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면 감성
백색의 벽지나 페인트로 마무리한 공간에서는 감각이 부유하듯 부드럽게 흩어진다. 나무로 마감된 방에서는 따뜻한 촉감이 시각으로 전해진다. 그렇다면 거칠고 차가운 노출 콘크리트가 공간을 감성적으로 만들 수 있을까? 흔히 콘크리트는 산업적이고 기계적인 이미지로 여겨지지만, 실내와 실외에서 이를 감성적으로 활용하는 방식은 의외로 섬세하다. 결국 중요한 것은 물성과 재질감, 빛과 그림자, 그리고 그것이 공간 속에서 사람의 감각에 어떻게 작용하는가에 있다.
노출 콘크리트는 숨길수 없는 재료다. 재료를 감추지 않고 그대로 보여주는 것은 일종의 정직한 선언이다. 하지만 감성을 불어넣기 위해서는 그 거친 표면을 어떻게 다루느냐가 중요하다. 촉각적인 경험을 고려한 콘크리트는 단순히 거칠거나 매끄러운 것을 넘어, 인간의 손길을 담은 듯한 미세한 질감과 패턴을 가질 수 있다. 예를 들어, 거푸집의 나뭇결을 의도적으로 남겨 따뜻한 흔적을 만들거나, 세월이 지나면서 표면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물자국과 변색까지 디자인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태도가 필요하다.
빛과 그림자 조합은 콘크리트에 감성을 더하는 핵심 요소다. 매끈한 표면보다는 미세한 굴곡과 기공이 있는 표면에서 빛은 더욱 풍부한 표정을 만든다. 아침에는 부드럽게 스며들고, 오후에는 선명한 그림자를 드리우며, 저녁에는 서서히 사라지는 빛의 흐름을 따라 공간의 감성이 변한다. 실내에서는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이 콘크리트 표면에 부딪히며 하루의 흐름을 드러내고, 실외에서는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그림자가 벽을 캔버스처럼 만든다.
제대로 사용하려면 기술적 고민이 필요하다. 콘크리트 타설 과정에서 기포를 줄이기 위한 방법, 거푸집의 재질과 배치, 양생 과정에서의 온도와 습도 조절 등이다. 표면을 완전히 매끄럽게 만들 수도 있고, 일부러 거친 마감을 남겨 강한 표정을 강조할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이 공간 속에서 어떻게 감각적으로 다가오는지에 대한 고민이다.
재료와의 대화
콘크리트는 거칠고 잔혹한 재료다. 냉정한 회색, 거친 표면, 무게로 누르는 존재감. 그러나 이 재료를 다루는 건축가의 손끝에서 콘크리트는 시적 변주를 시작한다. 노출 콘크리트는 구조의 실체를 드러내는 동시에, 공간에 정서적 깊이를 부여하는 매개체가 된다. 노출 콘크리트에는 건축가의 야심과 의도, 시간, 흔적, 빛과 그림자의 리듬이 응축되어 있다.
노출 콘크리트에 감성을 넣으려면 먼저 이 재료의 ‘정직함’을 이해해야 한다. 콘크리트는 완벽함을 거부한다. 거푸집을 뜯어낸 순간 틀 사이로 스며든 시멘트의 얼룩, 기포가 남긴 작은 구멍들.... 여러가지 불완전함들이 그걸 만든 인간의 한계를 보여준다. 스위스 건축가 페터 춤토르는 이를 ‘ 재료와의 대화 ’라 표현했다. 그의 대표작중 하나인 <세인트 베네딕트 채플>에서 콘크리트 벽면은 마치 지층의 단면처럼 층층이 쌓인 나무 거푸집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이는 콘크리트를 다루는 것이 단순한 시공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본연의 불완전함을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키려는 건축가의 태도가 중요하다는걸 보여준다.
빛
콘크리트 감성은 빛에 의해 완결된다. 콘크리트와 빛, 둘은 공생관계다. 일본 건축가 안도 타다오는 콘크리트를 단순한 구조재가 아니라, 공간의 감정을 형성하는 요소로 활용했다. 그에게 콘크리트 벽은 빛과 그림자의 변화를 받아들이며 시간이 흐를수록 깊이를 더하는 정서적 도구다. 표면의 미세한 흠집들은 시간의 흔적으로 남고 매끈하면서도 촉감은 단순한 구조벽을 감성적 캔버스로 변모시킨다. 그는 <빛의 교회>에서 좁은 십자형 틈새로 유입된 빛이 콘크리트 벽에 그림자를 드리우는 순간을 포착했다. 설계한 여러 주택에서도 이 원리는 동일하다. <고시노 주택>에서는 햇빛 각도에 따라 달라지는 빛과 그림자를 연출하고, 뽀얗게 연마된 표면을 통해 빛의 리듬을 미세하게 포착한다. 기술적 정밀도 없이는 이런 연출은 불가능하다. 거푸집의 각도, 콘크리트의 배합 비율, 마감 처리 등등 디테일과 빛이 만나는 순간을 계산해야 한다.
풍화
노출된 콘크리트는 시간에 민감하다. 비가 오면 어두워지고 햇볕에 마르면 밝은 회색이 된다. 계절에 따라 이끼가 스며들기도 하고, 금이 가며 노화의 흔적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런 변형은 결함이 아니라 재료의 생명력이다. 일례로 건축가 조성룡이 작업한 신갈의 <지앤아트스페이스>는 15년간 노출 콘크리트 외벽이 주변 자연환경과 점차 동화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마치 건물이 땅 속에서 자연스럽게 자라난 듯 한 인상이랄까. 표면의 ‘풍화’를 예측하고 디자인에 반영하는 솜씨 좋은 장인의 맛을 느낄수 있다.
질감
콘크리트의 표면은 다양한 이야기를 품을 수 있다. 건축가 헤르조그&드뫼롱은 <런던 테이트모던 확장관>설계에서 노출 콘크리트의 다양한 표면질감을 활용한 공간을 구현했다. 콘크리트를 갈아내고 섬세하게 연마해 도자기 같은 매끈한 표면, 반대로 의도적인 거친 텍스처로 산업적 강렬함을 강조하는 표면, 원래 있던 건물의 벽돌패턴을 콘크리트에 대입하여 반복적인 패턴을 형성하는 표면...등등. 표면의 변화로 각 공간 마다의 성격을 정의하는 방식이다.
노출 콘크리트는 완벽하게 만들어지는 재료가 아니라 작업자의 손맛, 날씨, 빛, 시간에 변화하는 살아있는 재료다. 콘크리트는 우리에게 불완전함 속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라고 속삭인다. 안도 타다오는 콘크리트를 ‘빛을 위한 캔버스’ 라고 했다. 캔버스 위에 그려지는 그림자는 하루의 시간을, 얼룩과 탈색은 세월의 흐름을 기록한다. 단독 주택 전체를 노출 콘크리트로 만드는 건 간단한 문제가 아니지만, 콘크리트를 적절히 사용하는 방식은 비용적으로 장점이 있고 특유의 감성을 느낄 수 있는 질감의 즐거움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