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J 아빠와 파워F 언니, 그리고 수다떠는 모녀
얼마 전에 회사 선배의 모친상에 다녀왔어요. 마음이 심란했어요. 건강하셨는데 실수로 넘어지신 이후로 일어나지 못하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착잡했어요. 임영웅의 노래를 그렇게 좋아하셨다고. 지금도 임영웅 노래만 들으면 그렇게 눈물이 난다고 했어요.
내가 나이 먹는 만큼, 내 아이가 커가는 만큼, 우리 부모님도 점점 늙어가고 있다는 것. 알면서도 갑자기 실감이 난 것 같아요. 언제나 내 곁에 계셔주실 것만 같았는데. 든든한 버팀목같은 부모님이 없는 세상은 생각해본 적이 없는것 같아요. 아마 저는 무너질것 같아요. 상상만으로도 괴롭네요.
그런 의미에서. 최근엔 부모님과 언니, 그리고 나. '찐 김씨 패밀리'의 여행을 다녀왔어요. 우리 아빠는 늘 딸들, 그리고 아내와 함께 하는 여행을 늘 그리워하셨거든요. 제 마음에는 어린시절 매년 산과 들로 물놀이를 떠나 다슬기도 잡고, 조개도 캐던 추억이 남아있어요.
그런데 현실이 여의치가 않네요. 언니도 저도 아직 아이가 어려서 도쿄 2박3일로 결정했어요. 최대한 가까운 곳으로, 최대한 짧은 일정을 선택했죠.
활동적이고 계획적인 아빠의 성향을 고려해 비행기 표와 숙소만 결정한 채 자유여행으로 떠났어요. 그 누구도 일본어를 하지 못했지만, 결론적으로 매우 만족이었어요.
아빠는 파워J 답게 도쿄 여행 일정을 그 누구보다 짜임새있게 짰고, 지하철 환승도 척척. 박수가 절로 나왔어요. 언니는 파워 F 답게 가족 모두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공감요정'으로 활약했고, 도쿄 구석구석의 맛집을 찾아내 여행 만족도를 한층 높여주었죠. 엄마는 그간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딸들에게 쉼없이 쏟아부었고, 전 그냥 막내답게 뒤만 졸졸 따라다녔어요.
2박3일인데 토쿄에 오전 10시에 입국, 인천에 밤 10시 귀국하는 3박4일 못잖게 빡센 일정이었어요. 열정적인 아빠 덕분에 캐리어 끌고 첫날부터 파워워킹. 결국 땀 삐질삐질 흘리며 3만보 찍었고요. 둘째날도 도쿄 지하철 투어하며 2만6천보 달성했어요. 솔직히 전 앞장서는 아빠와 언니의 뒤꽁무니만 쫓아가다 보니 정작 어디 갔는지도 기억이 잘 안나요. 다만 매일 밤 종아리가 매우 피곤해서 휴족시간을 붙였고, 한국에 돌아와서도 한동안 발목이 시큰거린 정도죠.
사진첩 만들려고 아빠에게 일정을 물어보니. 아래와 같은 답이 왔습니다. 역시 파워J는 다르네요.
근데 저는 이번 여행 너무 좋았어요. 그래서 우리끼리 다시 조촐하게 다시 모였죠. 중국집에서 고추잡채와 깐풍새우, 그리고 고량주를 곁들이며 일본 여행을 복기했어요.
"참 더웠고, 음식은 참 짰는데. 그래도 참 좋았다."
"다음번엔 일본 여행 더 제대로 할 수 있을 것 같아."
"이제 일본어도 얼추 읽을 수 있을 듯해."
그리고 내년 여행을 다시 계획하고 있어요. ㅎㅎㅎ 아직 제 남편은 모르는 일입니다만. 내년엔 좀 더 길게 멀리 가보자고 저희끼리 쿵짝을 맞추고 있네요. 과연 이뤄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벌써부터 가슴이 설레네요. 10박 11일 북유럽 가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