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정의 딜레마
주택 설계에서 중정은 언제나 매력적인 딜레마다. 무언가(無言家)도 마찬가지였다.
유명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도 한때 도쿄의 중정이 있는 모던한 주택에서 살았던적이 있다. 처음엔 조용하고 차단된 분위기가 좋아 꽤 만족하고 살다가 결국 이사를 할수 밖에 없었다는데 그가 느낀 불편함은 다음과 같다. " 중정은 아름답지만 관리는 만만치 않습니다. 바람이 불면 낙엽이 쌓이는데 비가 올땐 낙엽이 젖어 물길을 막으니 배수의 문제가 생깁니다.. 중정의 자연광은 꽤 매력적이지만 여름엔 열이 머물러 덥고 겨울엔 그늘져 늘 습한 기운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막고 가리니 프라이버시 차단은 좋았으나 그로 인한 폐쇄적인 내부 분위기는 견디기 쉽지 않네요... "
설계 초반에 먼저 체크 한 작업은 중정형 주택이 될 경우의 장단점 검토... 중정형 주택은 집의 중앙에 열린 마당이나 정원을 두고 그 주변으로 방과 실을 배치한다. 프라이버시, 환경적 측면에서는 장점이 있고 그의 반작용으로서의 단점도 확실하다.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벽으로 완전히 막힌 극단적 중정의 스미요시 주택을 만든 과정도 아마 이런 장단점 사이에서의 갈등이었을 터인데.
장점은 프라이버시 보호다. 밖에서 보면 벽으로 둘러쌓인 집이라 외부와 완전히 차단된 구조를 만들수 있다. 이웃과 행인들이 내 집 안을 들여다보기 어렵다는 얘기. 집 외부의 소음도 거의 차단시킬수 있다. 해서 만약 프라이버시에 목숨 거는 집주인이라면 정말 심각하게 스미요시 주택같은 극단적 집도 고민해볼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의외로 중정을 남북 길이방향으로 적절히 길게 만들면 햇볕도 흡족하지는 않지만 꽤 잘 들어오게 할수 있다. 물론 중정을 활용한 실내공간의 자연 환기도 가능하고... 중정을 조경공간이나 마당으로 잘 사용하면 그야말로 남 시선 신경안쓰고 외부 환경을 내 가족끼리 온전히 즐길수 있게 된다.
하지만 단점도 만만치 않다. 일단 공사비가 늘어난다. 가운데 마당을 만들고 밖으로 크게 둘러치는 형태라서 외벽면적이 증가하는데, 집 표면적이 크다는건 나중에 유지관리 할 면적도 커진다는 얘기이므로 공사비와 유지관리비 부담은 높아진다. 생활 속의 자잘한 문제도 있는데 중정이 열려 있으니 비, 눈, 낙엽 등이 들어오면 청소나 관리가 번거로울 수 있다. 청소를 해도 건물 밖으로 보낼 동선 확보가 애매하다. 추운날, 더운날, 날씨가 안좋을 때는 중정 활용이 제한된다. 사실상 중정을 잘 쓸수 있는 날이 그리 많지 않다는 얘기. 여기까지가 대략 일반적으로 생각해볼수 있는 장단점이 아닐까 싶은데,
실상 집을 설계하는 입장에서 중정형 주택의 가장 곤란한 점은 따로 있다. 부족한 일조량과 막힌 조망... 막고 가린 만큼 나도 밖을 시원하게 내다보기 쉽지 않고 햇볕도 가려져 덜 들어오는건, 당연한 일이긴 하지만 참고 살아볼까 한다면... 쉬운 일은 아니다.
설계 초반, 중정형 주택으로 검토하면서 장단점을 따져보는데 처음엔 중정형이 좋다던 클라이언트도 점점 회의적이 되었다. 특히 여름엔 높은 고도에서 중정으로 내려꽂히는 불볕으로 막힌 중정의 열기가 더 강해진다는 사실, 반대로 겨울엔 낮은 고도의 볕이 내 건물에 가려 중정은 늘 그늘이 진다는 사실...을 확인한 후 여름, 겨울의 태양의 움직임이 우리가 원하는 바는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상이 클라이언트의 워너비 요구조건인 ' 성처럼 막혀있고 중정이 있고 프라이버시가 중요하다...' 를 실현하기 위해 중정형 주택은 답이 아니라고 결론을 내린 이유다. 외부의 시선 차단, 프라이버시 보장하면서 태양과 조망은 내가 원하는데로 조절할수 있는 집을 만들려면 계단형 테라스 방식으로 집을 만드는게 최선이었다.
무언가 준공사진 : https://naau.kr/WORK/view/50524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