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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 빌라파티오 이야기 #4

by 최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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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고 넓고 깊은 집

2층으로 단순한 박스 형태의 집을 지을 것인지, 단층으로 낮고 넓고 깊은 집을 지을 것인지의 선택은 사실 대부분의 주택 설계에서 한번쯤 고민해보는 이슈다. 표면적으로는 공사비 이슈라도 따지다보면 결국 공간과 형태의 이슈로 넘어간다. 외벽 표면적 기준의 공사비 비교에서 이 둘 간의 차이는 없었지만 공간, 형태는 큰 차이가 있었다. 건축가 입장에선 이미 선택이 끝났지만 둘은 어떤 차이가 있고 무엇이 압도적으로 좋은 선택인지... 설명해야한다. 설계를 맡긴 클라이언트의 확실한 공감과 동의가 있어야 설계의 동력이 생긴다.


CG(컴퓨터그래픽)가 없던 시절에도 건축가들은 클라이언트에게 자신의 아이디어를 공감받기 위해 노력했다. 영화 <브루탈리스트>에서 건축가 라즐로 토스는 스폰서이자 클라이언트인 사업가 해리슨을 설득하기 위해 커다란 모형을 만든다. 긴장된 표정으로 진지한 프리젠테이션을 하는 장면에서 옆에 놓인 모형의 존재감은 건축가의 애매모호한 언어의 빈틈을 메워주는 든든한 지원군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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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설계는 평면과 입체를 오가는 작업이다. 2차원의 평면도는 공간을 질서 있게 정리해주고 실제적인 치수를 부여한다. CG는 2차원 치수를 사실적 3차원 공간으로 만든 가상의 이미지다. 스케치는 CG 로는 표현이 안되는 온기와 감성을 담는다. 그렇다면 모형의 의미는 뭘까. CG, 도면, 스케치가 있음에도 여전히 모형은 필요할까.


모형은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유일한 설계 도구다. 도면, CG, 스케치는 공간을 설명하지만 그것이 실제로 어떤 크기와 깊이를 가지는지 체감하기는 어렵다. 특히 건축 비(非)전공자들에게 도면은 해독이 필요한 외국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요즘은 도면을 잘 읽어내는 분도 많긴 하지만, 건축가 입장에서도 도면만으로는 여전히 확신하기 어려운, 손에 잡히지 않는 부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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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형



이런 부분을 모형은 직관적으로 해결한다. 마치 장난감 집을 보듯 직접 눈높이를 바꿔가며 건물의 안팎, 공간의 구조를 한눈에 들여다볼 수 있다. 게다가 직접 만질 수도 있다. 촉각으로 전해지는 집의 물질감은 인상이 강하게 남는다. 모형이 유일하게 ‘ 공간을 체화하는 도구 ’가 되는 이유다. CG로는 한 번에 볼 수 없는 여러 각도의 장면을 모형에선 자유롭게 볼 수 있고, 손끝으로 질감과 형태를 느끼면서 공간과 형태의 실체를 몸으로 체득할 수 있다.


8개의 배치 패턴 중 K씨 부부가 선택한 대안은 단층 ㄷ자 중정형이었다. 8개 덩어리 중 가장 낮고 넓고 깊은 공간을 가진 집. 거실과 주방을 축으로 전면은 외부로 열리는 테라스가 담으로 구획되고 후면은 실내중정을 깊게 두고 중정 좌우에 아이들 방과 부부 방이 서로 마주보게 두었다. 전면 테라스는 거실, 주방에서 연결되는 열린 외부공간이고 후면 중정은 침실과 복도에서만 연결되는 숨은 외부공간으로 바깥에선 보이지 않는다.


1층 평면도와 지붕이 열리는 모형 하나면 이 집의 모든 부분을 자세히 설명할 수 있다. 도면과 모형은 서로 다른 시점으로 집을 설명한다. 빌라 파티오의 1층 평면도는 이 집을 구조적으로 파악하며 공간 간의 관계, 동선, 기능이 어떻게 연결 되는지 알게 해준다. 마치 우리가 책을 읽어나가듯 도면을 읽으면 논리적으로 집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반면 모형은 도면이 설명하기 어려운 것들을 한눈에 보여준다. 공간의 높낮이, 볼륨감, 길이와 깊이, 실제 집이 지어진 후의 실생활 풍경 등등.


모든 집은 도면 위의 선으로 표현되지만, 그것이 실제로 어떤 분위기를 갖고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킬지는 쉽게 상상하기 어렵다. 하지만 모형은 조명을 비춰보면 창을 통해 빛이 어떻게 들어오는지 확인 할 수 있고, 손으로 가리면서 음영을 체크할 수도 있다. 작은 사람을 모형 속에 넣으면 사람이 공간에서 어떻게 보일지, 어떻게 움직일지도 상상이 된다. 도면과 모형은 서로를 보완하는 관계다. 도면이 집의 뼈대라면 모형은 감각과 경험을 전달하는 살과 같다. 도면은 머리로 읽고 모형은 가슴으로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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