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가는 길
주택의 지하실은 거실, 침실 같은 실내 공간들과 다르다. 실내 계단을 통해 지하실과 위층을 연결해서 실내에서 편하게 드나들게 할 건지, 현관 바깥에서 따로 진입하게 할 것인지는 중요한 문제였다. 모노의 지하공간은 K씨를 위한 분리된 독립 공간이 되는 게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집의 실내 계단을 지하공간에 바로 연결하면 동선은 간단하겠지만 거실, 침실과 구분 없이 연장된 하나의 공간처럼 느껴진다.
K씨의 지하공간은 완결적, 확정적 공간이 될 필요가 없고 거주를 위한 배려가 필요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거주와 상관없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조금 덜 만들어진 미완성의 날 것 같은 느낌이어야 했다. 이런 공간엔 불분명함과 노곤함, 자유로움이 있다. 때때로 지하실이 우리의 로망이 되는 이유는 이런 느슨함 때문이다. 혼자 몰래 허황된 꿈을 다독거리거나, 과거의 유물을 들춰보거나, 지친 감정을 쉬게 해줄... 여백이 우리에겐 필요하다.
차 3대가 여유 있게 들어가는 차고와 K씨의 목공 취미를 위한 공간(거의 목공소 수준의 장비를 갖고 있었다)을 크게 두었고 먼지 많은 목공실의 환기와 채광을 위한 선큰을 곁에 두었다. 지하실을 실내 공간 내에서는 연결하지 않기로 했으므로, 집안으로 들어가는 현관이 굳이 지하에 있을 필요가 없었다.
북측 도로에 접한 외부 철문은 지하층에 있다. 외부 철문을 들어오게 되면 지하 산책로를 따라 대지 위의 마당으로 연결된 선큰에 이르고, 계단을 올라 마당을 지난 후 건물의 주 현관문을 통해 실내로 진입하는 동선이다. 땅의 높이차를 활용한 긴 동선으로 집의 바깥과 실내 사이에 조금 긴 전이 공간을 두고 싶었다. 집을 드나들 때마다 그 길을 걸으며 소소한 산책처럼 느껴지면 좋겠다는 상상을 했다.
일반적인 집들과 비교하면 다소 진입 동선이 길다는 느낌이 없지는 않았다. 다만 외부 철문과 본채 현관 사이의 과정을 단순히 시간 낭비라고 봐야 하는지는 같이 생각해볼만한 이슈였다. 바깥과 집의 실내가 현관문, 대문 하나로 나누어진 얇은 경계보다 걸음을 걸어야하고 시간도 좀 걸리는 의도적으로 계획된 ‘ 집으로 들어가는 길 ’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라는 의견을 K씨 부부에게 전했다.
바깥과 실내가 5센치 두께의 현관문 하나로 구분지어지는 아파트에서는 만들 수 없는 공간이다. 집으로 들어가는 길.. 의 의미는 바깥세계와 집 사이에 존재하는 공간, 집안과 집밖을 연결해주는 매개 공간을 말한다. 단독주택은 내 땅이 있으므로 의지만 있다면 이런 공간을 만들 수 있다.
K씨 부부는 최대한 두껍고 풍요롭게 늘려서 ‘ 집으로 들어가는 길 ‘을 만들자는 의견을 공감해주었다. 나는 이 길을 단계적인 영화적 시퀀스로 생각해봤다. ’ 어두운 북측 도로에서 철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선다. 철문을 열고 들어서자 높은 천정의 터널 같은 외부 복도가 시작되고 스무 걸음 앞에 햇볕이 환하게 들어오는 선큰이 있다. 선큰 위로는 파란 하늘에 옅은 구름이 지나간다. 바람도 솔솔 불어온다. 지하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계단을 통해 땅 위로 오른다. 집의 본채와 남쪽의 울창한 숲, 마당이 눈앞에 펼쳐진다.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집의 현관문으로 다가간다....‘ 시퀀스의 변화는 공간의 뎁스를 두껍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