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너십
건축에서 오너십은 누구의 것일까. 간단하게 생각하면 땅을 소유하고, 설계를 의뢰한 클라이언트의 것이지만 설계 과정으로 한정하면 오너십이란 때때로 건축가의 것이기도 하다. 오너십의 본질은 단순한 소유권이 아니라 일에 대한 판단력과 리스크에 대한 책임 문제이기도 하니까.
건축가 입장에서 설계의 오너십이란 양날의 검 같은 것인데, 건축가인 내가 일을 주도하지 않고 클라이언트에게 주도권을 슬쩍 넘겨줘버리면 책임에 대해 좀 자유롭지 않을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태도는 선택과 책임은 피해보자는 리스크 회피 차원에서는 좋겠지만, 과연 일에도 최선일까 생각해보면 갸우뚱해지는 부분이 있다. 반면에 클라이언트가 없다면 시작할 수 없는 일이 건축이므로 일단 내게 맡긴 이상, 이 일은 내 일이다.. 라는 적극적 태도로 임할 수도 있다. 다만 이게 되려면 클라이언트의 공감과 동의가 일정 부분 받쳐줘야 한다.
어느 쪽이 일에 좋을지는 역시나 클라이언트의 판단일텐데, 옳은 판단을 유도할 수 있게 판단 근거와 기준을 제시하는 것 역시 건축가의 몫이다. 빌라 파티오는 그런 부분에서 순조로운 프로젝트였다. 건축가로서는 초반 설계의 스텝을 밟다가 일의 컨셉과 클라이언트의 스타일이 파악되면, 설계의 중요한 선택과 결정이 필요한 시점에서 적극적으로 의견을 제안할 있다. 여기서 클라이언트와 호흡이 맞는다면 암묵적으로 설계상의 테크니컬한 판단은 건축가에게 전적으로 맡겨질 수도 있다.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건축가는 설계의 주도권을 갖고 좀 더 내 일처럼 프로젝트를 끌고 나가게 된다.
주택 설계는 특성상 전체를 한눈에 조망하는 지휘자가 필요한 작업이다. 클라이언트 입장에서야 내가 돈을 쓰고, 내 땅에 내 집을 짓는데 중요한 판단을 남에게 맡긴다는게 위험하지 않나... 반대 급부의 리스크를 염려할수도 있다. 하지만 건축은 나름 어려운 전문 분야라서 클라이언트 혼자 마음 내키는데로 하는 건 쉽지 않다. 그래서 전문가가 필요했고, 내게 맞는 건축가를 찾았고 설계를 의뢰했던 것. 나 대신 이 일을 더 잘 할 누군가를 찾아 맡겨도 되는 사람이라는 판단을 했다는 의미다. 만약 그렇지 않은데 설계를 맡기는 경우 라면... 사실 그런 케이스도 흔한것 같으니 나름데로는 클라이언트의 복잡한 심사가 대략 짐작은 되지만, 나로서는 그런 집 설계의 오너십은 어떤 형태여야 할지 가늠은 잘 되지 않는다.
모든 일에는 오너가 있다. 오너는 돈, 시간을 가장 많이 투자하고 일이 잘되면 가장 큰 이익을 얻고 일이 잘못되면 가장 큰 책임을 진다. 하지만 오너는 돈으로 오너십을 일부 나눌 수 도 있다. 믿고 맡길만한 누군가의 시간과 노력을 사서 그에게 설계의 오너십을 나누어 주는 것이다. 난 현명한 건축 클라이언트들이 마음에 드는 건축가를 찾아 일을 맡기는 과정을 이런 관점으로 본다. 나 대신 더 고민하고 더 시간을 쓰고 더 정성을 쏟아줄 사람, 일이 잘되면 성취감과 명예와 작품을 얻게 되어 함께 기뻐해 줄 사람... 이런 건축가를 찾고 싶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