런것이다. 집은 사람 마음의 투영이니 어쩔수 없는 것이고.


아파트에서만 살다보니 우리 사회는 익명성에 익숙하다. 아파트에서 내 집의 물리적 경계란, 위아래 이웃집과 좌우의 이웃집으로 이해된다. 서로 끼어 있는 상태라 해야할까. 대략 20센치 이하의 얇은 콘크리트 벽으로 분리된 이웃과 나의 관계는 심리적으로는 완벽한 단절 상태다. 현관 문만 걸어 잠그면 서로 애써 아이컨택 하거나 접촉 교류할 필요는 없다는게 장점이기도 하고 아쉬운 점이기도 하다.


보통의 아파트는 남향에 침실을 줄줄이 배열하고 남북으로 창을 맞내는 구조인데, 위아래 좌우의 이웃집간 층간 또는 벽간 소음은 있을지언정 이웃집이나 내 집이나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으니 시선은 서로 차단된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해본다. 아파트의 시선 간섭이 층간 소음만큼 골칫거리였다면 아파트에 올인하는 지금의 주거 트랜드는 성공하기 힘들지 않았을까. 강남의 대장 아파트에도 층간 소음은 있다. 소음은 참을수 있어도 원치 않는 남의 시선 참는건 좀 더 어려운 일이다.


마음으론 이웃끼리 사이좋게... 더라도 실상은 적당한 거리두고 눈인사만 하면서 서로 간섭 안받는걸 원한다. 상대의 선을 넘지 않는건 내 선을 넘지 말라는 무언의 요청인것이니 단독주택도 이웃간 마당을 터서 서로 오가는 아름다운 풍경은 한낱 이상에 불과하다. 지침에는 담도 높이 쌓지 말라고 하지만 어떡하든 담으로 서로를 가리려 애쓰는게 현실이니까.



SE-68102372-c2b9-4b31-b9af-b7e58054a1c8.jpg?type=w773 스미요시 주택


그러니 ' 감춘듯 보여주는 집 ' 은 누구나 원할만한 평범한 요구조건 이다. 솔직하고 보편적이며 모순적인 순수한 내 마음의 집이랄까. 이럴때마다 생각나는 집이 있다.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1976년작 스미요시 주택이다. 말하자면 '감춘듯 보여주는 집'의 시조새 같은 주택인데 50년이 지난 지금 시선으로 봐도 받아들이기 만만치 않다. 외부로 열린 창이 하나도 없는 이 집은 그야말로 완전한 보호, 완전한 익명성을 추구한다. 프라이버시를 지키기 위해 내부의 중정으로만 창을 내었으니 집안에서 보이는건 하늘 뿐인데 일종의 자발적 감옥이라고 해도 할말 없는 집이다. 재밌는건 스미요시 주택의 건축주는 집이 완공된 후 몇년간 꽤 만족하면서 아이들과 살았다는 것. 하지만 결국 견디지 못하고 집을 떠났다고 하는데 이유는 완벽한 프라이버시 때문이었다. 창 없는 답답함과 막힌 조망, 어두운 집의 분위기를 견디지 못한 것이다.


무언가의 설계 조건을 음미하면서 가장 먼저 생각난 집은 스미요시 주택이었다. '성처럼 막혀있고 중정이 있고 프라이버시가 중요하다...' 이런 방향으로 극단적으로 가면 스미요시 주택이 있는 것인데, 반대로 가장 반대편의 말랑거리는 사례로는 어떤 집이 가능할까. 스미요시의 벽을 귤껍질 벗기듯 까놓은 집을 상상해봤다. 성 같은 웅장함이 있고 어두운 중정도 있고, 대신 밝은 테라스를 갖추고, 외부 시선은 막지만 실내에서 밖은 시원하게 내다 보이는 집?


아 다르고 어 다른 마음을 제대로 읽기 위해, 무언가 설계의 초반.. 대화는 여러번 이어졌고 마침내 막을 곳은 확실히 막고 열 곳은 확실히 여는 집, 풍부한 일조량과 시원한 조망권을 갖춘 집을 만들자는 쪽으로 설계 방향이 모아졌다. 감추고 싶은 마음과 드러내고 싶은 마음의 조화랄까... 나만의 워너비 주택을 설계한다는 건 내 마음속에 있는 그런 모순들을 다독이고 수용하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언가 준공사진 : https://naau.kr/WORK/view/5052420


B-3.jpg 감춘듯 보여주는 집, 초기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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