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쁘지만 선한 사마리아인의 환란, <배드 사마리안>
<유니버설 솔저)(1992), <스타게이트>(1994), <인디펜던스 데이>(1994), <고질라>(1998) 등의 각본을 쓰고, <월드 트레저> 연작들을 기획한 바 있는 딘 데블린 감독이 연출한 영화 <배드 사마리안>(2018). 이 영화의 독특한 지점은 바로 이 영화가 성경의 한 우화 '선한 사마리아인'을 차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신약성경 누가복음 10장 25절에서 37절에 이르기까지 오간 어느 율법사와 예수 사이의 대화 내용이 그것이다. 율법사는 예수에게 무엇을 해야 영생(구원)을 얻을 수 있는지를 물었고, 예수는 이에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실천하라고 답을 한다. 이에 그가 '내 이웃'이 누구인지 묻자, 예수는 강도당한 자를 도운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들어, '도움이 필요한 자가 네 이웃'이라고 설파한다.
죄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죄라고 규정된 행위를 저지르는 죄와, 다른 하나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죄다. 하는 죄는 비교적 명확하나, 안 하는 죄는 모호해서 죄라고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흔하다.
예를 들어 영화 영화 <목격자>에서 상훈(이성민)이 살해 장면을 목격하고도, 구조의 의무를 다하지 않거나 신고하지 않는다고 해서 도덕적 비난을 받을지언정 법적 처벌을 받는 것은 아니다. 선의의 응급의료에 관한 면책 상황을 제외하고는, 그리고 그 범죄자가 간첩이 아니라면, 우리나라는 '선한 사마리아법'의 적용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배드 사마리안>의 경우를 살펴보자. 새아빠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 온 지 7년 차인 '션'은 사진작가를 꿈꾸지만, 현실은 레스토랑의 발레파킹 요원. 게다가 그 차로 손님 집을 터는 좀도둑에 다름 아니다.
그는 마세라티를 타고 온 손님 '케일'의 거대 저택을 털러 갔다가 우연히 비밀의 방에 감금된 여인을 발견한다. 지독한 쇠사슬을 풀지 못하고 돌아온 션은 그녀를 구하기 위해 경찰에 신고도 하고 FBI에 실종자 수색을 요청하지만 푸대접만 받고 내쫓기거나 영주권에 대한 협박만 당하고 온다.
좀도둑질 친구인 데렉을 포함, 경찰과 FBI 요원 등은 그의 제보에는 관심도 없고, 오로지 '왜 나서는지'를 궁금해한다.
션은 '감금의 방'을 벗어났지만, 여전히 그 방에 갇혀 있는 것 같은 생생한 고통을 느끼고 있다. 그래서 그녀를 구출하는 것이, 곧 자신을 구출하는 것이기에 자기 일처럼 나서는 것.
션의 이 대사는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라는 성경 구절이 정확히 인용되는 지점이다. 사마리아인이 강도당한 사람을 구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먼저 지나간 제사장이나 레위인이 강도당한 사람을 지나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비록 비유라 해도 그 시대적 현실을 가리키고 있을 것이다. 제사장에게는 시체를 만지면 안 된다는 금기가 있어서 그럴 수도 있고 혹시 그가 피해자로 위장한 강도일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배드 사마리안>의 세상에서도 쇠사슬에 묶인 채 고문당한 여인을 돕는 것은 이민자 출신의 좀도둑 션이다. 또한 션을 돕는 유일한 친구 데렉은 범죄조직의 일원으로 보인다. 시민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경찰은 션의 제보를 노골적으로 묵살하고, 케일의 저택을 조사하러 간 형사는 범죄의 냄새를 풀풀 맡고도 이를 묵인한다. FBI 역시 소극적이기는 매일반이다.
소위 미국 시민권자들은 찾지 않는 그녀를 이민자 출신 좀도둑이 필사적으로 찾아 나선다. 갇혀있는 그녀, 도움의 손길이 없이는 밖으로 나올 수 없는 그녀의 상황을, 역시 출구 없는 가난이란 덫에 걸린 이민자 션이 잘 알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예수와 대화하는 율법사는 '내 이웃'이 누구인지를 물었다. 그는 이웃의 범위를 물은 것이다. 이웃의 범위를 정해주면 그 이웃만 사랑하겠다는 뜻이다.
오랫동안 그들을 억압해 온 이방 민족들은 이웃이 아니며, 같은 유대인들 중에서도 율법을 철저히 지키는 사람들만 이웃이며, 세리와 창녀 같은 죄인들은 이웃이 아니라는 인식이 기저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이에 예수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도움을 줌으로써 네가 그 사람의 이웃이 되는 것이지, 이웃이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님'을 설파한 것이다.
최근 들어 위험에 처한 사람을 구하면 안 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배드 사마리안>에서 션도 그녀를 구하기 위해, 자신이 도둑질을 했다는 것을 실토해야 했고, 돈 많은 살인범 케일의 방해로 션의 부모가 실직을 하고, 션의 여자친구 라일리는 린치를 당해 중환자실에 입원하고, 션의 친구 데렉과 가족은 살해당한다. 위험에 처한 여자를 구하려다가 자신과 주변 사람들이 위험에 더 큰 위험에 빠지는 것이다.
도와줬다가 오히려 가해자로 몰려 소송에 휘말리거나, 패가망신하게 되는 사건이 생기면서 위급 구호를 기피하는 문화를 보면, 2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사적인 폭력'이 금지된 현대문명사회는 범죄자의 폭력에 속절없이 당하고 있다.
비명횡사하는 장소가 갈수록 밝아진다. 인적이 드문 야산이나 어두운 골목길이 아닌, 아파트 단지 한복판, 불 켜진 상가, 유흥가 길거리 등 사람이 많고 밝은 환경에서 버젓이 이루어진다.
요즘엔 특히 '심신 미약'이라는 그린라이트까지 동원되고 있다. 얇은 옷만을 두른 채 살아가는 연약한 몸뚱이의 인간에게, '살해'와 '폭행'은 어느 때보다 위협적으로 다가온다.
비록 설정상 여러 가지 서투름이 있어 완성도는 아쉽지만, 영화 <배드 사마리안>은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가 여전히 필요한 사회에 우리가 살고 있음을 환기한다.
영원한 '닥터 후'로 기억되는 데이비드 테넌트가 사이코패스 살인마 '케일'을 연기하며 세월감을 드러내주고, 20대 초반의 나이에도 단단한 필모그래피를 가진, '션'을 연기한 로버트 시한 역시 차기작이 기대된다. <배드 사마리안>의 마지막 장면에는 상상도 하지 못한 의외의 반전이 긴 헛웃음을 남기니 끝까지 관람하시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