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문이 열렸네, <기도하는 남자>
강동헌 감독의 장편 데뷔작 <기도하는 남자 Pray>(2020)는 지독한 생활고로 마지막 남은 신앙심마저 뿌리째 흔들린 어느 목사의 이야기이다. 개척교회 목사가 주인공인 기독교 영화인데, 그렇다고 해서 현실과 동떨어진 원론적 이야기만을 하고 있지 않다. 각박한 현실 속에서 공명할 수 있다는 점이 이 영화가 가진 최대 장점이 아닌가 싶다.
신실함 하나로 인정받던 신학생 태욱은 어느덧 세월이 흘러 개척교회 목사가 되어 예배를 집전하고 있다. 그러나 태욱의 표정은 밝지가 않고, 찬송가를 부르면서도 마치 교인들이 더 올 것인지 가늠하는 것처럼 문쪽을 보는 양미간이 찌푸려져 있다. 예배당마저 카타콤 지하교회처럼 어두컴컴하고 누군가에 쫓기는 듯 압박감이 감돌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출석한 교인 5인 중에 신혼부부 커플이 전세를 구해 잘 되어 이사를 간다며 오늘이 마지막 예배 출석이었음을 알린다. 여신도는 '목사님 덕분에 예수님 알았는데 죄송해요'라며 헛헛한 태욱의 마음을 대신 읽어주는 듯 미안해한다. '어디에 가서든 잘 믿으면 된다'라고 대처하지만 태욱의 낯빛은 말과 달리 처연하다.
교회 월세는 밀려 있고, 성도는 손가락으로 셀 정도다. 월급은커녕 거할 집도 없어서 아이들과 아내는 장모님과 함께 살고 있으며, 태욱은 교회에서 숙식하며 대리운전으로 투잡을 뛴다. 오늘도 대리 콜을 기다리는데, 그것마저 경쟁이 녹록지 않다.
잠을 줄여 일하고, 삼각김밥으로 식사를 때우면서도 감사 기도를 잊지 않는 태욱의 인내심을 시험하기라도 하듯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려온다.
"여보. 엄마 간암이래. 수술해야 한대."
필요한 돈은 5천이었다. 큰돈을 구하러 나선 부부에게 세상은 노골적인 맨얼굴을 드러낸다.
'갚을 수 없는 돈을 원한다는 것'의 의미
태욱은 피투성이가 된 채 맨발로 아내 정인(류현경 분)의 일터에 찾아오고, 그날 밤 태욱은 '정인아, 나 더는 못 하겠어'라고 포기를 선언한다. 그의 포기는 '5천만 원 구하기' 미션뿐만은 아니었다. 바로 그의 인생의 터전인 교회를 포기하는 것이었다. 집 없는 달팽이처럼, 교회 없는 목사가 되는 현실을 받아들인 것이었다.
그 정도에서 끝났으면 좋았을 것을, 일단 세상이라는 '성난 벌통'은 자신을 건드린 부부를 그렇게 쉽게 보내주지 않았다. 결국 태욱이 만신창이가 되고서야 '세상'은 그에게 엄청난 선물을 선사한다. 태욱의 지옥문은 그렇게 열렸고, 토악질을 하며 문지방을 넘으니 그가 원했던 모든 것이 그곳에 있다. 한 가지만 빼고.
출석교인 수가 줄어든 것이 태욱의 잘못이었을까. 지금부터 태욱의 지나온 과정을 한번 상상해 보자. 영화 초반부에 태욱의 삶의 태도를 보면 성실하고 강직한 성품의 소유자로 설교나 전도, 교인 양육에도 최선을 다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 그가 어쩌다가 개척 몇 년 만에 빚에 쪼들리고 집도 없이 생활비도 감당 못 하는 신세가 되었을까.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석유난로와 벽에 설치된 회전형 선풍기, 그리고 강대상과 나무 십자가 인테리어, 손글씨 찬양 악보 스탠드, 뒤편 헌금꽂이함의 규모로 보아 운영된 지 약 20~30년은 되고 출석교회 백 명은 족히 넘겼던 교회로 보인다.
오래된 상가 지하에 개척하면서 중고물품을 구해 설치했을 가능성도 있지만, 어쩐지 출석 교인들의 구도심 이탈 현상으로 직격탄을 맞은 교회를 인수했을 가능성이 더 커 보인다. 그랬다 해도 그 비용마저 적지 않아서 살던 집도 빼고 가족의 도움도 받고 은행 대출도 합하여 시작했을 것이다.
개척교회는 막대한 초기 비용으로 몇 년은 적자를 감수하다가 수입이 늘면서 안정궤도에 진입하는 개인사업자의 운명과 비슷하다. 아마도 초반부에는 가족이 교회 살림공간에서 거했을 것으로 보이는데, 성도수가 계속 줄어들고, 운영이 어려워지고, 월세가 밀리고, 보증금까지 소진된 시점에서 가족들을 장모님 댁으로 대피시켰을 수 있다. 철거를 앞둔 빈 상가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이 교회의 운명은 도시의 수명과 맞물려 어지간해서는 뒤집기 힘든 싸움이었던 것이 아닐까.
똑같이 구도심의 낡은 교회여도, 토지와 건물을 소유하고 있는 교회는 재개발이 호재가 된다. 공사기간쯤은 버틸 수 있으며, 종교부지에 신축 건물을 세워, 생존한 원주민 성도들과 대단지에 새로 입주하는 중산층 성도들을 대거 흡수하며 교회의 덩치를 키울 수 있다. 그러나 월세 교회는 성도도 놓치고, 터전도 사라진다.
중형교회는 대형교회를 바라보고, 대형교회는 초대형교회를 바라보고, 초대형교회는 세계로 뻗어나가는 글로벌 교회를 바라본다. 확장만이 숙명인 듯 여기는 것 같아 씁쓸하다. 태욱의 후배 목사 임동현(김준원 분)은 아버지의 대형교회를 물려받은 자신의 신세에 대해 양가적 감정을 가진 듯하다. 아버지가 자랑스러우면서도 동시에 스스로 부끄러운.
그리스도의 희생을 씨앗으로 교회가 탄생하고, 수많은 선교사들 희생의 씨앗으로 이 땅에 교회가 자리를 잡았는데, 태욱의 교회는 누구의 희생으로 세워졌을까? 원래부터 교회 하나가 세워지는 과정이 그렇게 슬픈 것일까? 해피엔딩이면서도 걷잡을 수 없는 슬픔과 자괴감으로 토악질을 하는 태욱이기에, 비록 허구 속의 인물이지만, 예전의 그의 신실함이 회복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요즘은 교회 없이 일하는 목사님들이 많아지는 추세라고 한다. 공장에서 일하면서 사역하는 '일목'이 되려고 했던 태욱처럼 학교에 교목이 있고 병원에 원목이 있듯이 공장 근로자들을 위한 목회자가 필요한 것이다.
또는 배송, 건설 현장, 각종 설비 등 육체노동의 현장에서 일하는 목사님들도 늘고 있다고 한다. 임대비와 인테리어 및 관리 비용을 낮추는 공유 예배당의 형태도 등장하고 있다고 한다. 세상 속에서 힘든 싸움을 피하지 않는 작은 교회의 치열함을 보며, 어쩐지 우리 평신도들의 치열한 평일을 보는 것 같아서 진심으로 응원하고 싶다. 기독교인이 아니어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영화 <기도하는 남자>를 자신 있게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