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워지지만 마음은 따뜻해지는 시기
연말에는 공연이 더욱 특별하게 느껴진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느낌이 물씬 나기 때문이다. 크리스마스 장식처럼 빨간 관객석에 앉아 무대를 바라보자 더욱 연말임이 느껴졌다.
중앙일보 창간 60주년 기념 콘서트로 꾸며진 ‘The Love Symphony’ 공연에 다녀왔다. 사랑과 감사의 메시지를 담은 특별한 공연은 3일에 걸쳐 진행되었다. 11월 28일에는 '팬텀싱어 In Love’ 무대가 진행되었다. 팬텀싱어 시즌 4 우승 팀 리베란테와 존 노, 길병민의 무대가 펼쳐졌다. 팬텀싱어의 심사위원으로 크게 활약했던 음악감독 김문정 그리고 뮤지컬 배우 옥주현도 함께했다. 29일과 30일에는 라포엠의 단독 무대 '라포엠 심포니 In Love' 가 이어졌다. 나는 그중 마지막 날의 공연을 즐기고 왔다.
라포엠은 팬텀싱어 시즌 3의 우승 팀이자, 테너 유채훈, 카운터테너 최성훈, 바리톤 정민성, 테너 박기훈으로 구성된 대한민국 대표 남성 4중창 크로스오버 그룹이다. 최근에는 박기훈의 활동 휴식으로 인해 3인 무대로 꾸려지고 있다. 하지만 이는 나중에 라포엠에 대해 검색할 때 알게 되었을 정도로, 이날 공연은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을 만큼 서로에 대한 믿음으로 꽉 찬 무대였다.
크로스오버(Crossover)는 팝, 록, 재즈 등 서로 다른 음악 장르 간의 경계를 넘나들며 새로운 음악적 조합을 시도하는 데서 유래한 개념이다. 원 장르의 색이 비교적 뚜렷하게 남는다는 점에서 ‘퓨전’과는 다르다. 크로스오버는 ‘넘나든다’는 것에 방점이 찍혀 있다. 클래식 기반의 음악가가 팝이나 뮤지컬을 한다면 ‘크로스오버’이고, 두 장르를 아예 섞어 새로운 혼합 장르를 만든다면 ‘퓨전’이다. 라포엠은 모두 성악전공자로, 성악의 음악적 폭을 확장하는 크로스오버 그룹이다. 특히 카운터테너가 있어 남성 4중창 그룹이지만 혼성 그룹과 같은 느낌을 낼 수 있다.
라포엠의 무대 1부는 오페라 중심으로, 2부는 비교적 친숙한 뮤지컬 곡들로 꾸며졌다.
정열적이면서도 라포엠의 색채가 자연스럽게 녹아든 아리아, 인간적 사랑의 위로가 빛나는 한국 가곡(한국의 전통 성악곡)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로맨틱한 이탈리아의 감성을 느낄 수 있는 ‘칸초네 메들리’가 인상적이었다.
2부는 뮤지컬 넘버들이 중심이 되었다. 서사를 전달하기보다 클래식의 표현이 돋보이는 무대라고 생각했다. 뮤지컬 넘버가 이렇게 들릴 수도 있구나, 하며 색다른 매력을 느끼고 왔다.
오페라의 정열, 한국 가곡의 따스함, 칸초네의 낭만, 뮤지컬의 드라마까지 내게 낯설었던 장르들이 라포엠의 목소리를 통해 자연스럽게 이어졌고 “아, 이게 크로스오버구나” 하고 직관적으로 깨닫게 된 공연이었다.
여담으로, KBS 교향악단 공연에 라포엠이 왔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오케스트라의 완성도가 놀라웠다. 1부의 게스트로 함께한 박소영 소프라노도 마찬가지였다. 말 그대로 ‘심포니’라는 단어에 걸맞은 무대였다.
마지막 곡이 끝나고 객석의 상당수가 자리에서 일어나 기립 박수를 보냈다. 팬들의 함성이 참 인상 깊었는데, 라포엠이라는 팀이 누적해온 시간과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여담으로 12월 5일,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의 종영 후 라포엠이 부른 You Raise Me Up이 삽입된 스페셜 영상인 '이 세상 모든 김 부장들을 위하여'가 공개되었다. 라포엠이 진심으로 노래하는 것을 보고 와서일까, 더욱 찡하게 느껴지는 영상이었다. “사랑이라는 단어만큼 많은 감정을 품은 주제는 없는 것 같아요. 이번 공연에서는 다양한 얼굴의 사랑을 노래하려 합니다.” 라포엠의 인터뷰 중 인상적이었던 부분이다.
심포니라는 단어에 어울리는 11월의 마지막 날을 보냈다. 추워지는 날씨지만, 마음은 따뜻해지는 연말의 시작이다.
*위 글은 아트인사이트에 기고되었습니다 :)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78746