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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 연주가 이야기 #1

by 최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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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을 위한 몸짓


한석규 배우가 한 시상식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 기억난다. ‘ 연기란 관객과 시청자를 위한 몸짓 ’ 나는 그 말을 단순히 연기에 대한 설명이라기보다 ‘타인을 향한 태도’ 로 이해했다. 연기가 단순한 기술이나 재능이 아니라, 타인과 마음을 나누는 일이라는 그의 생각이 좋았다. 배우는 보는 사람이 있어야 존재하는 직업이다. 좋은 배우는 연기를 하는 순간 타인을 의식하고, 배려하고, 존중한다. 그렇다면 건축은 어떨까?


모든 일이 사회적 ‘관계’ 속에 있다. 나 혼자만 잘하면 될 거 같지만 봐주는 사람도 있어야 하고 사용하는 사람, 원하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 하나의 일이든 직업이든 그 반대편의 사람이 없다면 그건 무의미한 혼자만의 독백이 되고 만다. 그런 의미에서 건축도, 주택도 마찬가지다. 나 혼자만 좋으면 될거 같지만 뭔가 건물 하나가 세상에 태어난다는 건 그것이 없던 세상에 꽤 묵직한 관계 하나가 새로 만들어진다는 의미다.


한석규 배우 식으로 말하자면, 집을 짓는 것도 결국 타인을 위한 몸짓이다. 주택은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이지만, 동시에 세상과 관계를 맺는 태도나 제스춰이기도 하다. 전적으로 나만을 위한 집을 짓는다고 해도 그 집이 지어지는 순간부터 원래 있던 이웃들과의 관계가 시작된다. 길을 지나가는 사람, 마주한 이웃집, 창을 통해 주고받는 시선들.. 우리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서로에게 크고 작은 영향을 주고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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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이유 탓인지, 나는 주택을 설계할 때 집이 완벽히 가려지지도, 완전히 열려 있지도 않길 바란다. 관객을 염두에 두지 않고 연기하는 배우, 또는 너무 관객을 의식하는 배우가 되는 건 어느 쪽이든 좀 불편한 관계가 아닐까 생각한다.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너무 닫혀 있으면 외부와 단절하고 혼자 잘 살겠다는 의지를 표출하게 된다. 너무 열려 있으면 이런 저런 접촉으로 약간 피곤해진다. 창의 크기와 위치 뿐 아니라 벽과 담장의 높이, 조경의 배치, 마당의 여백... 등등 주택에서 이런 이슈는 단순한 물리적 요소가 아니라, 타인과 거주자의 관계를 조율하는 장치가 된다.


주택은 사적인 공간이면서도 공적인 존재다. 우리는 벽을 세우지만 창을 내고, 울타리를 치지만 문을 둔다. 개인을 위한 집이라도 결국은 타인을 의식하며 지어지는 것이다. 나는 그 균형을 고민하는 것이 주택 설계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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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의 경계


연주가의 창문, 담, 벽은 단순한 구조적 요소가 아니라, 외부와의 관계를 설정한다. 창문은 안과 밖을 연결하는 통로지만 크기와 위치에 따라 시선의 흐름은 달라진다. 담장은 집 바깥의 시선과 집 내부와의 거리감을 조절하며 개방과 프라이버시 사이의 균형을 잡는다. 반면에 건물의 벽은 확고한 물리적 경계다. 재료와 색감, 디자인에 따라 주변과의 친밀감을 형성할 수도, 배타적 분위기를 만들 수도 있다.


연주가의 경계는 단순히 개인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이웃과 길을 오가는 사람들과 끊임없이 대화하는 존재다. 그렇기에 경계를 짓는 방식이나 경계의 형태에 따라 이 집이 밖으로 보여지는 태도가 결정된다고 생각했다. 너무 닫혀 있으면 위압적이 되고 너무 열려 있으면 부담이 된다. 연주가에서 가장 중요한 공간적 이슈는 집 경계의 형태라고 생각했다.


완전히 닫힌 담장 대신, 일정 부분 개방된 디자인을 활용한다. 예를 들어 주차 공간 상부의 피로티 건물과 뒤의 담 사이에 틈을 두는 방식으로 시선을 완전히 차단하지 않으면서도 적절한 프라이버시를 유지할 수 있다. 마당과 외부 공간은 완전한 개방형 공간보다는 반쯤 가려진 반개방형 공간이다. 시선은 열어놓되 직접적인 개입은 줄인다. 담과 건물로 둘러싸인 마당이 심리적 여백이 되어 안정감을 주는 역할을 한다.


외벽 색감은 주변 이웃집과 조화를 감안하여 백색으로 정했지만 전면은 알미늄 패널, 후면은 스터코 도장으로 질감의 차이를 두었다. 출입구의 방향과 동선 설계: 도로에서 바로 진입하는 것이 아니라, 마당이나 작은 현관 공간을 거쳐 들어가도록 동선을 조정하면, 집 안으로의 시선이 직접 닿지 않으면서도 자연스러운 접근이 가능하다.


집의 형태나 외관은 얼핏 보면 덩어리로 뭉뚱그려 보이지만 수많은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 이런 요소들을 각각의 목적으로 효율적으로 배치하면, 집은 사적이면서도 타인과 소통하는 균형을 맞출 수 있다. 너무 닫히지도, 너무 열리지도 않은 집... 집 바깥 세계의타인들에게 보여주는 이 집의 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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