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Rear Window)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영화 이창(Rear Window.1954)은 심리 스릴러의 시조새로 불릴만한 작품인데 영화적 관점 외에 건축적으로도 할 말이 많은 걸작이다. 영화는 주인공 제프(제임스 스튜어트)가 자신의 아파트 창문을 통해 타인들의 일상과 비밀을 숨어서 관찰하는 이야기다. 영화에서 창문은 우리가 세계를 어떻게 바라보고, 해석하는지에 대한 간단치 않은 질문을 던진다. 특히 내 집과 남의 집의 관계, 들여다보는 행위와 시선 등에 대한 흥미로운 장면이 많다.
어떤 집은 담장이 있고 어떤 집은 커다란 창이 있다. 물론 둘 다 있는 집도 있다. 우리는 집을 지을 때 벽을 세우면서 동시에 그 벽을 일부 터서 창을 낸다. 타인을 완전히 차단하는 것도 완전히 받아들이는 것도 어렵다는 의미다. 창은 결국 그 중간 어딘가에서 우리의 욕망과 불안을 조절하는 장치다. 이창(Rear Window)에서 히치콕은 인간 심리의 이런 모순을 교묘하게 파고든다.
영화의 무대는 뉴욕의 한 아파트의 안쪽, 정확히 말하면 여러 동의 주택이 서로 등을 맞대고 둘러 싸고 있는 중정 같은 공간이다. 제프(제임스 스튜어트)는 다리를 다쳐 움직이지 못하는 처지다. 심심해하던 그는 창을 통해 건너편 이웃의 일상을 들여다본다. 영화 속 주택들은 서로 가깝게 있고 창이 많지만 배타적인 분위기가 느껴진다. 바람이 불면 커튼이 펄럭이고 누군가는 무심코 창을 연다. 그러면 실내 풍경이 어쩔 수 없이 공개된다. 의도한 것도, 바라던 것도 아닌데. 보이니까 보게 되는 기묘한 상황.
나의 창, 이웃의 창
현실의 도시에서 주택과 주택의 관계도 늘 이렇다. 가까우면서 멀다. 서로 엿볼 수 있을 만큼 가깝지만 쉽게 말을 걸 수 있을 정도로 가깝지는 않다. 너무 가까우면 우리는 굳이 들여다보지 않고 시선을 피한다. 벽을 두고 사생활을 보호하지만 한편으론 큰 창을 내서 좋은 전망과 햇볕을 얻고 바깥세상의 동정을 살피고 싶다. 이 묘한 거리감과 모순적 심리는 아파트든 단독주택이든 마찬가지다. 단독주택이라 해서 완벽히 독립적일 수 없다. 마당이 있는 집이라 해도 담 너머의 시선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다.
단독주택을 전문으로 설계하는 입장에서 창 설계할 때 늘 생각한다. 이 창의 목적이 바깥에 있는지 내부에 있는지. 영화 속 제프의 창은 두 가지 역할을 동시에 했다. 그는 창을 통해 세상을 본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 창은 나를 바깥에 노출하는 장치이기도 했으니까. 타인의 집을 들여다보는 순간 내 모습도 상대에게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연주가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시선을 가리려 담장을 세워도(어차피 지역 법규상 높이가 정해져있긴 했지만) 한쪽에 열어놓은 큰 창문은 가리려는 심리를 희석시켰다. 큰 창문을 두고 넉넉한 마당이 앞에 높이고, 마당 끝엔 애매한 높이의 담장을 세운다. 담장 주변으로 적당한 조경까지 두면 타인과 창문 사이의 거리는 같지만 경계의 겹은 두꺼워지니 심리적 거리감이 더해지는 것이다. 타인과 창문 사이에 보이지 않는 심리적 브레이크를 여러 겹 두는 방법이다.
영화에서 특히 흥미로웠던건 창을 통해 바라보는 이웃들이 마치 연극을 펼치는 배우들 같다는 점이었다. 발코니에서 춤 추는 여인, 작곡가, 외로운 노부인, 그리고 살인 용의자인 남자까지. 하지만 정작 이들은 서로가 서로를 알지 못한다. 마치 우리가 창을 통해 서로 연결된 것 같으면서도 실제로는 철저히 분리된 관계인 것처럼.
주택 설계할 때 마다 집이 거주자와 타인 사이에서 어떤 관계로 놓일지를 고민한다. 벽을 높게 세우거나 두텁게 만들면 시선을 막는 확실한 물리적 장벽은 되겠지만 세상과의 연결이 끊긴다. 창의 높이를 조절하거나 정원을 두거나, 담과 그늘을 만들어 시선을 완충하는 것은 물리적 장벽은 아니지만 심리적 거리와 적당한 은폐를 확보할수 있게 한다. 언제나 주택 설계는 나(내집)와 타인(이웃집)의 관계를 고민하게 한다.
우리는 타인을 어디까지 받아들일수 있는지 생각해본 적이 별로 없다.
적당한 거리가 얼마인지,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공존할 수 있는지...
대부분 누군가 설정해놓은 거리와 관계 속에서 적응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하지만 내 집을 짓게 되면 고민하지 않을수 없다.
거리와 관계를 직접 만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