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자 바울의 노년기를 담은 <바울 : 그리스도의 사도>
얼굴을 가린 한 남자가 어디론가 바삐 향하고 있다. 순찰병들을 피해 다니던 그는 충격적인 장면에 얼어붙는다. 누군가 로마군에 붙잡히자마자 나무 기둥에 묶여 화형식에 처해진 것이다. 죄목은 바로 네로 황제의 '기독교 금지령' 위반. 외마디 비명과 함께 불에 탄 남자는 한때 그가 치료한 인연이 있는 환자.
자신의 환자가 타 죽는 것을 보고도 몸을 숨겨야 하는 이유는 그가 반드시 만나야 할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그 길은 언제나 험악하다. 로마의 악명 높은 감옥 마메르티노(mamertine)의 지하감옥에는 '로마 대화재'의 주범으로 몰려 참수형에 처할 운명의 '바울'이 있다. 그를 만나러 가는 남자는 그리스 출신의 의사이자, 바울의 오랜 동역자 '누가'이다.
성모 마리아의 삶을 다룬 영화 <풀 오브 그레이스>(2015)를 연출한 바 있는 앤드루 하얏트 감독의 성인(Saint) 일대기 영화 <바울 : 그리스도의 사도>. 이 영화는 신약성경의 주요 저자이자, 초대교회의 기틀을 확립했다고 알려져 있는 사도 '바울'의 노년기를 다루고 있다. 고난과 역경의 연속이었던 바울의 파란만장한 인생 여정에서 영화는 왜 굳이 노년기를 주목했을까. 영화 속으로 들어가 보자.
천정에 난 작은 출입구에 비친 햇빛이 전부인 더럽고 습한 지하 감옥. 참수형의 집행을 기다리고 있는 바울의 잠을 방해하는 것은 처형의 두려움이나 고문으로 인한 통증이 아니었다. 젊은 날 그의 이름은 사울이었고, 예수 추종자들을 박해하는 데 앞장섰던 바리새파 행동대장으로 유명했다.
그때 그가 죽인 사람들, 즉 죽은 신도들이 자꾸만 그의 꿈속에 찾아온다. 그들은 바울에게 무엇을 바라는가. 바울은 그들의 등장이 왜 두려운 것일까. 어떻게 예수의 핍박자가 예수의 사도로 인생이 급변할 수 있었는지 짚어 보자.
바울은 오늘날 터키의 타루수스 지방에서 서기 1년~5년 사이 '사울'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 유대인이지만, 성공한 천막 제조업자였던 아버지 덕분에 날 때부터 로마 시민권자였으며, 유복한 환경에서 독실한 율법학자로서 충분한 소양을 쌓을 수 있었다.
예루살렘 유학길에 오른 청년 사울은 충격에 휩싸인다.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며 예수를 통하지 않고 구원에 이르는 길은 없다는 주장에 독실한 유대교인 사울은 분노를 금할 수 없었다. 당시 예수 추종자들은 유대교의 이단 집단으로 치부되고 있었다.
사울은 신성 모독의 뿌리를 뽑고자 강도 높은 탄압에 앞장섰고, 신도들이 뿔뿔이 흩어지자, 그들을 색출할 수 있는 권한을 얻어 다마스쿠스(다메섹)로 향하던 중, 어떤 목소리를 듣고 강렬한 빛에 눈이 멀어 말에서 떨어지고 만다.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다." 삼 일 후 눈을 뜬 사울의 인생은 180도 바뀌게 된다.
그리스도교 신도들은 로마 대화재의 주동세력으로 몰려 붙잡히면 화형에 처해지거나 서커스에 내던져져 비참하게 죽어갔다. 누가는 간수를 매수해 바울과 함께 지내며 그의 가르침을 받아 적는다. 은신처에서 숨죽이며 살고 있는 신도들은 누가로부터 바울의 특별한 전언을 기대하지만 별다를 것이 없어 실망한다.
매일같이 신도들의 무기력한 죽음이 이어지자 공동체는 공포에 술렁인다. 일부 과격한 신도들이 바울을 탈옥시키려 하다가 교도소장의 노여움을 사게 되고, 누가마저 감옥에 갇혀 내일 서커스에 내던져질 신세가 된다.
묘한 자리바꿈의 역학이 있는 것일까. 십자가 형에 처한 예수 앞에는 빌라도 총독이 있었고, 돌팔매질로 죽어간 스데반 앞에는 율법학자 사울이 있었다. 빌라도는 성난 군중에게 예수를 넘겨주고 자신은 무고하다며 군중 앞에서 손을 씻었으나, 성경에는 빌라도의 죄책감이 간접적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빌라도의 고뇌를 다룬 외경이나 문학작품들도 전해진다.
사울은 스데반의 죽음 이후 얼마 못 가, 다메섹 도상에서 회심하고 선교에 평생을 바친다. 영화에서 바울 앞에는 참수형을 집행해야 하는 교도소장 모리셔스가 있다. 바울에 대한 호기심으로 뒷조사를 하지만, 그 역시 바울의 죄를 찾을 수가 없어 괴롭다. 당신의 신이 죽어가는 내 딸을 고칠 수 있겠냐고 바울에게 의탁하기도 한다. 누가의 치료로 딸이 낫게 되자, 그 역시 바울과 바울이 섬기는 신에 신뢰를 보이기 시작한다. 이후 모리셔스의 인생행로는 어디로 향할까.
기복신앙일 수도 있지만, 그 '복'은 우리가 생각하는 땅 위의 복이 아닌, '구원'이라는 이름의 복이다. 초대교회의 신도들이 처한 상황처럼, 기독교는 그 종교를 믿는다는 이유로 탄압을 받고, 모든 것을 빼앗기고, 목숨마저 빼앗길 수도 있는 종교이다.
영화 <바울 : 그리스도의 사도>는 예수의 추종자라는 이유로 붙잡혀 화형 당하는 그런 시대를 살아가던 사도들과 신도들의 시공간으로 우리를 불러들인다. 목숨을 씨앗으로 바친 바울과 같은 신도들이 있었기에 기독교는 뿌리내릴 수 있었고, 바울의 지혜를 담은 누가의 기록은 2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 살아있다.
교회를 수익모델로 삼고, 성직을 특권으로 여기며 세상의 복을 스스로 쌓는 거짓된 종교인들이 과연 그런 시대에 처한다면 묻고 싶다. 믿으면 죽을 수도 있는데, 믿겠습니까. 과연 그들이 기독교를 받아들이기나 했을지 의문이다.
<왕좌의 게임>의 제임스 폴크너가 '바울'로 열연하며, 무엇보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2004)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연기했던 짐 카비젤이 바울의 동역자 '누가'로 출연, 비교하며 보는 재미를 배가시킨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로부터 십수 년이 흘러, 짐 카비젤은 '예수의 마스크'로 이미지가 한정되거나 배역 따돌림을 당하기도 했지만, '지저스 파워'라는 애칭으로 여전히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이 영화, '사랑'과 '용서'를 외치는 바울 서신이 지루하게 여겨지는 신도에게 특히 추천한다. 영화 <바울>을 통해 어떤 상황에서 그가 내뱉은 말인지를 확인한다면, 그 말의 힘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 되리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