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성 없는 일

잘 먹고 잘 사는 법

by 가문비


‘다꾸(다이어리 꾸미기)’라는 약간 철 지난 유행이 있다. 뭐든 한 박자씩 느린 나는 최근에야 다꾸에 빠졌다. 요즘엔 ‘입덕부정기’라는 말도 있다. 이것도 나온지 꽤 오래된 단어인데, 이를테면 거부감이 드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끌리는 그런 시기라는 거다. 요컨대 요즘 나는 다꾸라는 취미에 대해 입덕부정기를 겪고 있다.


얼마 전에 도합 8만원어치의 다이어리와 스티커 세트를 사들였다. 취미로 쓰기에는 분에 넘치는 금액으로 예쁜 쓰레기들을 결제하고 나니까 스스로 쓰레기가 되어 버린 기분이었다. 더군다나 다이어리를 꾸민다니 얼마나 생산성 없는 활동인가. 콜라주 예술이라고 우겨보고 싶지만, 저작권 불명의 중국산 스티커를 덕지덕지 붙이고 노는 이 취미를 애써 예술이라고 합리화하고 싶진 않다. 아무튼, 예체능이 직업인 것도 아니고 미감도 없는 내가, 커리어에 하등 도움도 되지 않는 이런 활동에 돈과 시간을 쓰다가 정말 사회에서 쓸데없는 사람이 되어버리는 거 아닐까, 라는 한국식 사고방식은 여전히 나를 사로잡고 있다.


불과 몇 년 전의 나였다면 애초에 다꾸라는 것에 눈길조차 주지 않았을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그런 걸 하는 사람들을 한심하게 여기기까지 했었다. 학창시절에도 알록달록 예쁘게 필기하거나 편지지를 꾸미거나 글씨체를 굳이 연습하는 친구들이 더러 있었다. 당시의 나는 그 친구들이 인생을 낭비하고 있는 거라 생각했었다. 글씨체가 개발새발이라도 머리가 좋거나 독기가 있어서 공부를 잘 하는 친구들이야말로 진짜 멋있는 사람이라 생각했었다. 실속을 챙길 줄 알며 무엇이 중헌지 아는 쿨하고 똑똑한 사람. 나는 줄곧 그런 사람을 동경했다. 학창시절엔 그런 아이들을 따라하며 살았었다. 예쁘게 필기하는 걸 극단적으로 싫어했고, 펜은 검정색만 고집했다. 일부러 글씨를 못 쓰는 척하기도 했었다. 의기양양하게 “난 그냥 휘갈기면서 외우는 편이야~”라고 하면 친구들이 나를 무심한 천재 쯤으로 생각하지 않을까 기대하던 어렸을 적의 내가 지금은 그저 웃길 따름이다. 그렇게 살다보니 실제로도 실속만 챙기는 사람이 된 것 또한 사실이다. 실제로 내가 시간을 쏟아붓는 모든 일은 미래를 위한 것들이었다. 대학을 가기 위한 공부, 직장을 갖기 위한 공부,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영위하고 있다는 증명으로서 억지로 사람 만나기, 그리고 공부 외에도 교양을 쌓는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고 싶어서 억지로 책 읽기. 공부, 친구, 교양서적. 이 중에 내가 진심으로 좋아하던 것은 없었다.


그래도 나름대로 일분일초를 헛되이 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살았다. 몸은 힘들었지만 매일같이 바쁜 나 자신이 너무 좋았다. 더디게나마 결과가 보일 때에는 내가 잘 하고 있구나, 라며 자신감이 붙기도 했었다. 하지만 나는 무심한 천재가 아니었기 때문에 곧 한계를 맞닥뜨렸다. 그건 번아웃이 아니었다. 그저 내가 똑똑하지 않고 끈기도 없다는 걸 깨달아버린 것뿐이었다. 그리고 미래의 커리어를 위해서 효율적으로만 시간을 써야 한다는 가치관은, 노력이 결실을 맺어줄 거라는 공식이 내 안에서 박살난 시점부터 무너지기 시작했다. 준비하던 시험에 계속 낙방하는 것도 모자라 하루치 계획조차 지키지 못하는 날들이 늘어만 갔다. 정상적인 인맥을 유지하기란 더욱 어려웠다. 똑똑하고 인기 많은 사람이 되고 싶지만 어떻게 해도 난 그렇게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는 건 생각보다 훨씬 더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억눌렸던 욕망의 분출, 뭐 그런 거겠지. 해야 할 것들을 접어두고, 마음이 가는 대로 움직였다. 보고 싶었던 만화와 영화와 소설을 실컷 봤다. 게임도 시작했다. 어디 보여줄 일도 없는 글쓰기도 마음껏 했다. 고작 맛집 하나 찾아가기 위해 왕복 4시간짜리 버스를 타며, 시간을 길바닥에 내동댕이치는 기분을 만끽했다. 하루종일 재미만 있고 의미는 없는 그런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살다가 요즘엔 다꾸라는 것에 빠지게 됐다. 그러고 보면 초등학교 때의 나는 문구류만 보면 환장하곤 했었다. 자라면서 그런 것에 관심을 끊은 건 성장의 증거라고 혼자 뿌듯해하기도 했었는데, 결국엔 돌고 돌아 다시 초등학교 때의 나로 돌아와 버렸다. 유치한 본연의 나를 받아들이기까지 이렇게 험난할 길이 필요했을까 싶을 정도다. 8만원이 넘는 돈을 쓰고, 5시간을 내리 작업하고 나서 나 혼자 뿌듯해하면 끝나는 그런 취미. 효율성이나 생산성이라곤 눈씻고 찾아봐도 없는 취미. 이걸 누리고 있는 나를 스스로 용서할 수 있게 된 때에는 정말 행복해지는 거겠지.


투입한 만큼 산출이 꼬박꼬박 나와주는 인생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누구나 알고 있듯이 인생은 컴퓨터가 아니라서 잔인할 정도로 불합리하다. 합리성에 대한 집착이라든지, 어른스러워져야 한다는 강박이라든지, 미래를 위해 준비해야만 한다는 위기감 같은 짐들을 차례차례 내려놓았다. 과거의 나를 찾아가 그때의 내가 애써 외면해야만 했던 욕망들을 하나씩 이루어주고 있다. 유치하다고 손가락질할지도 모른다. 정체되어 있다가 나중에 후회할 거라며 나무랄지도 모른다. 사실 이건 마음의 소리다. 아직도 난 나를 온전히 행복하게 두는 법을 모른다. 그래도 일단은 이렇게 잘 먹고 잘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