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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 무언가 이야기 #4

by 최소장


SE-145becf3-8bc6-464b-8c55-1b613c509e1c.jpg?type=w773 일반적인 고급주택 이미지는 대충 이런 느낌이 아닐까


고급주택


고급 주택의 기준은 뭘까. 비싼 집? 큰 집?... 기준은 분명치 않다. 비싸다는 것도 좋은 자재와 비싼 공법으로 지었다는 건지, 집은 허름해도 집의 시세가 비싸다는 건지 다르고, 크다는 것 역시 집 실제 규모가 크다는건지 크게 느껴지는 시야와 큰 공간들이 있다는건지 따라 다르다. 사람마다 '고급'을 판단하는 기준이 다르다는 것이다. 단독주택 짓고 싶어하는 클라이언트와 대화를 나누다보면 고급스러움에 대한 바램은 사람마다 제각각. 좋은 집 지어주세요, 라는 말에는 각자 생각하는 고급스러움에 대한 기대가 있다는 얘기.


펜트하우스 아파트 광고를 보다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고급 주택의 이미지는 넓은 거실, 테라스, 조망권이구나 생각했다. 주택은 해가 드는 남향으로 창을 낼수 있는 벽이 길면 길수록 거실, 테라스, 조망, 채광의 환경이 좋아진다. 좋은 방향으로 큰 공간을 만들고 큰 창과 큰 테라스를 만들수 있냐에 따라 '고급'의 이미지를 실현할 가능성도 커지는 것. 결국 ‘삶의 질’에 대한 욕망 이랄까. 넓직한 거실은 경제적 성공과 권위의 인정처럼 여겨지고, 큰 테라스는 외부를 내 것처럼 소유하려는 욕구, 조망권은 복잡한 도시에서 넓은 시야를 확보하려는 일종의 본능과 관련있다.


%EA%B8%B0%EC%83%9D%EC%B6%A9.jpg?type=w773 기생충 박사장집의 넓은 거실과 큰 창, 잔디마당.. 부자집의 전형적 이미지다



영화 <기생충>을 예로 들면, 대비되는 두개의 공간을 통해 현대 사회에서 통용되는 부자의 집과 빈자의 집에 대한 극단적 이미지를 보게 된다. 박사장 집의 넓은 거실은 기둥, 벽이 없는 완전한 오픈플로어 공간으로 큰 창을 통해 마당을 시각적으로 연결시켜 더 큰 공간처럼 느껴지게 한다. 반면 기택의 반지하 집은 정화조 보다 더 낮은 집이다 보니 배관 레벨 맞추기 위해 바닥이 위로 올려진 화장실이 인상적인데, 가뜩이나 작은 공간을 방, 화장실, 복도로 벽을 촘촘히 세워 개미 동굴처럼 좁고 어둡다. 감독은 집을 통해 관객에게 두 가족의 현실을 이야기한다. 카메라가 두 집의 공간을 대사나 연기 없이 훑어주는 것만으로도, 관객은 집의 구조와 거주 환경의 차이를 통해 빈부 격차와 욕망의 정도를 느끼게 된다.


%EB%8B%A4%EC%9A%B4%EB%A1%9C%EB%93%9C_(1).jpg?type=w773 영화 기생충, 기택의 집


집의 심리학


무언가(無言家)의 공간설계 중 핵심은 거실, 키친을 하나의 큰 공간으로 만든 것이었다. 클라이언트의 요구 사항이었는데, 침실은 잠 자는 목적으로 굳이 좋은 자리에 놓을 필요가 없다. 대신 거실과 키친은 가족이 늘 모이는 중심이므로 최대한 밝고 넓고 시원한 큰 공간이어야 한다는 것. 거실과 키친을 더 밝고 넓고 시원하게 만들기 위해 같은 크기의 텅빈 테라스를 횡으로 붙이고 담을 올려 낮은 풍경은 지우고 하늘, 산자락같은 멀고 큰 풍경만 보이게했다. 실내와 바깥, 동일한 크기의 두 공간이 데칼코마니처럼 병치되어 시각적 확장을 거실에서 테라스, 테라스에서 먼 풍경으로 이어지게 만들면 훨씬 더 큰 집 처럼 느껴진다.


그간 주택 설계를 하면서 다양한 클라이언트를 만났는데 넓은 실내 공간에 대한 욕망은 보편적으로 비슷했다. 물론 거실과 키친이 기능적으로 나눠지는 집을 원하는 경우도 있고, 거실이 필요없어 다른 공간에 중점을 두는 집도 있긴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집 규모가 작든 크든 어느 한 공간은 넓고 시원한 공간을 만들려고 생각하는 편이다.

SE-28cee3a9-6415-4054-b11e-773b745fb609.jpg?type=w773 무언가의 거실, 단독주택이지만 펜트하우스의 조망과 분위기를 만들고 싶었다


집 안의 넓은 공간은 해방감과 묘한 자존감을 느끼게한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개방된 공간을 좋아한다. 아마 오래된 생존 본능과 관련 있을것이다. 좁고 어두운 공간 보다는 넓고 밝은 공간일수록 외부의 위험에 대비하기가 쉽기 때문에.. 굳이 진화심리학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트인 공간에서는 불안과 스트레스가 줄어든다. 넓은 거실, 키친과 테라스, 그 너머로 보이는 확 트인 하늘과 자연이... 집이 갖고 있는 모든 심리적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하겠지만 좁고 협소한 공간으로만 만든 집은 좀 곤란하다는 얘기다.


정답은 없겠지만 좁고 아늑한 공간, 넓고 확트인 공간이 적절히 조화된 집이 좋은 집이라는 생각이다. 넓고 높고 큰 공간만으로 지은 집도 뭔가 불안하고 이상하기는 마찬가지다. 좋은 집은 심리적으로 다양한 감각을 만족시키는 공간으로 조합되어야 한다. 실내와 외부, 좁은 공간과 넓은 공간, 낮은 공간과 높은 공간, 혼자있는 공간과 함께있는 공간.... 단독주택을 설계하다 보면 60평 남짓한 집 안에서 공간을 선택하는 심리적 가짓수는 생각보다 꽤 많이 나온다.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면, 내가 원할때 원하는 공간을 누릴수 있는 집이라면 그게 '고급' 주택 아닐까. 우리가 집을 짓고 싶은 이유도 ' 더 나은 삶 '을 위한 기본적인 본능과 연결된다. 거주자에게 어떤 기분좋은 감각과 의미를 줄 수 있는지 고민의 흔적이 느껴지는 집이 좋은 집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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