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의 창고
깊은 곳을 향해 가라, 네 자신의 지하실로 내려가라. 니체의 말이다. 인간은 자신의 지하실(무의식)에 내려가야만 진정한 자아를 발견할 수 있다는 의미. 비슷한 말을 프로이트도 했다. 프로이트는 인간 정신구조를 지하실(무의식)-1층(전의식)-2층(의식)... 으로 비유했다. 그는 지하실(무의식)에 억눌린 꿈과 기억이 숨어있으며, 이 곳을 탐구하는 것이 정신분석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이렇듯 지하실은 단순한 공간적 의미를 넘어 무의식, 자아를 상징하는 의미로 자주 쓰인다.
주택의 지하실은 그런 의미에서 ‘자아의 창고’다. 지하실에 대한 로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지하실이 자신의 사적인 것들(꿈과 기억)을 담는 공간이 될수 있다고 믿는다. 꿈은 미래, 기억은 과거다. 그래서 그들이 만드는 지하실은 현재를 잊기 위한 장소가 된다. 현재를 잊고 과거, 미래를 보듬는 공간.... 그들의 지하실은 지나간 과거와 불확실한 미래, 그 중간 어딘가에 있다.
모노의 클라이언트 사진작가 K씨는 적극적인 지하 공간을 원했다. 마침 도로와 땅 높이차가 크게 나는 필지였다. 쾌적한 지하실을 만들기 위해 이런 땅을 샀을 것이었다. 북측은 도로에 접하고 3미터가 낮다. 도로 측에서 보면 이 집의 지하공간은 1층처럼 보인다. 반대편 남측은 주변 공원의 산자락이 이어지는 땅이다. 도로보다 3미터가 높다. 남측 지하는 땅속에 묻혀 있다.
단독주택의 지하층은 신중하게 판단하는 편이다. 꼭 지하공간이 필요한 경우라면 적극적으로 검토하지만 없어도 되는 집은 일부러 지하를 권하지 않는다. 특히 고저차가 없는 평평한 땅인 경우는 온전히 땅 속에 묻힌 완전한 지하 공간이 되어야 한다. 터파기 및 지하층 공사시 비용 증가, 방수 위험과 배수를 위한 강제 설비 필요성, 불리한 환기... 등등의 검토가 필수다. 집의 내구성과 유지 관리 차원에서 지하는 확실히 부담스러운 이슈이므로 사용 목적이 애매하다면 없는 편이 낫다.
다만 모노처럼 고저차가 있는 땅은 다르다. 대지의 어느 한쪽이 도로에 접해서 완전히 개방된 지하라면 자연스러운 진출입이 가능하므로 1층 느낌의 쾌적한 지하 공간을 만들 수 있다. 터파기, 방수와 배수, 환기...를 고려할 때 일반적으로 완전히 묻힌 지하공사와 비교시 비용적으로 유리하고 공사도 수월한 편이다.
K씨가 원하는 지하공간의 내용은 이러했다. 자동차 3대가 들어가는 차고와 여러 대의 자전거를 보관하면서 수리 할수 있는 공간, 20평 이상의 다목적 공간, 자연 환기와 자연 채광이 가능한 선큰... K씨는 다양한 취미를 가진 사람이었다. 사진, 자전거, 자동차, 목공, 레트로 전자기기, 음악....등등. 그에게 모노의 지하실은 창조와 사색, 내면의 휴식을 위한 자아의 창고가 되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