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사히, 평온하게.

by 산책온

사랑의 반대말은 미움이 아니었다.
그건 나이가 마흔을 넘어서야 알게 된 사실이었다.


미움은 적어도 에너지를 쓰는 감정이다.
분노하고, 억울해하고, 밤에 잠을 설칠 만큼 마음이 움직인다.

하지만 무관심은 다르다.
아무 감정도 들지 않는 상태,
상처조차 남기지 않는 대신
존재를 지워버리는 방식이다.


젊을 때의 나는
사랑하려 애썼고,
미워하지 않으려 애썼고,
끝내는 이해하려 애썼다.
누군가의 말에 흔들리고
관계 하나에 하루 기분이 좌우되던 시절이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깨달았다.
모든 것에 반응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모든 말에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모든 관계를 끝까지 붙잡지 않아도
내가 나쁜 사람이 되는 건 아니라는 걸.


적당한 무관심은
도망이 아니었다.
그건 나를 지키는 기술이었다.


나를 소모시키는 말에 귀를 닫고,
나를 작게 만드는 관계에서 한 발 물러나고,
굳이 증명하지 않아도 될 마음들은
그냥 흘려보내는 것.


그렇게 남은 것들로
지금의 내가 만들어졌다.


조금 단단해졌고,
조금 조용해졌고,
무엇보다
스스로에게 덜 잔인해졌다.


이제는 안다.
모든 인연이 끝까지 갈 필요는 없고,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될 필요도 없다는 걸.


그래서 말한다.
안녕.
잘 지내길 바래.

미움도, 원망도 없이
그저 각자의 자리에서

무사히, 평온하게.

모든 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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