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도하지 않은 디자인
공간이 저렇게 디자인된 의도는 뭘까요, 라고 누가 물을 때 실은 의도하지 않은 디자인이었어요. 라고 답한다면 좀 이상하게 들릴까? 내 경우엔 왜 저런 디자인을 했지 라고 설계가 끝난 다음, 혹은 집이 다 지어진 다음 스스로에게 궁금해지는 경우도 가끔 있다. 다른 건축가들은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내가 어떤 디자인을 일부러 의도한건가, 생각해보면 간단히 답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그저 내게 던져진 설계의 조건에 따라, 건축주가 바라는 조건들을 최대한 감안해서 성실하게 설계를 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반면 나와는 달리 디자인의 스타일이 굉장히 확고해서 건물만 봐도 아, 이건 누가 했겠구나, 싶은 건축가들도 많다. 내 입장에선 그런 이들의 작품을 보면 표적을 좁혀 파고드는 일관성과 건축에 대한 강렬한 집념을 느낄 수 있다. 가령 노출콘크리트 건축하면 떠오르는 일본의 안도 다다오(문막 산뮤지엄, 제주 본태미술관)나 붉은벽돌 하면 생각나는 마리오 보타(강남 교보타워, 남양 성모성지) ... 같은 건축가들. 물론 국내에도 이런 집념의 건축을 추구하는 건축가들이 많다.
사실 건축가로서 프로젝트마다 본인이 만들고 싶은 특정한 스타일에 지속적으로 천착하는 기회를 갖는다는 건 그 자체로 역량에 대한 인정이다. 클라이언트의 신뢰가 돈독하다면 건축가로서는 더할 나위가 없다. 하지만 모든 건축가가 일관성과 집념으로 건축을 대하지는 않는다. 어떤 관점과 주제의식을 갖고 건축을 하는가의 문제는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건축을 위해 건축가는 상황에 따라 다양한 애티튜드를 취할 수 있다. 결국 건축을 대하는 태도의 문제인 것이다.
파사드
매스(mass)는 건물의 덩어리감을 의미한다. 쉽게 말해 우리가 건축물을 하나의 형상으로 봤을 때 그게 가벼운 느낌인지, 무겁고 단단한 느낌인지, 단순한 정육면체인지, 복잡한 조형인지, 얇은 느낌인지 두꺼운 느낌인지.. 그 바라봄의 대상이 되는 것이 매스다.
하지만 어떤 건축은 매스 보다는 면으로 인식된다. 모노 주택은 도로에 접한 동네에서 이웃 집들과 어깨를 맞대고 서 있다. 이 동네에서는 집들이 서로 가깝게 붙어 있어, 집 하나하나가 독립된 덩어리로 보이기보다는 하나의 얇은 면으로 인식된다. 그런 점에서 ‘파사드’ 라는 개념은 모노를 정의하는 중요한 키워드가 되었다. 파사드는 단순히 벽이 아니라, 건물의 성격을 드러내는 얼굴이자,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반영하는 거울이기 때문이다.
파사드는 쉽게 말해 ‘집의 얼굴’이다. 집의 외관, 특히 정면을 가리키는 말로, 프랑스어 façade에서 유래했다. 마치 사람의 표정처럼, 건물의 첫인상과 분위기를 결정짓는다. 하지만 파사드는 단순한 겉모습은 아니다. 건축가에게 파사드는 집의 기능과 미학, 아이덴티티를 드러내는 중요한 개념이다.
파사드의 역사를 살펴보면, 이는 단순히 건물의 외관을 꾸미는 것을 넘어, 사회적, 문화적 의미를 담아내는 역할을 해왔다. 르네상스 시대의 궁전들은 화려한 파사드를 통해 권력을 상징했고, 그런 파사드의 의미는 현대 건축에서도 여전히 이어지면서 거대한 공공시설부터 작은 주택까지 다양하게 적용되고 있다.
나는 모노의 입면을 세 개의 층으로 나누었다. 가장 아래, 즉 하단부는 골 패턴이 새겨진 노출 콘크리트다. 땅과 직접 맞닿고, 도시의 거친 흐름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콘크리트의 거칠고 무거운 질감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지하 주차장이라는 역할에 맞는 재료이긴 하지만, 도로에서 바라볼 때 이 집이 가벼워 보이지 않도록 하는 시각적 무게의 이미지였다.
그 위 중단부는 집의 1층인데, 지하층 콘크리트 수직 패턴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이어주는 긴 타일을 세로로 붙였다. 재료는 다르지만, 패턴을 통해 시각적 연속성을 유지하며 수직성이 강조된 파사드를 만들고자 했다. 이 리듬감 덕분에 입면이 단조롭지 않으면서도 절제된 긴장감을 유지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상단부. 하얀색 스터코로 마감한 이 부분은 낮의 햇살과 밤의 조명을 받으며 주변 풍경 속에서 가장 또렷하게 자신을 드러낸다. 그리고 한가운데, 큼직하게 돌출된 창. 이 창은 단순한 개구부가 아니라, 집의 ‘표정’ 같은 역할을 한다. 우리가 사람을 기억할 때 얼굴의 특정한 인상을 떠올리듯, 이 집 역시 이 창 덕분에 독특한 실루엣을 가진다.
세 부분으로 나뉜 파사드는 단조롭지 않으면서도 전체적으로 정돈된 이미지를 제공한다. 각 부분이 독립적으로 기능하면서도 서로 조화를 이루어, 독특한 정체성을 드러낸다. 이는 마치 한 편의 시처럼, 각 줄이 독립적이지만 전체적으로는 하나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과 같다.
집의 뒷면은 또 다른 이야기를 품고 있다. 앞면이 이웃집들처럼 하나의 면으로 존재한다면, 뒷면은 두꺼운 덩어리로 존재한다. 집의 뒷면은 숲을 바라보고 있어, 별도의 파사드 디자인을 하지 않았다. 숲과 만나는 이 부분은 면이 아니라 덩어리로 인식되도록 설계되었다. 도시를 향한 면은 하나의 표정을 짓지만, 자연을 향한 면은 아무 표정도 짓지 않는 게 더 어울린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책의 뒷 표지처럼, 앞표지의 화려함보다는 내부의 내용을 담아내는 역할을 한다.
파사드는 집의 표정이자 세상과 만나는 태도다. 이를테면 유명한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의 빌라 사보아(Villa Savoye)의 파사드는 기둥 위에 떠 있는 흰 면으로서 건축이 대지에서 독립적임을 선언했다. 파사드를 통해 각 층마다 공간의 기능성을 강조했다. 이는 모노에서 하단, 중단, 상단으로 나누어 디자인한 것과 맥락이 비슷하다.
물론 모노의 파사드는 그런 거창한 선언은 아니었다. 주변 이웃집과 관계 속에서 존재감을 가질 수 있도록 고민했을 뿐이다. 이웃집들의 면과 면 사이에서 독자적 리듬과 재료의 대비를 통해 모노는 분명히 다른 표정을 보여주고 있다. 차분하면서도 단순하고, 가벼운 듯 견고한 인상을 주고 싶었다.
도시 속에서 집이 ‘얼굴’을 갖는다는 것은 결국 주변을 의식하면서도 자기 자신을 잃지 않는 일인지도 모른다. 모든 집은 벽으로 존재하지만 단순한 벽이 되지 않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그 벽이 지나치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 좋은 느낌으로 남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